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기 인천과 함께한 40년…베일 싸인 외국인 ‘하나 글로버’의 생애를 복원하다

입력 2024-03-13 10:43 수정 2024-03-13 11:28

인천 외국인묘지에 잠든 하나 글로버의 생애

일본 연구자들이 수년간 발자취 쫓아 복원

인천-나가사키 근대사 연결 사진·자료 발굴

3월30일까지 인천 관동갤러리서 결과 전시

하나 글로버 베넷(Hana Glover Bennett·1876~1938)은 20대 초반 일본 나가사키에서 남편과 함께 인천으로 건너와 40여 년을 살다 생을 마감하고 인천 외국인묘지에 묻혔다. 오랜 기간 인천에 거주했으나, 그의 삶은 빈칸투성이였다.

일본의 연구자들이 ‘하나 글로버의 발자취’를 쫓아 개항기 인천에서 외국인은 어떻게 살았는지, 국제항으로서 인천은 나가사키 등 타국 항구도시들과 어떻게 연결됐는지 밝혀낸 전시가 인천 중구 관동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일본 나가사키종합과학대학교 지역과학연구소가 관동갤러리에서 주최한 ‘인천 영국영사관과 하나 글래버 베넷’ 전시회는 하나 글로버(전시에선 ‘글래버’로 표기)와 그의 가족의 생애를 담은 각종 사진과 역사 자료를 전시한다. 처음 공개되는 자료가 대부분이다. 인천에 있었던 3곳의 영국영사관 건물을 재현한 모형도 선보인다.

하나 글로버

기모노 차림의 10대 무렵 하나 글로버 사진. /개인 소장·관동갤러리 제공

일본 근대사 속 글로버 일가와 홈링거상회

하나는 스코틀랜드 출신 영국 상인 토머스 글로버(1838~1911)와 일본인 아와지야 츠루(1848~1899)의 딸이다. 나가사키에서 태어나 나가사키와 도쿄에서 학교를 다녔고, 21살 때인 1897년 홈링거상회 직원인 영국인 월터 베넷(1868~1944)과 결혼했다. 그해 남편 월터가 홈링거상회 인천지점에서 근무하게 되자 남편과 함께 인천에 정착했다.

하나의 아버지 토머스 글로버는 일본 근대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꼽힌다. 토머스는 1859년 자딘 마세슨 상관원(주재원)으로 일본에 건너가 1862년부터 글로버상회를 경영했으며, 각종 근대 문물을 팔아 거상으로 성장했다.

토머스는 나가사키 외국인 거류지 최고의 상사였던 홈링거상회와도 인연이 깊은데, 하나와 결혼한 월터가 홈링거상회 직원이었다. 하나의 이복 형제인 쿠라바 토미사부로(1870~1945) 또한 홈링거상회에서 근무했다. 월터는 1909년 인천에서 베넷상회를 설립해 독립적으로 사업을 이어갔다. 이번 전시에서 공개한 1897년 하나와 월터의 결혼식 사진에는 글로버 일가, 홈링거상회 사람들이 모두 등장한다.

하나 글로버

1917년께 하나 글로버의 인천 자택(옛 영국영사관 건물) 앞에서 촬영한 가족 사진. 오른쪽부터 하나 글로버, 장녀 이디스, 남편 월터 베넷, 차녀 메이벨. /나가사키 역사문화박물관 소장·관동갤러리 제공

인천에 정착한 하나 글로버와 영국영사관

하나 가족은 1915년 폐쇄된 영국영사관 건물(현 올림포스호텔 건물 자리)로 이사했다. 1950년대까지 남아 있던 3번째 영국영사관 건물이 아닌 그 인근에 1897년 건립된 2번째 영국영사관 건물이 하나 가족의 집이었다. 영국영사관 건물에서 살던 시절 하나와 그 자녀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도 전시에서 볼 수 있다. 영국영사관에서 인천항 쪽을 내려다본 사진도 있다. 월터는 1925년부터 1941년까지 영국 영사대리를 맡았다. 하나는 인천에서 4남매를 낳아 길렀다.

나가사키종합과학대학교 연구자들은 토머스와 하나의 생애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영국 국립공문서관이나 미국 의회도서관 등이 소장한 인천 영국영사관 건물들의 도면을 찾아냈다. 3번째 인천 영국영사관 건물은 인천 지역사회에서 널리 알려졌으나, 앞선 2곳의 영국영사관은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다.

최초의 영사관 건물은 나가사키 우메가자키에 있던 요정 로얄 오크를 1884년 인천으로 이전한 것이다. 규모가 작았고, 손님방이 없었다고 한다. 2번째 영국영사관은 목조 모임지붕에 단층의 본관, 별동으로 부속실(부엌, 하인방)이 딸려 있었다. 가장 규모가 컸던 3번째 영국영사관은 반각지붕의 단층 벽돌 구조로, 안뜰 건너편에 부엌과 하인방이 있었다. 방들이 ‘디귿자(ㄷ)’로 배치됐고, 남쪽에 테라스가 있었다. 동쪽 절반은 사무실 공간이고 서쪽은 침실이 있었다.

도면을 통해 제작한 3개 영국영사관 건물 모형이 무척 정교하다. 지붕을 열면 건물 내부를 확인할 수 있게끔 만들었다.

하나 글로버

하나 글로버 가족이 살던 2번째 영국영사관 건물 모형. 영국 국립공문서관이 소장한 도면을 토대로 제작했으며, 지붕을 열면 건물 내부를 모습도 확인할 수 있다. 2024.03.08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인천에서 잠든 하나…‘나비부인 딸’ 아니다

하나는 1938년 6월12일 사망해 중구 북성동 외국인묘지에 잠들었다. 하나의 묘비는 1965년 연수구로, 2017년 부평구 인천가족공원으로 옮겨져 현재까지도 잘 보존돼 있다. 묘비엔 1873년생으로 적혀 있는데, 일본 호적에는 1876년생으로 나온다.

나가사키에 있는 토머스 글로버의 저택 ‘글로버원’은 지역 주요 관광 자원이다. 나가사키시가 글로버원을 관광 자원화하면서 글로버 저택이 푸치니 오페라 ‘나비부인’의 실제 모델이 살던 곳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홍보했고, 그동안 정설처럼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1948년 글로버 저택에 살던 미군 장교 부부가 장난처럼 얘기한 것을 나가사키 쪽에서 확인 없이 활용한 것으로, 나가사키종합과학대학교 연구자들에 의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인천에서 하나 글로버가 ‘나비부인의 딸’로 잘못 알려진 것도 나가사키시의 ‘틀린 홍보’ 때문이다.

하나 글로버

인천 중구 관동갤러리에서 30일까지 개최하는 ‘인천 영국영사관과 하나 글래버 베넷’ 전시장 모습. 2024.03.08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개항기 외국인 생활사, 도시사, 건축사 등 다양한 이야기 담아

이처럼 하나 글로버 가족은 개항기 외국인 거주 지역의 생활사, 인천과 나가사키 등 국제 항만 간 활발한 교류, 인천 근대 건축 역사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남겼다.

나가사키종합과학대학교 브라이언 바크 가프니 명예교수와 야마다 유카리 공학부 교수가 수년 동안 토머스 글로버와 하나 글로버를 연구했으며, 이번 전시는 그 결과물이다. 이들 연구의 시작은 나가사키 외국인 거류지였으며, 일본 현지에선 베일에 싸인 하나의 삶을 추적하다 인천까지 오게 됐다. 이들 연구자는 2017년 도다 이쿠코 관동갤러리 관장을 통해 하나의 묘가 인천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2019년 인천에서 하나의 흔적을 답사했다.

도다 관장은 “인천에서 40년이나 거주하다 잠들었음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하나 글로버의 생애와 역사를 복원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며 “3번째 영국영사관 건물 외에도 주목하지 않았던 최초의 영사관, 2번째 영사관 건물에도 지역사회에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이달 30일까지로, 금·토·일요일만 개관한다. 한국 전시가 끝나면 나가사키에서도 전시를 개최할 예정이다. 전시 마지막 날인 30일 오후 3시 야마다 유카리 교수가 ‘글로버 가문 앨범을 통해서 본 인천 영국영사관’을 주제로 강연하기로 했다.

하나 글로버

1917년께 인천 자택(옛 영국영사관) 테라스에서 촬영한 사진. 하나 글로버(가운데) 양 옆으로 딸 메이벨(왼쪽)과 이디스가 서있다. /나가사키 역사문화박물관 소장·관동갤러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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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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