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대로 살았는데 내 통장은 월급이 들어오자마자 '텅장'이다. 소득의 양극화는 곧 소비의 양극화다. 짠내 나는 염전족과 노머니족(꼭 필요한 곳에만 최소 지출), 편도족(편의점 도시락으로 식사 해결)과 핫딜 노마드족(온라인 쇼핑몰에서 특정 시간대 할인가 비교 쇼핑), 모루밍족(오프라인에서 제품 보고 모바일로 쇼핑)은 서민의 다른 이름이다.
양극화는 이미 사회 전 분야로 번져 국가적 문제가 됐다. 특히 빚의 양극화가 심각하다. 부자들은 이자 부담을 줄이려고 대출 갚고 지출 방어에 나서는데, 서민들은 생활비가 부족해 상환은커녕 추가로 빚내는 형국이다. 실제로 10억원 이상 부자들의 평균 부채 규모는 지난해 4억8천만원으로 전년보다 2억3천만원이나 줄었다. 하지만 채무불이행자 수는 올 들어 3개월동안 1만1천669명이 늘어나 1분기말 68만6천178명이 됐다.
서민의 고통지수는 높아만 가는데 현실감 없는 뉴스가 보인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명품 브랜드 펜디가 인테리어를 맡은 초고가 복합주택이 들어선단다. 지하 7층, 지상 20층 규모로 아파트 29가구(248㎡)와 오피스텔 6호실(281㎡), 근린생활시설이 올 9월 착공 예정이다. 유명 프랑스 건축가가 설계하고 명품 브랜드 가구와 카펫, 식기까지 구비된다. 맞춤형 럭셔리 인테리어는 물론이다. 분양가는 200억~300억원대로 예상된다. 한술 더 떠 분양대금만 있다고 입주할 수 없는 하이엔드 명품주택이다. 펜디 까사 본사가 직접 입주자 직업군과 자산 규모 등을 심사한다. 30가구 이상 아파트를 분양할 때 청약 등 법에서 정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 현행 주택법을 적용받지 않도록 딱 29가구만 짓는다.
드라마 속 재벌가 이야기는 드라마일 뿐이라고 웃어넘긴다. 그런데 드라마가 현실이 되면 서민들은 박탈감을 느끼게 된다. "자산으로 만들어지는 서열사회", "21세기형 계급제의 부활"이라는 푸념과 "자기 재산으로 누린다는데 어쩌겠냐", "이미 드라마는 현실이다"라는 자조가 상충한다. 한국사회는 중간이 실종되고 상·하 극단이 비대해지는 모래시계 구조가 심화되고 있다. 모래시계의 허리가 가늘어질수록 서민들의 허리는 꺾일 위기다. 이제 졸라맬 허리띠도 없을 지경이다. 고금리 미친 물가에 '사과를 마음 편히 쟁여놓고 먹을 수 있으면 성공한 삶'이라는 말은 농이 아닌 진심이다.
/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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