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차 잔금일 건물 인도안한다면
임차인도 '보증금 지급' 거절 가능
근저당권 말소 특약 임대인 선의무
관행처럼 돈 돌려막으면 위험해져
상황맞게 꼼꼼한 계약서 작성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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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경 법무법인 명도 대표변호사
가게에 가서 물건을 살 때, 우리는 가게주인에게 돈을 건네는 동시에 물건을 건네받는다. 법률에서 돈을 건넬 채무와 물건을 건넬 채무가 '동시이행관계'에 있다고 표현한다.

부동산 임대차계약을 체결하는 것도 동일하다. 보증금의 잔금을 지급하는 동시에 건물을 인도한다. 즉, 임대차보증금을 지급하는 것과 건물을 인도하는 것은 동시이행관계에 있다.

채무를 이행하여야 할 때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지체책임을 지는데, 손해배상책임이 대표적이다. 금전채무의 경우 이자 등이 손해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동시이행관계에 있는 채무라면 상대방이 이행의 제공을 할 때까지 지체책임을 지지 않는다. 즉, 이자 등의 손해를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얘기이다. 임대차계약에서 잔금일에 임대인이 건물을 인도하지 않는다면 임차인도 보증금의 지급을 거절할 수 있고, 손해에 대한 책임도 없다. '계약을 해제하면 되지 않은가'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계약해제는 지체책임 중 하나로 별도의 요건이 필요하고 여기에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겠다.

임대차계약을 체결할 때, '임대인은 잔금일까지 근저당권을 말소한다'고 특약하는 경우가 많다. 이 특약을 문언 그대로 해석하면 임대인의 근저당권 말소의무가 선이행의무이다. 임대인이 잔금일까지 근저당권을 먼저 말소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임대인은 임차인으로부터 보증금을 받아 그 돈으로 근저당권을 말소한다. 임대인은 보증금을 받아서 잔금일까지 근저당권을 말소하겠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동시이행과 선이행의무를 구분하지 못하고 단순히 잔금일에 동시에 주고받으면 된다는 생각에서 발생하는 문제다.

전세사기로 예민해진 요즘 같은 때라면 임차인은 잔금일에 왜 근저당권이 말소되지 않았냐며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임차인 입장에서 근저당권 말소는 매우 중요하다. 우선변제 순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실제로 임대인이 근저당권을 말소하겠다며 임차인으로부터 보증금을 지급받은 후 그 돈을 다른 곳에 유용하여 근저당권보다 후순위가 되어 보증금을 변제받지 못한 사례가 전세사기의 사례 중 하나로 언급되기도 한다.

임대차계약이 종료되는 때에도 동시이행과 관련된 문제는 발생한다.

임대차계약이 종료하면 임대인은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반환할 채무가 생기고, 임차인은 임대인에게 건물을 인도하여야 하는 채무가 생긴다.

두 채무는 동시이행관계에 있다. 임대차계약이 종료했을 때, 임대인이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는다면 임차인이 건물을 인도하지 않더라도 지체책임을 지지 않는다. 핵심은 임차인이 건물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월세를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많은 임대인들이 새로운 임차인으로부터 보증금을 받아 기존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반환하곤 한다. 새로운 임차인을 구하려면 건물을 보여줘야 하는데 이는 기존 임차인의 협조를 전제로 한다. 임차인이 이에 협조하지 않는다면 임대인은 동시이행을 주장하는 임차인으로부터 건물을 돌려받지 못한 채 월세도 받지 못하는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동시이행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계약서를 잘 작성해야 한다.

보증금을 받아 근저당권을 말소해야 한다면 임차인이 직접 근저당권자에게 보증금을 지급하기로 약정하고, 임대차계약 만료시 새로운 임차인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임차인의 협조를 약정하는 등 자신의 상황에 맞게 계약사항을 꼼꼼하게 작성할 필요가 있다.

동시이행관계에 있는 채무는 아무 문제가 없이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문제가 생기면 큰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 계약 당사자가 아닌 공인중개사가 작성해주는 관행적인 특약사항을 대충 훑어보고 '별문제 없겠지' 하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민경 법무법인 명도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