'고유섭 평전' 이원규 작가 강연회
고대부터 조선에 이른 韓미술사 정립
'근대유럽 가치로 재단' 비판에 반박
"우현학 자료 섭렵… 아카이브화 시급"
한국 최초의 미술사가 우현 고유섭(1905~1944) 선생은 '조선의 미'를 이렇게 규정했다. 고유섭 선생은 1940년 7월 조선일보에 연재한 '조선 미술문화의 몇 낱 성격'과 1941년 '춘추' 7월호에 쓴 특별기고 '조선 고대미술의 특색과 그 전승문제' 등을 통해 고대부터 조선에 이른 한국 미술의 특질을 정립했다.
이 정의에 대한 몇몇 후학의 비판이 있었다. 근대 유럽의 학문 체계와 가치로 한국 미술을 재단했다거나 일본·중국 미술과의 비교로 한국 미술의 특질을 조성했다는 비판이다.
지난 14일 오후 7시 인천 중구 싸리재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개항도시'에서 열린 '고유섭 평전'(한길사)의 이원규 작가 초청 강연회에서 이러한 비판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작가는 말했다. 이목회가 주관한 이날 강연회는 80여명이 참석했다.
이원규 작가는 "나는 미술 전공은 아니지만, 2년 동안 우현의 글을 다 읽어 본 입장에서 그러한 비판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며 "고유섭이 수많은 문헌 조사와 답사, 실측으로 얻은 논리로, (유럽과 일본) 책만 읽고 나온 내용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고유섭 선생의 정의는 이제 모두가 동의하는 것"이라며 "인터넷에 '한국의 미'를 검색하면 나오는 것이 고유섭의 정의"라고 덧붙였다.
이원규 작가가 '고유섭 평전' 집필을 위해 발굴한 자료만 1만4천쪽에 달한다. 통문관과 열화당이 발간한 고유섭 전집뿐 아니라 당시 신문과 잡지에 실린 1차 자료, 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이 소장한 고유섭 선생의 글과 각종 자료 등을 모두 섭렵한 이원규 작가는 우현의 생애에 대한 최고 전문가라고 봐야 한다.
이원규 작가는 "아호 '우현'(又玄)은 노자 도덕경에서 따왔고, 무기교의 기교나 무계획의 계획은 노자의 어법과 같다"며 "일본 영향이나 서양 이론을 베낀 것이 아니다. 조선은 독자적 문화예술이 없다고 왜곡한 식민사관을 깨는 데 우현은 생애를 다 걸었다"고 강조했다.
올해 우현 80주기를 맞아 이원규 작가는 "우현학 자료의 확보와 보존, 아카이브화가 급하다"며 "우현을 시민에게 알리기 위한 영화, 연극 등 다른 콘텐츠와 학문적 확장도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민간 영역에서는 우현을 기리고 알리는 데 적극적인데, 지자체 차원에선 움직임이 없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