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호 칼럼

[방민호 칼럼] 다투기만 하기에는 너무 좋은 봄날이다

입력 2024-03-18 21:29
지면 아이콘 지면 2024-03-19 18면
오늘날 정치 시민들이 원하는 방향
정확히 대변하거나 국가 전달보다
정치인의 논리·이익추구 경향 강해
선출된 의원 싸운만큼 대변 안해줘
'아름다운 봄' 모두가 평온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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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외할아버지는 만년 야당이셨다고 했다. 매일같이 '동아일보'가 배달되었다.

내 고향은 예산 하고도 북문리, 교통 편이 마땅찮은 그곳에는 우체부가 하루하루 신문을 배달해 주어야 했다. 우표를 붙인 띠를 두른 신문이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하기는 이런 신문 배달은 우리 대학 다닐 때까지 있었다. 친구네 학교 학보가 배달해 오기를 기다리던 때가 엊그제다.



외할아버지는 부지런한 분이셨는데, 세상에는 늘 불만이 많으셨던 것 같다. 해방 되고 나서 면장도 지내신 적 있으셨다는데, 언제인지는 확실치 않고, 6·25 전쟁 때는 인민군, 좌익을 피해 외할머니 친정 쪽으로 피신을 하시기도 했단다. 만년 야당이라는 것과 6·25 때 피신을 하셨다는 것이 어느 때까지 잘 연결이 안 되어 내 딴에는 애를 먹기도 했다.

외할아버지는 우리 어머니를 포함하여 자녀를 5녀 1남을 두셨다. 외숙모가 예산 분이셨는데, 외숙모의 부친, 그러니까 우리 외할아버지 사돈되시는 어른은 여당이라셨다던가? 두 분이 다 바둑을 좋아하셔서 자주 북문리에 오셨다는데, 정치 이야기 끝에 다툼이 일어 일어나 가시곤 했단다.

아버지는 옛날 여당이셨고, 나는 늘 야당이었는데, 내 형제들, 그러니까 두 동생은 또 하나는 여당, 하나는 야당이었다. 아버지가 대장암 투병 끝에 돌아가신 지 지금 일 년 하고 딱 두 달이 되었는데, 그 사이에, 홀로 남으신 어머니와 나, 그리고 두 동생의 정치색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여기서 굳이 밝히지 않으련다. 아무튼 아버지가 아프시기 시작한 그 언저리부터 지금까지의 그 사이에 어떤 변화들이 있었던 것만큼은 틀림없다.

며칠 꽃샘추위였던 듯, 한 주가 시작되는 오늘은 날이 활짝 갰다. 꽃나무들이 흰 꽃봉오리를 다투어 내밀고 있다. 철이 바뀌었다고들 한다. 꽃은 다 피었을 때보다 피려 할 때가 더 아름답다 했다.

투표 날이 가까워지면서 신문도, 뉴스도, 유튜브도 뜨겁게 달궈지는 중인데, 그러면서 양쪽 사이에 있는 '제3지대'는 들어설 곳이 없어지는 모양새다. 제3지대라 하는 세력 대신 오히려 더 강한 세력이 사이에 서서 이 사회는 둘로 딱 갈라서는 듯도 하다. 그렇지 않아도 두 방향의 양 '팀'을 더욱 극단적인 쪽으로 밀어붙이는 힘들이 요란하게 작용하는 모양새로, 뭔가 조금 부드럽게 말하고 완화해서 말하는 사람은 설 자리가 마땅찮다.

돌이켜 보면, 이런 정치의 계절에 '제3세력'이 잠시나마 세력을 얻었던 때는 2016년의 '국민의당'이 마지막이 아니었던가 싶다. 지금은 두 '팀' 모두 시원찮다, 더 세게 하지 못한다는 강경한 목소리들이 어디에서나 힘을 얻는다.

몇 년 전에 정치학 관계 논문을 찾아볼 일이 있었는데, 그때 지금까지와는 다른 견해를 만난 일이 있다. 보통 국가와 시민사회로 사회를 2대별해서 이야기하곤 하는데, 그 논문에서는 국가와 시민사회 사이에 이 둘을 중재하는 '정치사회'라는 것이 있고, 이것이 다만 중재 역할에 머물지 않고 독자적인 자기 논리를 가진 사회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되는 정치사회는 국가와 시민사회를 중재하는 매개 역할 이상으로, 자기 논리와 이익관계를 가지고 움직인다.

이 논의를 보면서 정말 맞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오늘날 정치는 시민들의 어느 쪽의 이해를 정확히 대변하거나 이를 국가에 전달하기보다는 정치집단이나 정치인 자체의 논리와 이익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 말인즉슨, 우리가 아무리 강하게 서로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가지고 친한 사람들,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견해를 달리하며 싸우더라도, 그렇게 해서 선출된 국회의원들이 우리가 싸운 만큼 정직하고 투명하게 우리들 각자를 대변해 주지는 않으리라는 것이다.

봄이 좋은 때다. 이 아름다운 때는 한 번 가면 반복해서 오는 법은 없다. 내년에 다시 봄이 와도 올해 이맘 때의 봄은 아니리라. 우리 모두 좀더 평온해져 보자.

/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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