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일 김포시청에서 가족과 동료들의 비탄 속에 한 공무원의 발인식이 있었다. 김포한강로 포트홀 보수공사를 담당했다가, 차량정체 민원에 시달린 끝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그 공무원이다. 민원인들은 그의 신상정보를 공개하고 좌표를 찍었다.
포트홀은 주행 중인 차량에 치명적이다. 방치하면 안된다. 고인은 자신의 의무인 공무를 수행했다. 민원인들은 야간 보수공사로 발생한 교통정체에 걸린 짜증을 고인에게 배설했다. 포트홀 보수를 며칠 미뤘다면, 늑장 보수라며 실명을 공개했을 사람들이다. 익명에 숨어 공무원을 포트홀에 가둔 채 마녀사냥을 했다. 잠시의 불편 때문이다. 악질적인 이기심이다. 다음날 태연하게 깨끗이 보수된 도로를 안전하게 이용했을 것이다.
도로 포트홀만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 이기심, 욕망, 위선이 파놓은 심리적 포트홀이 널려있다. 국제적인 코인 사기 혐의자 권도형은 몬테네그로 법원에 기를 쓰고 한국 송환을 떼썼다. 미국에선 100년 받을 형을 한국에선 절반도 안받을 것이란 신뢰(?) 때문이다. 한국의 범죄 피해자들은 가해자에게 관용을 남발하는 한국 사법의 위선에 절망한다. 김포시는 악질 민원인을 특정해 법의 심판대에 올린다지만, 공무원의 생명에 상응하는 응보가 이뤄질지 의문이다. 대한민국 정의의 도로엔 사법 포트홀이 지천이다. 정의가 지체되고 탈선한다.
국민이 지지하는 의대정원 확대에 반발해 환자를 팽개친 전공의 집단 대신 환자를 지키는 소수의 전공의들이 실명으로 배신자 포트홀에 갇혔다. 환자를 배신한 당사자는 누구인가. 같은 노동력을 제공하지만 비정규직은 임금 포트홀에 빠졌다. 자영업자, 소비자, 배달노동자들이 독점 플랫폼이 파놓은 포트홀 생태계에서 제 살을 깎아 바친다. 계층, 세대, 지역의 이기와 욕망이 SNS를 타고 스며들어 파놓은 수많은 포트홀 탓에 대한민국 사회는 정주행을 멈추고 저출산 포트홀에 고였다.
정치는 사회적, 문화적 포트홀을 보수할 유일한 분야다. 민생 현장에서 충돌하는 욕망을 중재하고 조화시켜 나라와 국민의 정주행을 책임져야 한다. 어제도 오늘도 현실은 절망적이다. 정치가 대한민국 모든 포트홀을 재료로 거대하고 결정적인 포트홀을 지어내는 3D프린터로 전락했다. 22대 총선을 앞두고 포트홀 정당과 인물들이 즐비하게 등판했다. 포트홀 공화국의 막장 풍경이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