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교실에 빌런은 없다

교장·교육청 발빼는 사이… 특수교실 '원팀' 손놨다

입력 2024-02-22 20:27 수정 2024-10-15 15:45
지면 아이콘 지면 2024-02-23 10면

부모-교사간 잔혹한 내전… '주호민 사건' 왜 일어났나


발달장애 초등생 통합반서 학교폭력 접수
피해아동 부모측, 분리조치·강제전학 요구
특수교사가 조율 '개별화교육協' 열기로
가해학생 등교거부하자 학부모 몰래 녹음

교육協, 학폭심의위 변질 신뢰 깨지는 계기
뚜렷한 매뉴얼 없이 학교장들 관행화 지적
관리자 중재 뒷짐에 아동학대로 교사 신고
사태 회복 마지막 골든타임마저 물건너가



 

이른바 '주호민 사건'으로 불리는 용인 장애아동·특수교사 간 정서적 학대 공방이 치열해질 때마다 강한 의문이 들었다. 이들이 치르는 지금의 여론전은 실상을 안다면 잔혹한 '내전(內戰)'이다. 이들은 왜 스승의 은혜를 배신한 부모와 제자에게 모진 말을 뱉은 매정한 스승이 돼버렸을까.

이 사건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다양한 이들을 취재했고, 이를 통해 당시 상황을 교사와 부모의 입장에서 재구성했다. → 일지 참조·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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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수교사 곁에 아무도 없었다


2022년 9월 5일. 용인 A 초등학교에 학교폭력 사안이 접수됐다. 발달장애를 지닌 민수(가명)가 통합반 친구(비장애아동) 앞에서 바지를 내렸다는 내용. 때마침 통합반 담임교사는 병가로 부재중이었다. 학교는 곧장 혜정(가명)씨를 불렀다. 혜정씨는 A 학교의 유일한 특수교사다. 특수반과 통합반을 오가며 수업을 듣는 민수를 잘 알고 있는 교사라는 게 불려온 이유다. 그렇게 혜정씨는 피해아동 학부모를 면담하는 자리에 참석해야 했다.

피해 아동의 학부모는 민수가 벌인 일을 말했다. 통합반에서 생활할 때 일어난 일이라 혜정씨가 알 길이 없었다. 그럼에도 피해아동 학부모에게 민수가 발달장애 아동이며 장애로 인한 행동특성이 있다는 것을 설명했다. 특수교사인 혜정씨가 할 수 있는, 그리고 해야하는 역할이라 여겼다.

간곡하게 설명했지만, 피해아동 학부모의 화는 누그러지지 않았다. 피해아동 학부모는 확실한 분리조치를 요구하며 분리가 안될 시 강제전학까지도 요구했다. 면담은 긴 시간 이어졌다. 그리고 민수의 통합반 수업시간을 최대한 조정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제자를 돕기위해 참석한 면담을 시작으로, 혜정씨는 어느새 이 사건의 주책임자가 됐다. 이번엔 민수 부모에게 학교폭력 신고가 접수된 것부터, 면담 내용 등을 설명해야 했다. 피해아동 학부모와의 면담도 계속됐다.

신고가 접수된 5일부터 14일까지, 장장 열흘간 양쪽 학부모의 이야기를 듣고 또 서로에게 전달하고 조율하는 일을 계속했다. 지난한 줄다리기 끝에 학교폭력심의위원회를 여는 대신, 9월 15일 개별화교육협의회를 열기로 했다. 열흘간 혜정씨의 고군분투가 만들어낸 결과였다.

주호민
1일 웹툰작가 주호민씨가 자신의 자폐성 장애 아들을 학대한 혐의로 기소된 특수교사가 유죄를 받은 선고 공판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회견을 하고 있다. 2024.2.1 /김준석기자 joonsk@kyeongin.com

■ 고군분투가 빚은 비극


취재진이 만난 대다수 특수교사들은 이 '고군분투'가 문제의 시작이라고 입을 모았다. 당시 혜정씨가 담당했던 A초 특수반은 법정인원 6명을 훌쩍 넘겼고 혼자 장애아동 8명을 가르치고 돌봐야 했다. 특히 통합반과 특수반을 오가며 수업을 듣는 민수 같은 장애아동은 가르치고 돌보는 정성이 배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경기도에서 10년차 특수교사인 A씨는 "교장과 교감, 통합반 담임교사와 관계를 잘 맺는 것부터 큰 과제다. 특수교사는 교무실에 자리도 없고 학사일정도 제때 공지를 못 받기까지 하는데, 교내 상황 파악을 못했다가는 자칫 아이 문제상황을 키울 수도 있고 결국 특수교사 책임으로 돌아온다"며 "아이의 적응을 생각하면 시간을 쪼개 (통합반을 오가며) 직접 알아보는 방법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특수교사의 기본업무 자체가 과중한 상황에서 장애아동이 학교폭력사건에 휘말리면 특수교사가 받는 업무 하중은 더욱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하물며 혜정씨와 같은 고군분투는 학교현장에서 '비일비재'하다.

가장 큰 문제는 특수교사가 온전히 장애아동의 편에 설 수 없는 구조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신고가 접수된 초기부터 학교 관리자와 통합반 교사가 주축이 돼 중재에 나서고, 특수교사는 민수를 대변하고 장애를 설득하는 데에만 역할이 부여됐다면 최소한 혜정씨가 고군분투하던 열흘 중에 민수 부모가 민수 가방에 녹음기를 몰래 넣는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 학교에서 우리 아이를 이해해주는 유일한 사람, 특수교사를 향한 신뢰에 균열이 일어난 것이다.

 



■ 교사마저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녹음기를 가방에 넣었다

특수교사와 부모들은 서로를 향해 '긴밀하게 소통한다' '상호보완적 관계'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중증 자폐성 장애를 앓는 10살 아이의 엄마는 "부모들에게 특수교사는 '귀인' 같은 존재"라며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는 일이 부모도 힘든데, 그 힘든 과정을 함께 하며 긴밀하게 소통하고 우리를 이끌어준다. 그 고됨을 잘 알고 있어 선생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고맙다"고 표현했다.

다시 사건으로 돌아가 학교폭력이 신고되고 개별화교육지원팀협의회(이하 개별화교육협의회)가 열릴 때까지, 열흘간 민수 부모 역시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신고 직후 민수가 좋아하는 통합반 수업을 약 2주간 받지 못하는 일시적 조치가 내려졌다.

이즈음부터 민수의 행동이 이전과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대뜸 "잘못했어요"라는 말이 나오는가 하면 특정 어휘에 집착하는 경향도 심해졌다. 또 사람을 가까이 하지 않고, 배변 실수도 잦아졌다. 학폭사건 이후 '민수가 이해받지 못하면 어쩌지' 불안과 의심이 커지고 있는 와중이었다.

13일. 등교를 앞둔 아침 민수는 급기야 학교에 가기 싫다며 강하게 저항했다. 도무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괴로워하는 아이를 바라보면서도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녹음기를 가방에 넣었다.

[포토] 기자회견 하는 '주호민 아들 정서학대' 1심 유죄 특수교사
웹툰작가 주호민씨 아들에 대한 아동학대 사건 1심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30대 특수교사 A씨가 6일 오전 수원시 영통구 수원법원종합청사 앞에서 항소장 제출 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4.2.6 /이지훈기자 jhlee@kyeongin.com

■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로 둔갑한 개별화교육지원팀협의회


특수교사, 부모들 모두 민수를 상대로 열린 개별화교육협의회는 사실상의 학교폭력심의위원회일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15일 개별화교육협의회에는 사건 발생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학교 관리자인 교감이 참석했다. 피해아동 부모가 민수와 분리를 요구했기 때문에 통합학급 수업 지원인력 배치, 통합교육 점진적 참여 확대, 통합교육 원상 복귀 후 외부 전문가 긍정적 행동지원, 성교육 진행 등 사실상의 학폭 처분조치가 결정됐다.

수원시장애인부모회 소속 한 부모는 "개별화교육협의회는 아이의 성장을 지원하기 위한 절차이지, 징계하는 기구가 아니다. 장애학생 학폭사건 관련 매뉴얼도 없는 상황에서 아이의 특수성을 고려해 학폭위 대신 개별화교육협의회로 진행한다지만, 부모 입장은 그 협의회에서 이런 일을 다루는 상황 자체가 이례적으로 느껴지고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개별화교육협의회를 믿었던 부모 입장에선 신뢰가 완전히 깨지는 계기였을지 모른다. 이 지점에서 특수교사들은 학폭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개별화교육협의회가 변질되는 관행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정원화 특수교사노조 정책실장은 "개별화교육협의회는 학기마다, 때론 논의가 필요할 때마다 학생 개개인에 대해 교육계획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자리"라며 "아이가 평소와 다른 행동양상을 보이면 어떤 요인 때문인지 특수교사, 학교관리자, 장애아동 부모 등으로 구성된 개별화교육협의회가 원인과 대책을 같이 찾는다. 개별화교육협의회는 신뢰로 이뤄진 협력관계"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학교폭력에 대해선 뚜렷한 매뉴얼이 없다. 그러다보니 민원과 책임을 피하고 싶은 학교관리자들은 특수교사를 종용해 개별화교육협의회로 선회하려 하고, 특수교사와 부모들도 혹시 하는 걱정에 관행을 따르고 있다는 게 특수교육계의 설명이다.

김정선 전국교원노동조합 특수교육위원장은 "통합교육이 안정화되려면 장애아동들도 학폭사안이 발생했을 때 원칙과 절차를 따라야 한다. 그 이후에 장애아동을 지원하기 위해 개별화교육지원팀이 협의해 함께 교육을 고민했어야 맞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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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교사와 학부모 간의 신뢰는 두텁고 매우 중요한 요소로 여겨진다. 사진은 특수교사와 학부모의 모습. /경인일보DB

녹음 확인 후 민수 부모는 특수교사와 분리를 원했다. 경기도교육청에 절차를 문의했다. 교육청은 "아동학대는 최초 학대행위 발견자에게 신고의무가 있고 학부모도 해당되니 직접 신고를 해도 된다"고 답했다. 그래도 신고는 두려웠다. 교장을 만났지만 고소를 해야만 교사 분리가 가능하다는 취지의 말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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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21일 민수 부모가 혜정씨를 아동학대로 경찰에 신고했다. 28일, 혜정씨는 학교에 교권보호위원회를 요청했지만 '(신고는) 학부모의 권리'라는 이유로 묵살당했다고 전해진다. 학교 측은 "요청을 거절한 일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해명했다.

김 위원장은 "(이 사건에서) 학교 관리자가 부모와 교사의 중재를 유도해야 하는데 오히려 고소를 이야기했다. 현재는 학교장과 자문해준 교육청은 쏙 빠져있다"고 꼬집었다. 그렇게 신뢰를 지킬 수 있는 마지막 골든타임이 허무하게 지나갔다.

/공지영·김산·이영선기자 jyg@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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