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공감

[인터뷰…공감] 지역 분위기 반전시킨 강화 '진강산마을교육공동체' 유상용 대표

입력 2024-04-02 21:05 수정 2024-04-02 21:15
지면 아이콘 지면 2024-04-03 14면

"알알이 포도송이 처럼… 사람과 사람 모여 생동하는 동네"


폐교위기 양도초 '계절학교 프로그램' 덕에 긴밀한 네트워크 형성
함께 개최한 '씨 마켓' 교류의 장 변모… '좋은길벗' 등 모임도 파생
"첫 시작은 자녀였지만 이젠 '노후' 고민… 임기 2년 '마을' 더 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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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용(60) 진강산마을교육공동체 대표는 "아무리 지원금이 많이 내려와도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게 있다. 마을다운 마을을 회복시키는 것이 한국사회에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진강산마을교육공동체는 교육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마을'에 초점을 맞춰 공동체를 유지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 강화군 양도면은 진강산을 중심에 두고 2천205가구에 인구 4천205명(2월 기준)이 거주하는 '작은 마을'이다. 서울·인천에서 차로 1시간30분 거리에 있는 시골 마을에 10여년 전부터 도시에서 학령기 자녀를 둔 젊은 부부들이 하나둘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 흔한 병원, 마트도 없고 문화·생활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한 곳에 찾아온 이유는 '자녀 교육'이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이들. 강화군 양도면에 있는 '진강산마을교육공동체'다.



진강산마을교육공동체는 양도초와 조산초·동광중·산마을고 등 진강산 자락에 있는 학교 학부모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주민단체다. 2009년 양도면에 터를 잡은 유상용(60)씨는 진강산마을교육공동체의 초창기 멤버이자 2020년부터 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인물이다. 지난달 29일 진강산마을교육공동체가 운영하는 카페 초승달에서 유 대표를 만났다.

진강산마을교육공동체는 양도초등학교가 폐교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학생 수가 23명까지 줄어 문을 닫게 될 처지에 놓인 학교에 새 교장이 부임하면서 돌파구가 열렸다. 당시 이석인 교장은 '아이들이 자연과 함께하며 인성을 기르고, 형제들처럼 지낼 수 있는 학교'를 만들겠다며 계절학교를 열었다.

학생들이 강화도 자연환경을 몸소 겪고 체험할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도시 학생들이 1주일간 강화도에 머무르며 양도초 학생들과 함께 자연을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계절별로 진행된 이 프로그램은 큰 호응을 얻었다. 양도초 계절학교를 경험한 학부모·학생이 자연스레 강화도에 관심을 가졌다. 폐교 위기에 처했던 양도초는 그렇게 부활해 현재는 매년 60명 내외의 학생 수를 유지하고 있다. 계절학교 역시 지속되고 있다.

양도초가 폐교 위기를 벗어나면서 학교와 학생·학부모 간 긴밀한 네트워크가 형성됐다. 이들은 이석인 전 교장이 임기를 마치고 양도초를 떠난 이후에도 교류를 유지하며 아이들의 교육 분위기를 유지하자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 그렇게 2015년 진강산마을교육공동체가 탄생했다.

"계절학교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도시학교 학생과 학부모들이 많이 유입됐어요. 월세로 시작해서 전세가 되고, 전세로 했다가 집을 짓거나 사서 오는 과정들이 있었죠(웃음). 그러나 일부는 양도초를 졸업하면 다시 도시학교로 돌아가는 경우가 있었어요. 2014년 이석인 교장선생님이 임기를 마치고 떠났는데, 그래도 우리 학부모들이 흩어지지 말고 재미나게 지내며 마을의 교육을 함께 만들어가자고 의견을 모아 단체를 결성했습니다."

공감인터뷰 유상용 진강산마을교육공동체 대표22

진강산마을교육공동체는 '마을학교'를 만들었다. 학부모들이 각자의 재능을 살려 마을학교 교사로 나섰다. 동양철학과를 나온 학부모는 아이들에게 한문과 사자소학을 가르쳤고, 음악에 재능이 있는 학부모들은 밴드를 결성했다. '독립영화 보기' '천문학의 밤' '시낭송의 밤' 같은 인문학 프로그램도 학부모들이 직접 꾸렸다. 학교 교과과정이나 특별활동에 포함되지 않은 경험을 아이들이 누릴 수 있게 하자는 취지에서였다.

이들은 지난 2015년 지역 4개 학교·학부모·학생이 참여하는 마을장터 '씨 마켓'을 처음 개최했다. 마을의 다양한 '재능꾼'을 모아 공연을 열고, 학생들이 텃밭에서 키운 농산물을 판매했다. 또 지역 주민이 참여하는 교육·문화·예술의 장을 마련했다. 이 행사는 지역을 대표하는 마을 축제로 자리 잡아 매년 분기별로 열리고 있다.

진강산마을교육공동체를 기반으로 아빠 모임인 '좋은 길벗', 손재주 좋은 이들이 모인 '장도리(마을 수리)', '덩더쿵 국악 모임', '타로 모임 바보회' 등 여러 모임이 파생됐다. 지난 2020년에는 마을의 거점 역할을 할 '진동상회'를 지었다. 진동상회는 사무실과 공방, 식당, 카페를 갖췄다.

"아이들 교육도 있지만, 우선 부모들이 즐겁게 지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희가 흩어지지 않는 이유는 '가족다움'이거든요. 가족처럼 친한 마을 사람이 내 주위에 있다는 거. 쉽게 불러 술 한잔 할 수 있는 그런 관계가 늘어나고, 서로 보듬어줄 수 있는 게 이곳에 사는 이유이자 매력인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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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용 대표는 진강산마을교육공동체뿐 아니라 양도면의 크고 작은 단체와 소모임을 연결하는 '지역 공동체 확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 양도면에는 진강산마을협동조합과 강화바람언덕(주거공동체), 큰나무캠프힐(장애우 공동체), 자람도서관 등 여러 단체와 학교·모임이 존재한다.

유상용 대표는 이들 단체·모임을 '잇는다'는 취지로 지난해 '양도별자리 사업'을 추진했다. 지역문화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각 단체·모임별 행사에 함께 협력하고, 공간을 나눠 썼다. 매달 구성원들이 모여 마을 전체의 일을 상의하고 꾸준히 만남을 갖는다. 마을 별자리 지도와 함께 각 공동체에 대한 설명을 담은 책자도 발간했다.

"한 알 한 알 생명력 넘치는 포도알이 모인 포도송이처럼 양도별자리의 여러 단체들이 각자가 잘하는 분야를 서로 잇고 공유하여 더 큰 마을을 실현해가면 좋겠습니다. 여러 단체가 유기적으로 연결돼 하나의 관계망을 이루는 것이죠."

공감인터뷰 유상용 진강산마을교육공동체 대표1111

유상용 대표가 처음 양도면에 발을 들였을 당시 초등학교 1학년·5학년이었던 자녀들은 어느새 성인이 됐다. 진강산마을교육공동체에 속한 다른 학부모들도 마찬가지다.

어느덧 활동 10년 차가 된 진강산마을교육공동체는 교육공동체를 넘어 지역 공동체로서의 역할을 모색하고 있다. 학부모 모임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새로운 길을 열어가야 할 때라는 게 유상용 대표의 설명이다.

"진강산마을교육공동체와 동네에서 주로 만나는 분들은 거의 90%가 이주민이에요. 첫 시작은 교육에 초점을 뒀지만 이것만으로는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을과 교육의 비중을 같이 두려는 이유이기도 해요. 저희는 이제 60대 전후의 세대로서 이 마을에서 어떻게 노후를 보낼지 고민하고 있어요. 앞으로 남은 임기 2년 동안은 '마을'에 더 집중하면서, 새로 오시는 학부모들을 지원하는 길을 걸을 예정입니다."

글/유진주기자 yoopearl@kyeongin.com, 사진/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 유상용 대표는?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에서 공부하고 약 20년간 경기 화성에 있는 산안마을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다. 젊은 층이 주도하는 새로운 공동체를 꿈꾸며 2009년 강화도를 선택해 이주했다. 양도초등학교에서 학교 운영위원장을 맡았고, 2016년 진강산마을교육공동체 결성에 힘을 모았다. 2020년부터는 진강산마을교육공동체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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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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