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려난 삶의 반: 가족 간병과 나

간병으로 뒤바뀐 일상, 24시간도 부족한 엄마… 중산층의 ‘시간 빈곤’ [밀려난 삶의 반: 가족 간병과 나·(1-1)]

입력 2024-05-05 17:03 수정 2024-06-14 10:53
기자들의 기억법 / 밀려난 삶의 반 : 가족 간병과 나

기자들의 기억법 / 밀려난 삶의 반 : 가족 간병과 나

‘10년’
초등학교 5학년, 부모님은 뇌졸중으로 쓰러진 할머니를 집에 모셔와 간병을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시작된 가족의 간병은 20대 성인이 돼서야 끝이 날 수 있었습니다.
간병은 가족의 시간과 연동돼 모두의 삶을 뒤바꿨습니다. 부모님의 일상은 할머니를 중심으로 돌아갔습니다. 할머니 곁에 항상 누군가 있어야 했고 잠깐 외출하더라도 집을 오래 비우지 못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할머니가 치매까지 앓자 간병은 더욱 고됐습니다. 기저귀를 갈고, 씻기고, 식사를 챙기고, 때마다 병원을 모셔야 하는 모든 일이 어린 눈에도 버거웠습니다.
할머니를 향한 사랑과 책임감으로 시작한 간병이지만 지난한 돌봄에 부모님은 지쳐갔습니다. 일과 간병에 자녀 양육까지,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쉴새없이 들이닥쳤습니다. 만성적인 피로와 스트레스가 쌓였지만 해소할 처지가 되지 못했습니다. 결국 가족의 몸과 마음이 모두 소진되고 나서야, 어쩔 수 없이 할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셨습니다. 그렇게 10년을 간병했지만 부모님은 여전히 할머니를 잘 모시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가집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간병=가족’, 우리 사회에 통용하는 이 당연한 명제에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삶이 파괴될 만큼의 무거운 책임을 감내하는 게 당연한가, 간병과 일상은 도저히 공존할 수 없는가. 마음 속 오래 품었던 그 의문의 해답을 찾기 위해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답을 찾는 여정에서 우리는 여러 연령, 다양한 상황에 놓인 가족간병인을 만났고 심층 인터뷰를 통해 ‘시간빈곤’ ‘간병약자’ ‘언젠가·누구나’ ‘선택할 자유’ 라는 공통의 주제를 찾았습니다. 모든 인터뷰를 1인칭 시점에 담은 건 언젠가 가족은 아플 것이고, 당신도 가족간병인이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모두의 일’이라는 공감 아래, 기자들의 기억법 ‘밀려난 삶의 반: 가족간병과 나’를 시작합니다.

#‘반추’. 다음은 김은희(가명·40대 초반)씨의 이야기를 재구성한 ‘논픽션’입니다.

‘빈곤’

돈이 없다는 이유로 꿈을 포기하게 만드는 비참한 사회적 불행. 결코 김은희씨 가족과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라 여겼습니다. 일산 신도시의 50평대 넓은 집, 단란한 4인 가족, 전문직, 고학력 엘리트. 사람들은 김은희씨 같은 가정을 정상가족, ‘중산층’이라고 부릅니다. 이 울타리는 아주 견고하며 여전히 탄탄합니다. 어느 날 한순간 삶에 밀려들어 온 불행조차도 노력으로 극복할만하게 해줄 만큼.

경인일보 디지털콘텐츠센터가 미드저니 ai에 ‘직장을 다니면서 1형 당뇨에 앓는 어린 자녀를 돌보는 40대 여성’을 입력하여 생성한 이미지

경인일보 디지털콘텐츠센터가 미드저니 ai에 ‘직장을 다니면서 1형 당뇨에 앓는 어린 자녀를 돌보는 40대 여성’을 입력하여 생성한 이미지

#scene1.

“엄마, 나 몸이 이상한 거 같아.”

2021년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인 준서(가명)의 몸무게가 불과 일주일 사이 10kg이나 빠졌다. 장염이 심하게 걸린 걸까라고 생각하며 저녁을 준비하는 사이 아이가 쓰러졌다. 세상이 무너진다는 게 이런 기분일지도 모르겠다.

대체 내가 뭘 잘못 했을까.

원인 모를 죄책감을 나 스스로 만들면서 병원에 도착했다. 의사와 간호사가 준서의 눈꺼풀을 뒤집어보기도 하고, 무얼 먹었는지를 물어보기도 하다 피를 뽑았다. 지난한 검사가 끝나자 의사의 입에서는 처음 들어보는 단어가 나왔다. ‘1형 당뇨’. 췌장에서 인슐린 분비되지 않는 희귀 난치성 질환이라더라, 평생 안고서 관리하며 살아가야 한다더라….

괜찮아. 침착하자. 해법이 있을 거야. 마음속으로 수천 번 읊조렸지만 무언가 원망스러워졌다. 누구에게 화를 내야 할지 모르는 것도 답답했다. 왜 이런 불행이 내가 아니고 하필이면 우리 아이에게 찾아온 걸까.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온종일 막막함과 이유 모를 원망 사이를 이리저리 오갔다.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준서를 보며 생각을 정리해갔다. 내가 흔들리면 준서의 삶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뒷목이 서늘해졌다. 갑자기 찾아온 불행이 내 아들의, 우리 가족의 일상을 무너뜨리게 두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scene2.

아들과 나, 그리고 친정엄마.

우리 세 사람의 시선이 나란히 한 곳에 꽂혔다. 혈당 그래프가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불안한 눈빛으로 준서와 엄마가 모니터 속 차트를 바라봤다.

‘아침엔 현미밥 먹었지. 어제 운동은 수영했고, 오렌지 주스는 10분일 거야. 10분….’ 5분 마다 업데이트되는 차트를 보며 머릿속으로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했다. 그리고 이 상황을 어떻게 우리 엄마와 준서가 잘 이해하도록 설명할지 고민했다.

일상루틴

“엄마, 여기 잘 봐. 다 영어로 적혀 있긴 한데 뭐 어렵지 않아서 금방 익숙해질 거야. 이럴 때는 오렌지 주스야. 내가 카톡으로 ‘주입’ 이렇게 보내면 여기까지 한 칸만 먹이는 거야. 준서도 똑바로 잘 들어. 할머니도 없고 엄마랑 아빠 회사에 가 있을 때 학교에서는 준서가 혼자서 해내야 해.”

준서가 오렌지 주스를 몇 모금 마셨다. 팔뚝에 붙인 연속혈당측정기가 성가신지 계속 만지작거리는 게 눈에 걸렸다. 액상 과당이 식도를 타고 위까지 내려가길 기다리며 10분을 지켜봤다. 이번엔 조급해하지 말자. 침착하자. 하강하던 그래프가 멈췄다. ISF(인슐린 민감도·인슐린 1단위를 주사할 때 떨어지는 혈당 수치) 계산에 생긴 오차를 만회했다.

“봤지? 그래프 떨어진다고 무서워서 계속 주스 주입하면 큰 일 나는 거야. 차트가 5분마다 바뀌니깐 일단 지켜보고 또 주입하고 그래야 돼 엄마.”

#scene3.

준서(가명·12)의 스마트워치에 김은희씨가 보낸 ‘주입’ 알람이 뜬 모습. ‘주입’ 알람이 오면 준서는 간식 가방에서 오렌지 주스를 꺼내 마시면 된다. 혈당이 과도하게 낮아지는 걸 막기 위한 조치다. 2024.4.27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준서(가명·12)의 스마트워치에 김은희씨가 보낸 ‘주입’ 알람이 뜬 모습. ‘주입’ 알람이 오면 준서는 간식 가방에서 오렌지 주스를 꺼내 마시면 된다. 혈당이 과도하게 낮아지는 걸 막기 위한 조치다. 2024.4.27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막막함에 발만 동동 구르던 시기도 금세 지나갔다.

준서가 처음 쓰러지고 3년이 흐른 사이, 주사요법에서 허리춤에 차는 최신 인슐린 펌프 기계로 바꿨다. 더는 고혈당 위험에 시달리거나 주삿바늘을 무서워하는 준서와 씨름할 일도 줄어들었다. 준서의 혈당 기록을 데이터베이스화해줄 외국 사이트도 유용하게 쓰고 있다. 정해진 대로 루틴을 따르면 우리 가족의 일상은 굳건했다.

10시까지 출근해 7시에 퇴근하는 사이, 연구실에서 일하는 와중에도 틈틈이 5분에 한 번씩 차트를 보며 준서의 혈당을 체크한다. ‘주입’.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면 준서는 간식 가방에서 주스를 꺼내 먹으면 된다. 캠핑을 갈 때면 풀충전된 배터리, aa 건전지 여유분, 트레시바, 글루카곤, 알코올 스왑 등을 챙긴다. 생야채는 칼륨이 많고, 때로는 신장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먹는 걸 조율할 필요도 있다. 저녁을 차릴 때면 나도 모르게 마트에서 파는 모든 채소의 성분을 줄줄 꾄다는 사실에 흠칫 놀란다.

24시간 머리속에서는 계산기가 쉴 새 없이 돌아간다. 그래도 남들처럼 직장을 그만두고 준서 옆에서 밀착 케어할 필요가 없다는 데 감사했다. 15분 거리에 살면서 손자를 돌보러 기꺼이 달려와 주는 친정엄마에게. 그리고 무수한 지식과 경제력 따위의 내게 주어진 조건들에 감사했다. 중산층이라는 튼튼한 울타리는 나의 노력이 무용하지 않음을, 노력하면 난치병과도 함께 살아갈 수 있음을 증명해줬다.

#scene4.

준서(가명·12)의 혈당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차트. 스마트폰 공기계를 활용해 집안 곳곳에 배치해두고 5분에 한 번씩 추이를 살피고 있다. 2024.4.27 /유혜연기자 pi@kyoengin.com

준서(가명·12)의 혈당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차트. 스마트폰 공기계를 활용해 집안 곳곳에 배치해두고 5분에 한 번씩 추이를 살피고 있다. 2024.4.27 /유혜연기자 pi@kyoengin.com

한 치의 오차 없이 완벽하게 흘러가야 하는 삶이지만 아주 가끔 그런 상상을 해본다.

말하자면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보는 거다. 배터리가 방전되거나, 블루투스에 오류가 나서 차트 업데이트가 되지 않거나, 우리 엄마가 갑자기 아프거나, 준서와 연락이 안 되거나, 변수가 생겨 그래프가 요동치거나…. 그러면 나는 문제를 일으킬만한 요소를 마음속에서 하나하나 소거해간다. 이를테면 배터리 방전을 대비해 보조 배터리와 유선 충전기를 가방에 챙기는 거다. 시스템 업데이트를 하다 데이터가 날아가는 걸 막기 위해 백업의 백업을 해두는 거다.

안심이 되다가도 가끔은 왠지 모를 서글픔이 마음 한구석에서 피어난다. 간병을 하다 일상이 무너진 사람들. 고군분투해도 간병과 일상 사이에서 무게 추가 간병으로 쏠리는 사람들이 있음을 분명 알고 있다. 환우회 커뮤니티에서 도움을 받으면서 목격한 무수한 사람이다. 가족을 간병하는 사람은 이렇게 사는 게 당연한 거라며, 그래도 우리집은 그나마 사정이 낫다며, 그렇게 긍정해보지만 정체모를 그 감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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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혜연·공지영·한규준기자

pi@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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