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대자연 앞에 선 남자는 무엇을 보았나…공성훈 개인전 ‘바다와 남자’

입력 2024-04-08 11:18 수정 2024-04-08 14:23

인천 선광미술관서 오는 6월1일까지 개최

 

제주 곶자왈 속 들어온 듯한 ‘웅덩이’ 연작

전반기 전위적·실험적 작품 세계 펼친 작가

후반기 어둡고 짙은 바다와 거친 파도 그려

“사실적이면서도 현실과 거리 유지하려 해”

인천 출신 굵직한 작가의 또 다른 발견 주목

선광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공성훈 개인전 ‘바다와 남자’ 전시장 모습. 제주 곶자왈을 소재로 한 ‘웅덩이’(2019) 연작이 전시돼 있다. 2024.04.04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선광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공성훈 개인전 ‘바다와 남자’ 전시장 모습. 제주 곶자왈을 소재로 한 ‘웅덩이’(2019) 연작이 전시돼 있다. 2024.04.04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인천 중구 선광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고(故) 공성훈(1965~2021)의 개인전 ‘바다와 남자’ 전시장에 들어서면 제주 곶자왈을 소재로 한 그의 마지막 작업인 ‘웅덩이’(2019) 연작이 펼쳐져 있다. 감상자로 하여금 곶자왈에 들어온 느낌을 주도록 전시됐다. 작가가 바라본 풍경을 그렸다기 보단 심우현 선광미술관장 설명처럼 “마치 숲이 ‘내 안’으로 들어오는 경이로운 경험”으로 보인다.

인천 출신 공성훈은 작가 후반기 제주 바다의 풍경을 담는 데 천착했다. ‘바닷가의 남자’(2018)에선 바위 위에 서서 어둡고 거친 바다를 바라보는 한 남자, 즉 작가 자신을 그려 넣었다. 작가가 서 있었던 듯한 바위 위에서 격정적으로 휘몰아치는 ‘파도’(2019) 속에선 또 그 남자는 사라졌다.

공성훈은 생전에 “작품 중에 ‘심연의 바다’가 종종 등장하는데, 숭고한 자연 그 자체보다는 자연의 힘을 빌어 우리 시대의 정서, 심리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자신의 작업을 설명하기도 했다.

공성훈 作 바닷가의 남자, 2018, 캔버스에 유채, 116.8×80.3㎝ 2024.04.04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공성훈 作 바닷가의 남자, 2018, 캔버스에 유채, 116.8×80.3㎝ 2024.04.04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창작 전반기에 공성훈은 전위적이고 실험적이며 개념적 작업에 몰두했다. 그의 전반기 작업을 담은 도록운 선광미술관 전시장에서 볼 수 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다시 회화로 돌아가더니, 말년엔 프러시안 블루 색상의 거친 바다를 주로 그렸다. 고인이 된 작가에게 그 의도를 물을 순 없으나,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의 후반기 작업에 대한 다양한 담론이 펼쳐지고 있다.

선광미술관은 지난 6일 오후 심상용 서울대미술관장, 최은주 서울시립미술관장, 하계훈 미술평론가를 초청해 ‘아티스트 토크’ 프로그램 가졌다. 이 행사에서 전시를 감상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힌트가 많이 나왔다.

심상용 관장은 공성훈의 바다 그림에 대해 “프러시안 블루의 단색조로 주조돼 충분히 비현실적이지만, 소재는 구체적인 때와 장소, 예컨대 심산계곡이나 해변, 새벽 미명이나 황혼 같은 전통적으로 그림이 될 만한 자연 경관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심 관장은 “프러시안 블루는 공성훈의 풍경 안 풍경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고, 그 색은 불안한 인간의 현실과 삶의 지독한 고뇌의 색”이라며 “모든 푸른 단위들에 그의 내면의 갈등과 갈망이 담겨 있으며 바람이 불고 파도가 들이치는 것도 다르지 않다”고 했다.

지난 6일 오후 선광미술관 ‘바다와 남자’ 전시장에서 심상용 서울대미술관장, 최은주 서울시립미술관장, 하계훈 미술평론가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아티스트 토크’ 프로그램에서 하계훈 평론가가 공성훈의 작품 세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선광미술관 제공

지난 6일 오후 선광미술관 ‘바다와 남자’ 전시장에서 심상용 서울대미술관장, 최은주 서울시립미술관장, 하계훈 미술평론가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아티스트 토크’ 프로그램에서 하계훈 평론가가 공성훈의 작품 세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선광미술관 제공

최은주 관장은 “2012~2014년 사이 공성훈의 바다 탐색은 배가 바다 위를 운행하면서 남기는 물보라의 길을 그린 ‘뱃길’, 거친 파도에 어쩔 수 없이 휘청거리는 ‘부표’, 평화스러운 바다의 표면 아래 위험성을 드러내는 ‘암초’ 같은 작업으로 드러난다”며 “이런 작업을 통해 공성훈은 자신의 시대와 사회에 대한 시각을 드러내려 했다”고 말했다.

최은주 관장은 후반기 작업에 대해 “예술이라는 절대적 차원을 향한 공성훈의 자기 고백이 드러나는 ‘바닷가 남자’ 이후 공성훈은 2019년작 ‘파도’를 완성했다”며 “이 그림은 ‘완벽한 리얼리티’의 문제의식이란 것이 한 작가의 눈과 손에 의해 어떤 궁극적 세계에 다다랐는지를 감동적으로 보여준다”고 평했다.

공성훈 作 낚시, 2012, 캔버스에 유채, 115×219㎝ 2024.04.04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공성훈 作 낚시, 2012, 캔버스에 유채, 115×219㎝ 2024.04.04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하계훈 평론가는 이 같은 공성훈 후반기 풍경화를 ‘징후적 풍경’이라 칭했다. 하계훈 평론가는 “이 무렵 공성훈의 풍경화들을 관통하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햇빛을 극히 제한적으로 화면에 도입했다”며 “짙은 단색조의 대형 화면에 명함의 대비를 극적으로 표현해 원인 모를 긴장감과 불안감을 입혀 놓은 상황을 반복적으로 시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의 작품에는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으면서도 왠지 낯설고 기이하다”며 “사실적이면서도 현실에서 한 발짝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교묘한 양면성과 반전이 감지된다는 특징을 담고 있어서 일부에서는 그의 작품에서 낯선 기이함과 함께 낭만적 숭고미나 서정성을 읽어내기도 한다”고 했다.

공성훈은 주 활동 무대가 인천은 아니어서 고향에선 널리 알려지진 않았다. 그는 2013년 제2회 올해의 작가상, 2018년 제19회 이인성 미술상 등 굵직한 상을 받으며 한국 미술계가 주목해 온 작가다. 뒤늦게 고향에 소개돼 안타깝지만, 인천 지역 입장에선 또 하나의 중요한 발견이다. 전시는 6월1일까지 이어진다.

공성훈 作 파도, 2019, 캔버스에 유채, 70×55㎝ 2024.04.04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공성훈 作 파도, 2019, 캔버스에 유채, 70×55㎝ 2024.04.04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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