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의 기억법 (최신)

알려지지 않은 10일, 신뢰에 금이 갔다 ①

장애아동을 자녀로 둔 부모와 장애아동을 제자로 둔 특수교사 ‘사이’는 일반의 사제(師弟)의 정과는 조금 다르다. 장애아동을 대상으로 한 특수교육 현장은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절실하게 적용되는 곳이다. 말 그대로, 특수함을 지닌 아동을 온전하게 키우기 위해 부모와 교사가 ‘원팀’이 된다. 아니, 돼야 한다. 서로 믿고 의지하지 않으면 한걸음도 나아갈 수 없는 게 특수교육의 현실이다. 그래서 이들 사이를 설명할 때 ‘신뢰’는 관계를 공고히 하는 가장 강력한 연결고리다.

이른바 ‘주호민 사건’으로 불리는 용인 특수아동·특수교사 간 정서적 학대 공방이 치열해질 때마다 강한 의문이 들었다. 신뢰를 기반으로, 그간 원팀이었을 부모와 교사. 이들이 치르는 지금의 여론전은 실상을 안다면 잔혹한 ‘내전(內戰)’이다. 우리는 이들의 내전을 깊숙히 파고들었다. 이들은 왜 스승의 은혜를 배신한 부모와 제자에게 모진 말을 뱉은 매정한 스승이 돼버렸을까. 이 사건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다양한 이들을 취재했고, 이들을 통해 당시 상황을 교사와 부모의 입장에서 재구성했다.


교사-부모 간 신뢰 균열에 뒷짐… ‘흑막’ 학교에 있었다 [특수교실에 빌런은 없다]

<2> 신뢰 지킬 마지막 골든타임, 누가 놓쳤나 장애아동을 자녀로 둔 부모와 장애아동을 제자로 둔 특수교사 `사이`는 일반의 사제(師弟)의 정과는 조금 다르다. 장애아동..

학교에 남겨진 ‘오직 두 사람’ [특수교실에 빌런은 없다]

<3>내전(內戰)의 확전(擴戰), 혐오만 남겼다 장애아동을 자녀로 둔 부모와 장애아동을 제자로 둔 특수교사 `사이`는 일반의 사제(師弟)의 정과는 조금 다르다. 장애아동..
선고 공판에 참석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웹툰작가 주호민씨. /경인일보DB
선고 공판에 참석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웹툰작가 주호민씨. /경인일보DB

특수교사 곁에 아무도 없었다

# 용인 A초교 발달장애 학생 학폭 신고

비장애아동 앞에서 바지 내렸다는 내용

특수교사 혜정씨, 피해 학부모 면담 나서

2022년 9월 5일. 용인 A 초등학교에 학교폭력 사안이 접수됐다. 발달장애를 지닌 민수(가명)가 통합반 친구(비장애아동) 앞에서 바지를 내렸다는 내용. 때마침 통합반 담임교사는 병가로 부재중이었다. 피해아동 학부모는 화가 잔뜩 나 있었다. 학교는 곧장 혜정(가명)씨를 불렀다. 혜정씨는 A 학교의 유일한 특수교사다. 특수반과 통합반을 오가며 수업을 듣는 민수를 잘 알고 있는 교사라는 게 불려온 이유다. 그렇게 혜정씨는 피해아동 학부모를 면담하는 자리에 참석해야 했다.

피해 아동의 학부모는 민수가 벌인 일을 말했다. 통합반에서 생활할 때 일어난 일이라 혜정씨가 알 길이 없었다. 통합반에서 벌어진 사건을 책임지는 것은 혜정씨의 몫이 아니다. 하지만 혜정씨는 일단 민수를 보호해야 했다. 피해아동 학부모에게 민수가 발달장애 아동이며 장애로 인한 행동특성이 있다는 것을 설명했다. 특수교사인 혜정씨가 할 수 있는, 그리고 해야하는 역할이라 여겼다. 간곡하게 설명했지만, 피해아동 학부모의 화는 누그러지지 않았다. 원칙적으로 보면 이 사건은 학교폭력 범주에 해당된다. 피해아동 역시 불안 증세를 보이는 등 피해를 호소했다. 피해아동 학부모는 확실한 분리조치를 요구하며 분리가 안될 시 강제전학까지도 요구했다. 혜정씨는 민수의 특성을 이해시키기 위해 거듭 피해아동 학부모를 설득했고 면담은 긴 시간 이어졌다. 그리고 민수의 통합반 수업시간을 최대한 조정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장애를 겪는 제자를 돕기위해 참석한 줄 알았던 피해아동 학부모 면담을 시작으로, 혜정씨는 어느새 이 사건의 주책임자가 됐다. 이번엔 민수 부모에게 학교폭력 신고가 접수된 것 부터, 피해아동 학부모와의 면담 내용 등을 설명해야 했다. 특히 학교폭력 사안으로 신고된 만큼 당분간 통합반이 아닌 특수반에서 수업을 받는, ‘분리조치’를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자 민수 부모는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피해아동 학부모와의 면담도 계속됐다. 사과하고 또 화해하길 권했지만 그조차 쉽지는 않았다. 신고가 접수된 9월 5일부터 9월 14일까지, 장장 열흘간 양쪽 학부모의 이야기를 듣고 또 서로에게 전달하는 일을 계속했다. 지난한 줄다리기 끝에 학교폭력심의위원회를 여는 대신, 9월 15일 개별화교육협의회를 열기로 했다. 이 결정엔 여러 조건들이 전제됐다. A학교관리자를 비롯한 관계자들이 모여 학교폭력으로 신고된 민수에 대한 조치를 결정하기로 한 것이다. 열흘간 혜정씨의 고군분투가 만들어낸 결과였다.

사건 타임라인 (수정수정)

고군분투가 빚은 비극

# 신고 접수된 9월 5일부터 14일까지

개별화교육협의회 열어낸 혜정씨 결실

팍팍한 교육현장서 학폭 ‘조율자’ 부재

고군분투. 사전적 뜻으로 하면 ‘아군과 따로 떨어져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된 군사가 많은 수의 적군과 용감하게 잘 싸웠다’는 의미다. 혜정씨는 교장·교감과 같은 학교 관리자, 동료교사들의 도움을 받지 못한 채 혼자서 열흘간 양쪽 학부모 사이를 중재하고 이를 학교에 보고했다. 특수교사로서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최선책을 만들기 위한 모든 과정이 고군분투였다.

하지만 취재진이 만난 대다수 특수교사들은 이 ‘고군분투’가 문제의 시작이라고 입을 모았다. 당시 혜정씨가 담당했던 A초 특수반에는 총 8명 학생이 있었다. 법정인원 6명을 훌쩍 넘겨 혜정씨 혼자 장애아동 8명을 가르치고 돌봐야 했다. 특히 통합반과 특수반을 오가며 수업을 듣는 민수같은 장애아동은 가르치고 돌보는 정성이 배로 들어갈 수 밖에 없다.

“교장과 교감, 통합반 담임교사와 관계를 잘 맺는 것부터 큰 과제죠. 특수교사는 교무실에 자리도 없고 학사일정도 제때 공지를 못 받기까지 하는데, 교내 상황 파악을 못했다가는 자칫 아이 문제상황을 키울 수도 있고 결국 특수교사 책임으로 돌아오니까요.”

일반교사들이 장애감수성이 떨어져 상황을 방치하게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해요. 물론 수업이 없을 땐 잠시라도 쉬고 싶은 마음이지만, 아이의 적응을 생각하면 수시로 시간을 쪼개 직접 알아보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 경기지역 10년차 특수교사 A씨(40대·여)

특수교사에게 주어진 기본적인 업무 자체가 과중한 상황에서 피해자든, 가해자든 장애아동이 학교폭력사건에 휘말리면 특수교사가 받는 업무 하중은 더욱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하물며 이런 사례가 비단 혜정씨만이 겪은 일이 아니라 ‘비일비재’하다.

제가 맡았던 장애아동이 통합반에서 폭행을 당한 일이 있었어요. 장애아동 부모가 제게 찾아와 아이가 입원을 했다며, 경찰에 학교폭력으로 신고했고 교장과 가해자 학부모를 만나게 해달라며 하루종일 특수반에 있으며 요구했습니다. 통합반 상황은 담당도 아니고 잘 알지도 못했던 터라 교장에 도움을 요청했는데, ‘내가 꼭 만나야 하나? 실수할 것 같은데’ 라며 거절했고 민원이 들어오는 내내 교장은 단 한번도 장애부모를 만나지 않았습니다.

“부모의 요구는 계속됐지만 교감과 학교폭력전담교사는 ‘학폭위까지 가선 안된다. 특수반 아동이니 특수교사가 알아서 잘 해결하라’고 요구해 언성까지 높였습니다. 할수 없이 제가 통합반 담임과 가해 학생도 만나고 가해학생의 부모님까지 만나 상황을 파악하고 설득해야 했는데 출근하기 전인 새벽 6시부터 퇴근하고 나서 저녁 8시까지 계속 전화기가 울렸습니다. 겨우 양쪽 부모간 간담회 자리가 마련됐는데 학교에선 이 간담회 마저 저더러 참석해 해결하라고 했습니다. 이 과정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평소 앓고있는 지병이 악화돼 결국 병가를 내야 했습니다.”

-경기지역 9년차 특수교사 B씨(30대·여)

그래서 이 사건을 바라보는 특수교사 상당수는 “학교폭력은 일단 사안 자체가 대부분 중하다. 비장애학생들끼리 벌어져도 각자 이해관계가 다른데, 장애아동은 더욱 특수한 상황이라 조율하고 합의해야 할 것들이 많다. 이미 기본업무만으로도 벅찬 상태에서 혜정씨가 혼자 그 과정을 처리하는 과정이 굉장히 버겁고 지쳤을 것”이라고 공감했다.

인터뷰에 응한 특수교사들과 장애아동 부모들 모두 초기에 학교 관리자의 개입이 없었다는 점을 가장 근본적인 원인으로 꼽았다. 수원시장애인부모회에서 활동 중인 허모씨는 30대 자폐성 장애 아들을 둔 엄마다. 경험을 비추어 허씨는 “지금은 (장애아동 관련된 학교폭력 사건) 매뉴얼이 마련됐는지 모르지만 오랫동안 없었던 게 현실이다. 통합반에서 장애아동의 문제상황이 발생하면 장애아동 부모들은 일단 비장애부모나 통합반 교사에게 무조건 사과해야 하는 분위기였다. 최근엔 발달장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조금 나아지면서 민수 부모처럼 대응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선생님이 알아서 하세요’ 비극의 시작

# 사건의 주체는 학교 관리자

교장·교감, 초기부터 ‘쏙’ 빠진 구조

온전히 장애학생 편 설 수 없던 혜정씨

신뢰 잃은 학부모, ‘녹음 엔딩’ 단초

그런 분위기 탓에 학교폭력 중재 및 해결의 주체인 학교 관리자들은 사건 초기부터 ‘쏙’ 빠져버리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허씨는 “교장·교감 같은 학교 관리자가 초기부터 의지를 갖고 중재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지만, 통상 문제가 발생하면 개인적 성향과 역량에 따라 대응방식과 정도가 크게 좌지우지된다”며 “관리자가 역할을 못한다 해도 통합반 교사와 특수교사 사이의 상황 공유가 원활하면 그 선에서 적절하게 해결되지만, 통합반 교사가 장애학생의 이해도가 떨어지거나 민원에 대한 부담이 커 문제 자체를 특수교사에게 떠넘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토로했다.

실제로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학교폭력사안 발생시 컨트롤타워는 ‘학교장’이다. 학교폭력 전담기구를 구성해 초기대응부터 조사, 결과도출까지 총체적 책임을 학교장이 맡아야 한다. 동시에 장애학생 개개인에 대한 개별화교육 총책임자도 학교장이다. 혜정씨의 경우도 신고 초기부터 학폭사안의 조사와 중재를 학교관리자가 맡았다면, 특수교사에게 과도한 책임이 쏠리지 않도록 권한과 책임을 학교장이 충실히 했다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라 추정했다.

현실은 달랐다. 당시 혜정씨가 겪은 상황을 잘 아는 경기지역 특수교육 관계자의 전언에 따르면 혜정씨가 학교에 교권보호위원회 개최를 요청했지만 학교 측은 ‘학부모 권리’라는 이유로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취재팀은 당시 상황에 대한 학교관리자 입장을 듣기 위해 직접 A 초 학교 관리자를 접촉했지만 ‘출장으로 자리에 없다’, ‘취재 요청 사실을 전달하겠다’는 회신을 전달받은 채 끝내 연결되지 못했다. A초 관계자는 “직접 알진 못하지만 교권보호위원회 개최를 거절한 일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해명했다.

웹툰작가 주호민씨 아들에 대한 아동학대 사건 1심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30대 특수교사 A씨가 6일 오전 수원시 영통구 수원법원종합청사 앞에서 항소장을 제출하기 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4.2.6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웹툰작가 주호민씨 아들에 대한 아동학대 사건 1심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30대 특수교사 A씨가 6일 오전 수원시 영통구 수원법원종합청사 앞에서 항소장을 제출하기 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4.2.6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는 학교폭력사건을 특수교사에게 “알아서 해결하라”고 등떠밀며 특수교사가 비장애아동 부모와 장애아동 부모 사이의 ‘중재’에만 책임이 부여된 것은 향후 벌어질 비극의 단초가 됐다.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특수교사가 온전히 장애아동의 편에 설수 없는 구조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신고가 접수된 초기부터 학교 관리자와 통합반 교사가 주축이 돼 중재에 나서고, 특수교사는 장애가 있는 민수를 대변하고 설득하는 데에만 역할이 부여됐다면 최소한 혜정씨가 고군분투하던 열흘 중인 9월 13일에 민수 부모가 민수 가방에 녹음기를 몰래 넣는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 학교에서 우리 아이를 이해해주는 유일한 사람, 특수교사를 향한 신뢰에 균열이 일어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