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쏘공' 읽히지 않는 날 오긴 올까요

입력 2024-02-20 20:33 수정 2024-02-21 15:26
지면 아이콘 지면 2024-02-21 3면

소설집 누적판매 150만부 돌파

1970년대 도시빈민·노동문제 상징
"필요없는 시대 바람" 역설적 대기록
46년 지나도 '오늘날 난장이' 여전
모티브 인천… 흔적 지키기엔 무심


'인천 소설'이자 한국문학 고전의 반열에 오른 조세희(1942~2022) 연작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하 난쏘공)이 최근 150만부를 돌파하며 한국문학사를 다시 썼다.

'뫼비우스의 띠' 등 연작 단편 12편을 묶은 '난쏘공'은 '난장이' 가족이 살던 낙원구 행복동 무허가 주택이 철거당해 기계도시 은강으로 밀려오는 과정을 통해 '난장이'로 상징되는 1970년대 도시 빈민과 노동문제를 그렸다.



"더 이상 난쏘공이 필요하지 않은 시대가 왔으면 한다"는 작가의 바람과는 달리, 광고나 대중매체 노출 등 마케팅 없이도 해마다 5천~7천부씩 꾸준히 팔리다 대기록을 세웠다. 1970년대 시대상을 담은 '난쏘공'이 필요한 독자가 오늘날에도 많다는 의미다.

특히 작품 중·후반 주요 배경인 '기계도시 은강'의 도시 인천에도 특별한 작품이다. 인천 동구 만석동 공장지대를 형상화한 기계도시에서 생활한 '난장이'의 아들딸은 당시 열악한 노동 현실을 반영했다.

'난쏘공'이 150만부를 넘길 즈음인 지난 6일 소설 속 공장지대의 공장 중 한 곳인 현대제철 인천공장에선 폐기물 수조의 찌꺼기를 처리하던 외주업체 노동자 1명이 숨지고, 함께 작업하던 6명이 크게 다친 산업재해가 일어났다.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인 대기업 공장에서 일어난 사고다.

지난해 인천 건설현장 등에서 노동자가 사망한 중대재해만 34건이 발생했다. 이들과 46년 전 '난장이' 아들딸들의 모습이 묘하게 겹쳐 보이는 것은 '난쏘공'이 지금까지 생명력을 얻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만석동 등지에 남아 있는 '난장이' 가족의 일터 동일방직, 일진전기(옛 도쿄시바우라), 화수동 인천도시산업선교회 등 '난쏘공'의 흔적들은 점차 사라질 처지에 놓였다. 이 일대를 산업유산으로 보존·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인천시가 관련 용역을 검토하기도 했으나, 결국 대책은 나오지 않은 채 방치(2월8일자 6면 보도)된 상태다.

강원 평창 이효석문학관, 전남 보성 태백산맥문학관 등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앞다퉈 베스트셀러·고전 작품과 연관된 장소를 기념하고 활용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난쏘공'은 주무대 인천에서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다.

출판사 이성과힘은 지난 15일 '난쏘공' 개정판을 펴내며 "베스트셀러 소설이 한 해에만 수십만부씩 팔리다가도 몇 해 가지 않아 사라지는 경우가 다반사인 출판계에서 1978년 초판 출간 이후 46년간 꾸준한 판매를 보여왔다는 사실은 이 책의 문학적·사회적 가치를 증명하는 사건"이라고 했다.

150만부 돌파에 맞춰 출간된 '난쏘공' 개정판은 판형과 표지를 새롭게 하고, 지금의 표기법에 맞게 일부 단어와 문장을 다듬었다. 난쟁이가 표준어지만, '난장이'는 여전히 고치지 않았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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