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장징궈 총통 식당서 산업 결의
美 RCA社와 협약, 인재 연수 보내
1977년 시범공장 1980년 과학단지서
現 세계시장 50%, 첨단 92% 생산력
'도우장 가게의 산업혁명' 결실로
타이완 장카이스(장개석)에 이어 장징궈가 국가경영을 맡아 부국정책에 고심하던 중 각료들의 제안으로 반도체 육성 정책이 나온다.
타이완에서 반도체 산업은 1964년 타이완 교통대학(중국 상해에 있지만 국민정부 타이완 이전 후 타이완 신주에도 있음)에 반도체실험실이 만들어진 것이 시초다. 당시 경제부 장관이던 손윈쉬엔(孫運璇)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모방하며 1973년 관민협력기구인 '공업기술연구원(ITRI)'을 만들고 1974년 '직접회로 발전계획'을 수립한다.
역사적으론 1974년 2월 7일 쌀쌀한 이른 아침 타이베이 난양지에(南陽街) 시아오신신 도우장(두유) 가게(장징궈가 좋아하던 조찬식당)에서 '타이완 반도체 산업' 결의가 있었다 한다. 손윈쉬엔, 행정원 비서장 페이화(費 ), 전신총국 국장 팡시엔치(方賢齊) 그리고 미국 RCA 주임 판원이엔(潘文淵)이 조찬을 하며 반도체 산업을 논의했다는 것이다. 페이화의 상하이 교통대학 동창 판원이엔은 당시 RCA서 일했는데 직접전자회로(IC)를 발전시키자 했다는 것이다. 당시는 누구도 이 내용을 이해 못해 허공에 집을 짓자는 공상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당시 IC는 바로 반도체 산업의 원천이자 작지만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는 기술이었다. 결국 판원이엔의 건의를 받아들여 IC기술을 발전시키기로 결정하고 정부가 기술자를 미국에 파견하여 도움을 청했지만 모두 외면했고, RCA만 협력하자 했지만 천문학적 기술이전 비용을 요구했다. 당시 4억 타이완달러라는 막대한 비용에 전문가들은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것이 낫다고 하기도 했다. 그러나 손윈쉬엔은 정부가 이 일을 추진하지 않으면 사표를 내겠다며 맞섰고, 총통 장징궈가 최종 허가했다.
이런 결정이 결국 타이완이 통신기술 강자가 되는 효시였다. 1976년 타이완은 RCA사와 'IC기술 이전 협약'을 맺고, 후딩화(胡定華)를 공업기술연구원 전자연구소 소장으로 임명한다. 그리고 우수한 젊은 인재 19명을 연수 보낸다. 전 UMC((聯華電子) 회장 차오싱청(曺興城)과 전공업기술연구원 원장 스친타이(史欽泰)도 당시 이 젊은 연수팀에 포함되어 있었다. 타이완 전 과학기술부 장관 천량지(陣良基)는 국가 과학기술의 발전은 과학기술과 인재의 융합으로 이뤄지며 이것이 생산으로 연결되고 판매되며 상용화된다고 했다. 1977년 타이완 정부 주도 IC 제품 시범공장이 완공돼 운영 6개월만에 기술이전 자금 50%를 벌어들인다.
이에 정부는 1980년 공업기술연구원과 청화대학, 교통대학이 있는 신주(新竹)에 미국 실리콘 밸리를 모방한 과학공업단지를 당시 막대한 금액인 20억 타이완달러를 투자해 건설한다. 이곳에 타이완 최초 4인치 웨이퍼 공장 UMC가 만들어지고, 이사장에 공업기술연구원 원장 팡시엔치(方賢齊)가 겸직하며 연수생이었던 차오싱청이 부사장을 맡는다. 당시 일본 도시바와 미츠비시는 1965년 반도체 DRAM 공장을 건설했고 1968년 미국 인텔, 1974년 한국 삼성도 반도체 산업에 뛰어든 상태라 1980년 타이완 정부가 설립한 UMC는 상대적으로 늦은 편이었다. UMC는 어려움을 이기고 미국 자동전화기 IC부품 공급으로 대량 이익을 창출한다. 그리고 미국 GI(General Instrument)의 CEO 모리스 창(張忠謀)은 손윈시엔, 리궈딩(李國鼎)의 '삼고초려'로 공업기술연구원의 원장 겸 UMC의 회장으로 들어와 후에 정부 주도로 TSMC를 만들게 된다. 1987년 정부의 끈질긴 노력으로 타이완 정부 50%, 필립스 27% 그리고 타이완 민간기업이 24%를 투자해 모리스 창의 주장대로 반도체 OEM 기업 TSMC가 창업되는데, 이 회사는 아직도 계속하여 영업액의 30%를 R&D에 투자하고 있다.
이러한 타이완 반도체 산업의 신화를 '도우장 가게의 산업혁명'이라 부르는데, 이것이 현재 세계 반도체 상품의 2분의1, 첨단 반도체의 92%의 생산력을 갖는 타이완 반도체 혁명의 결실로 이어져 '타이완을 부유하게 하고 지키는 신의 산(富國神山)'으로 만든 것이라 한다.
/김진호 단국대학교 교수·타이완 중앙연구원 방문학자
美 RCA社와 협약, 인재 연수 보내
1977년 시범공장 1980년 과학단지서
現 세계시장 50%, 첨단 92% 생산력
'도우장 가게의 산업혁명' 결실로
김진호 단국대학교 교수·타이완 중앙연구원 방문학자 |
타이완에서 반도체 산업은 1964년 타이완 교통대학(중국 상해에 있지만 국민정부 타이완 이전 후 타이완 신주에도 있음)에 반도체실험실이 만들어진 것이 시초다. 당시 경제부 장관이던 손윈쉬엔(孫運璇)은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모방하며 1973년 관민협력기구인 '공업기술연구원(ITRI)'을 만들고 1974년 '직접회로 발전계획'을 수립한다.
역사적으론 1974년 2월 7일 쌀쌀한 이른 아침 타이베이 난양지에(南陽街) 시아오신신 도우장(두유) 가게(장징궈가 좋아하던 조찬식당)에서 '타이완 반도체 산업' 결의가 있었다 한다. 손윈쉬엔, 행정원 비서장 페이화(費 ), 전신총국 국장 팡시엔치(方賢齊) 그리고 미국 RCA 주임 판원이엔(潘文淵)이 조찬을 하며 반도체 산업을 논의했다는 것이다. 페이화의 상하이 교통대학 동창 판원이엔은 당시 RCA서 일했는데 직접전자회로(IC)를 발전시키자 했다는 것이다. 당시는 누구도 이 내용을 이해 못해 허공에 집을 짓자는 공상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당시 IC는 바로 반도체 산업의 원천이자 작지만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는 기술이었다. 결국 판원이엔의 건의를 받아들여 IC기술을 발전시키기로 결정하고 정부가 기술자를 미국에 파견하여 도움을 청했지만 모두 외면했고, RCA만 협력하자 했지만 천문학적 기술이전 비용을 요구했다. 당시 4억 타이완달러라는 막대한 비용에 전문가들은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것이 낫다고 하기도 했다. 그러나 손윈쉬엔은 정부가 이 일을 추진하지 않으면 사표를 내겠다며 맞섰고, 총통 장징궈가 최종 허가했다.
이런 결정이 결국 타이완이 통신기술 강자가 되는 효시였다. 1976년 타이완은 RCA사와 'IC기술 이전 협약'을 맺고, 후딩화(胡定華)를 공업기술연구원 전자연구소 소장으로 임명한다. 그리고 우수한 젊은 인재 19명을 연수 보낸다. 전 UMC((聯華電子) 회장 차오싱청(曺興城)과 전공업기술연구원 원장 스친타이(史欽泰)도 당시 이 젊은 연수팀에 포함되어 있었다. 타이완 전 과학기술부 장관 천량지(陣良基)는 국가 과학기술의 발전은 과학기술과 인재의 융합으로 이뤄지며 이것이 생산으로 연결되고 판매되며 상용화된다고 했다. 1977년 타이완 정부 주도 IC 제품 시범공장이 완공돼 운영 6개월만에 기술이전 자금 50%를 벌어들인다.
이에 정부는 1980년 공업기술연구원과 청화대학, 교통대학이 있는 신주(新竹)에 미국 실리콘 밸리를 모방한 과학공업단지를 당시 막대한 금액인 20억 타이완달러를 투자해 건설한다. 이곳에 타이완 최초 4인치 웨이퍼 공장 UMC가 만들어지고, 이사장에 공업기술연구원 원장 팡시엔치(方賢齊)가 겸직하며 연수생이었던 차오싱청이 부사장을 맡는다. 당시 일본 도시바와 미츠비시는 1965년 반도체 DRAM 공장을 건설했고 1968년 미국 인텔, 1974년 한국 삼성도 반도체 산업에 뛰어든 상태라 1980년 타이완 정부가 설립한 UMC는 상대적으로 늦은 편이었다. UMC는 어려움을 이기고 미국 자동전화기 IC부품 공급으로 대량 이익을 창출한다. 그리고 미국 GI(General Instrument)의 CEO 모리스 창(張忠謀)은 손윈시엔, 리궈딩(李國鼎)의 '삼고초려'로 공업기술연구원의 원장 겸 UMC의 회장으로 들어와 후에 정부 주도로 TSMC를 만들게 된다. 1987년 정부의 끈질긴 노력으로 타이완 정부 50%, 필립스 27% 그리고 타이완 민간기업이 24%를 투자해 모리스 창의 주장대로 반도체 OEM 기업 TSMC가 창업되는데, 이 회사는 아직도 계속하여 영업액의 30%를 R&D에 투자하고 있다.
이러한 타이완 반도체 산업의 신화를 '도우장 가게의 산업혁명'이라 부르는데, 이것이 현재 세계 반도체 상품의 2분의1, 첨단 반도체의 92%의 생산력을 갖는 타이완 반도체 혁명의 결실로 이어져 '타이완을 부유하게 하고 지키는 신의 산(富國神山)'으로 만든 것이라 한다.
/김진호 단국대학교 교수·타이완 중앙연구원 방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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