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 예술가들이 덧입힌 정약전의 못다한 꿈


본래 그림백과로 만들려고 했으나
동생 정약용의 권유로 글로만 집필
작가 39명 등 책 완성 과정 담아내
시청각자료로 실학 접근성 높아져
약자 맞춤 배려도… 10월27일까지


그림으로 다시 쓰는 자산어보

실학자인 정약전이 흑산도 유배 중에 집필한 해양생물 백과사전이 있다. 바로 '자산어보'이다.

자산어보에는 바다생물의 생김새, 특징, 잡는 방법과 이동 경로, 쓰임새, 조리법과 맛 등의 다양한 지식이 설명돼 있다. 책 읽기를 좋아하던 청년 어부 장창대의 도움을 받고, 유배지에서 만난 제자 이청이 부족한 부분을 여러 책에서 찾아 보충하도록 하면서 자산어보는 더욱 완성도 높은 책으로 만들어졌다.

유배를 온 정약전이 섬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며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배우고 탐구한 것을 나누는 이것이야말로 '실학'이 추구하는 정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실학박물관 개관 15주년 기념 특별기획전으로 '그림으로 다시 쓰는 자산어보'가 열렸다. 여기서 '그림으로 다시 쓰는'이란 이름이 붙여진 것은 자산어보가 글로만 설명이 돼 있기 때문.

정약전은 이 책을 본래 그림백과로 만들려고 했으나 그림을 빼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동생 정약용의 권유로 글로만 책을 집필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시각과 청각적 자료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하고, 발달장애 예술가 39명이 그린 자산어보 속 해양생물 그림을 더해 정약전이 생각했던 그림백과 자산어보를 완성해가는 과정을 담아냈다.

'그림으로 다시 쓰는 자산어보'는 실학과 박물관에 대한 접근성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점자와 음성지원 패널, 어린이와 휠체어 사용자의 눈높이에 맞춘 낮은 전시물, 컬러 유니버셜 디자인 등 곳곳에서 사회적 약자를 배려한 디테일들을 추가했다. 무엇보다 전시에서는 한자를 최대한 배제하면서 쉽게 설명을 풀어내고, 동시에 오늘날에 쓰이는 명칭도 넣어 이해를 도왔다.

그림으로 다시 쓰는 자산어보

정약전은 바다생물을 비늘이 있는 물고기, 비늘이 없는 물고기, 껍데기가 있는 생물, 그 밖에 또 다른 여러 바다생물로 분류했다. '나눔과 묶음으로 한눈에 쏙'에서는 각각의 생물이 그려진 판을 올려놓으면 영상으로 해당 바다생물이 어디에 속하는지를 알아볼 수 있다.

'보고 듣고 알아내다'에서는 정약전이 해양생물을 관찰하고 탐구하는 과정과 내용을 멀티미디어 전시로 확인할 수 있으며, '이름을 짓자'에서는 자산어보에 기록된 해양생물 중 131종의 이름을 지어준 방식, 즉 바다생물의 생김새와 행동의 특징을 연결시킨 이름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정약전은 삶에 도움이 되는 바다생물의 쓰임새도 연구했는데, 병이나 상처를 치료하는 방법, 일상생활과 농사에 도움이 되는 지식을 '쓰임을 찾자'에서 체험전시물로 파악할 수 있다. 이어 '그림백과로 쓰다'에서는 관람객이 직접 바다생물을 그려 영상으로 띄워볼 수 있고, 발달장애 예술가들의 작품을 통해 자산어보를 다시 한 번 들여다보게 한다.

그림으로 다시 쓰는 자산어보
실학박물관 특별기획전 '그림으로 다시 쓰는 자산어보' 전시 모습.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전시 초입에서 볼 수 있는 미디어아트 영상에는 배경음악으로 '자산어보 속으로'라는 조현서 어린이가 작곡한 전시 주제곡이 흘러나와 귀 기울여 들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전시는 10월 27일까지.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