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펜하겐 주민들의 자부심 '아마게르 바케'


연간 40만t 폐기물 전기·열 생산
사계절 내내 스키·클라이밍 가능
유정복 인천시장 "인식 전환 필요"

아마게르 바케 전경
덴마크 아마게르 바케 굴뚝에서 나오는 흰색 연기는 유해물질이 제거된 후 나오는 수증기다. 취재 당일(22일) 날이 흐려 그 이튿날 촬영했다. 2024.2.23 덴마크 코펜하겐/유진주기자 yoopearl@kyeongin.com

2026년부터 수도권 쓰레기매립지는 가연성 폐기물 반입을 금지한다. 인천·경기지역 각 지방자치단체는 불에 타는 폐기물은 권역별 소각장에서 태워 처리해야 하는데, 신설·증설 반대 민원이 극심해 골머리를 앓는다. 4·10 총선 후보 중 '소각장 반대'를 공약으로 내세운 이도 적지 않다. 이대로 가면 수년 내 '쓰레기 대란'이 불 보듯 뻔하다.

덴마크 현지시간으로 22일 오후 '아마게르 바케'(Amager Bakke)를 둘러보고 이곳에서 여가 활동을 벌이는 시민들을 만나 대화해 보니 소각장을 기피시설로 인식하는 우리 시각이 편견에 불과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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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아마게르 바케 굴뚝에서 나오는 흰색 연기는 유해물질이 제거된 후 나오는 수증기다. 취재 당일(22일) 날이 흐려 그 이튿날 촬영했다. 2024.2.23 덴마크 코펜하겐/유진주기자 yoopearl@kyeongin.com

2021년 세계건축축제(WAF)에서 '올해의 세계 건축물'로 선정된 소각장은 이곳 주민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웅장한 작품'으로 우뚝 서 있다. 아마게르 바케는 덴마크 전역과 인근 국가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를 처리한다. 코펜하겐을 비롯해 인근 지역 주민 65만명과 사업장 6만곳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연간 40만t)을 이용해 전기·열을 생산하고 이를 약 15만가구에 공급하고 있다.

'아마게르 지역의 언덕'이라는 뜻의 소각장은 평지로만 이뤄진 이 지역에서 가장 높은 경사로를 가진 시설이다. 아마게르 바케 건물 높이는 최고 85m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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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코펜하겐 ‘아마게르 바케’ 벽면에 조성된 인공암벽. 2024.2.22 덴마크 코펜하겐/유진주기자 yoopearl@kyeongin.com

외벽 일부에 건물 옥상까지 암벽 등반을 할 수 있는 높이 80m 클라이밍 홀드 구간이 마련돼 있다. 바로 옆 녹색 스키 슬로프에서는 사시사철 스키·스노보드를 즐길 수 있다. 슬로프 옆 라인을 따라 옥상까지 이어지는 계단 산책로는 달리기 모임 '러닝크루'와 계단을 오르내리며 운동하는 시민들이 이용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를 수 있는 아마게르 바케 12층 옥상은 '휴식 공간'이다. 엘리베이터 입구에 마련된 루프탑 카페에서는 한 가족이 보드게임 중 하나인 테이블 축구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날 날씨는 안개가 자욱해 옥상에서 전망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평소 아마게르 바케는 코펜하겐의 시내를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는 전망대 역할을 한다.

옥상 한쪽에 거대하게 설치된 굴뚝에서는 하얀색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여기서 나오는 연기는 '수증기'뿐이다. 폐기물을 태울 때 발생하는 오염물질은 각종 정화 시스템을 통해 제거된다고 한다. 염화수소나 이산화황 등 대기 오염물질 배출량은 EU(유럽연합) 기준치보다 낮다.

현장을 안내한 현지 가이드는 "냄새나 연기와 관련해 지금까지 컴플레인(항의)을 받아본 적이 없다"며 "여기를 찾는 분 대다수가 별로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덴마크 아마게르 바케 스키장&계단
아마게르 바케의 스키 슬로프는 사계절 이용할 수 있다. 슬로프 옆 계단은 주민 산책로, 러닝 크루의 달리기 코스로 활용되고 있다. 2024.2.22 덴마크 코펜하겐/유진주기자 yoopearl@kyeongin.com

아마게르 바케는 직선거리로 2㎞ 떨어진 곳에 덴마크 왕실 거주지인 아말리엔보르 궁전이 있다. 소각장 200m 거리에는 458가구 규모 아파트 단지도 있다. 코펜하겐에서 24년간 거주한 교민 문모(53)씨는 "만약 여기서 유해물질이 나온다면 덴마크 왕실 인사들과 아파트 주민들이 이 주변에서 살겠느냐"며 "그런 게 친환경적이고 안전하다는 방증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아마게르 바케에서 만난 코펜하겐 주민 실리아(silja)씨는 "시민이 필요로 하는 시설을 결합한 건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쓰레기를 태워 처리하는 필수시설이면서도 사계절 내내 스키와 클라이밍을 즐길 수 있고, 카페에서 휴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많은 주민이 운동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겨울에는 옥상에서 코코아 한 잔 마시면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너무 좋다"면서 "주민들은 이곳을 매우 긍정적으로 여긴다"고 말했다. 2017년 운영을 시작한 아마게르 바케 연간 방문객은 약 5만명을 기록하고 있다.

아마게르 바케 건립사업도 처음엔 주민 반대가 심했다. 덴마크 정부는 국토 대부분이 평지인 덴마크의 지리적 특성을 고려해 스키·클라이밍 스포츠를 접목시켜 긍정적 반응을 이끌어냈다. 그간 코펜하겐 시민들이 스키를 타거나 등산을 하려면 스웨덴·핀란드·노르웨이 등 인근 국가로 이동해야 했는데 그 불편을 '랜드마크 소각장'이 일부 해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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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현지시간) 덴마크 코펜하겐 ‘아마게르 바케’ 옥상에 조성된 루프탑 카페에서 일가족이 보드게임(테이블 축구)를 즐기고 있다. 덴마크 코펜하겐/유진주기자 yoopearl@kyeongin.com

유정복 인천시장은 해상풍력산업 기반 구축 협약, 글로벌 한인타운 조성 현지 교민 설명회 등을 목적으로 기자들과 함께 지난 21일 6박7일 일정의 유럽 4개국 출장길에 올랐다. 권역별 소각장 신증설 현안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출장 중 유럽 친환경 소각장 방문 일정을 잡았다.

유정복 인천시장은 아마게르 바케 방문 이후 경인일보와 인터뷰에서 "소각시설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시설임에도 (시민들은) 막연하게 기피 시설로 인식하고 있다"며 "덴마크 소각장처럼 편의시설로 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덴마크 코펜하겐/유진주기자 yoopearl@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