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실 차등 기준 발표
은행권, 저마다 자율안 마련 나서
다수 사례 20~60%범위 분포 예상
판매사 첫 조 단위 과징금 전망도
홍콩H지수 ELS 투자 손실과 관련, 금융감독원이 11일 0~100%의 차등 배상 내용을 담은 기준안을 발표했다. 예상 투자 손실액만 6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된 가운데, 은행권은 이날 금감원 발표에 따라 저마다 자율 배상안 마련에 나섰다.
금감원은 판매사와 투자자의 책임을 종합적으로 반영해 배상 비율을 결정하는 분쟁 조정 기준안을 이날 발표했다. 기준안에 따르면 판매 금융사는 투자자 손실에 대해 최저 0%에서 최대 100%까지 배상해야 한다. 배상 비율은 판매사 요인을 최대 50%로 두고 여기에 투자자 요인을 ±45%p, 기타 요인을 ±10%p 고려해 산정토록 했다.
판매사 요인의 경우 적합성 원칙, 설명 의무, 부당 권유 금지 등 판매 원칙 위반 여부 등에 따라 기본 배상 비율을 20~40%로 적용하고 불완전 판매를 유발한 내부 통제 부실 책임을 고려해 은행은 10%p, 증권사는 5%p를 가중토록 했다.
여기에 고령자 등 금융 취약계층 여부, ELS 최초 가입자 여부 등에 따라 최대 45%p를 더할 수 있도록 했고 반대로 ELS 투자 경험이나 금융 지식 수준에 따라 45%p를 차감할 수 있도록 했다. 은행 책임이 동일하게 인정돼도 투자자의 개별 특성에 따라 배상 비율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금감원은 이번 배상 비율 기준안을 발표하면서 대체로 20~60% 비율로 손실을 배상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2019년 11월 투자자 2천870명이 4천억원대의 손실을 봤던 해외 금리 연계 DLF(파생결합펀드) 사태 당시 배상 비율이 대체로 20~80%였던 점과 비교하면 다소 하락한 것이다. → 그래픽 참조
이세훈 금감원 수석부원장은 브리핑에서 "홍콩H지수 ELS 투자 손실 배상 비율은 다수 사례가 20~60% 범위 내에 분포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DLF 사태 때와 비교해선 판매사 책임이 더 인정되긴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했다.
이날 각 은행은 금감원 기준안에 따라 자율 배상 기준을 마련하는 작업에 돌입하는 한편, 전체 배상 규모와 올해 실적에 미칠 여파 등에 대한 시뮬레이션에도 착수했다. 다만 배상 대상자가 많고 만기가 도래하지 않은 계좌도 상당수라, 실제 배상이 이뤄지기까진 적지 않은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금감원에 따르면 해당 ELS 상품은 40만 계좌 가까이가 팔려나갔고 손실 규모는 6조원에 이른다.
한편 금감원은 지난 1월 8일부터 두달 간 KB국민·신한·하나·NH농협·SC제일 등 5개 은행과 한국투자·미래에셋·삼성·KB·NH·신한 등 6개 증권사에 대한 현장검사를 실시한 결과 판매정책·고객보호 관리 실태 부실과 불완전 판매 사례를 다수 확인했다고 밝혔다.
일례로 한 은행 판매 직원은 87세 투자자가 해당 ELS 상품에 가입할 수 있도록 투자 성향을 상향했다고 임의로 안내하는가 하면, 다른 은행의 판매 직원은 마찬가지로 청력이 약한 또 다른 87세 투자자가 "들리지 않는다"고 말했는데도 이해했다고 답할 것을 거듭 요청했다.
이에 금감원은 판매사에 대한 인적·금전 제재를 준비 중이다. 2021년 금융소비자보호법 제정 이후 처음으로 조 단위 과징금이 나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강기정기자 kangg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