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고] 독거노인의 치매와 불안한 사회적 치매

입력 2024-05-21 20:15
지면 아이콘 지면 2024-05-22 18면
수차례 신고된 치매 앓는 할머니
자식없이 남편 사별후 혼자 살아
아파트 소유해 복지 혜택서 소외
보호자 없는 중산층 사각 위험성
누구나 맞을 오래된 미래 관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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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시인·범죄심리학자
가정의 달인 5월이면 범죄심리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먼저 걱정이 앞선다. 일선 파출소에서 근무를 하다 보면 가정의 달이 무색하게 우리 사회의 주변부에 있는 소외 이웃들을 만날 수 있다. 특히 독거노인들이 눈에 띄는데 그것은 갈수록 고령 인구가 늘어나면서 가족들 간 불화로 인한 분가 등으로 생긴 현상이다. 독거노인들은 이웃들과 교류조차 하지 않고 그야말로 사회적으로 고립돼 지하 단칸방에 갇혀 무인도에서 살듯이 사는 경우도 많다. 말년에 외롭게 살다 끝내 고독사하는,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노인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독거노인의 문제는 필자가 경찰관으로 근무하는 파출소에도 신고 접수가 자주 들어온다. 며칠전 '할머니가 아파트 관리 사무소에 행패를 부린다'라는 112신고였다. 관리 사무소에 가보니 80세가 넘은 할머니가 경비원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경비원들은 할머니가 막무가내로 관리사무소에 들어와서 나가지 않고 행패를 부린다는 것이다. 할머니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이놈들이 날 괴롭힌다. 사위 아니냐?"는 등 횡설수설하는 것을 보아 기억력 상실 또는 치매가 분명해 보였다. 요즘 경증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 생각이 나서 할머니에게 "여기서 이런 행동 하시면 안 됩니다"란 말씀을 드리고 순찰차로 집에 모셔다 드렸다. 그리고 파출소에서 할머니의 신고 이력을 살펴보니 수차례에 걸쳐 동일한 내용으로 신고가 접수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더 큰 사고가 날 것을 미연에 방지한다는 차원에서 보호자가 있는지 확인해 봤다. 자식은 없고 남편과 사별 후 아파트에 혼자 살고 계셨고 친척이 있는지 알아보니 친조카들은 연락되지 않았다. 연락 가능한 혈육이라고는 외조카가 한 명 있었는데 지방에 살고 있어서 왕래가 두절된 상태였다.



경험칙상 치매가 중증적으로 진행되고 있고 할머니에게 더 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판단에서 동사무소 복지과 직원과 통화했다. 그런데 할머니가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는 중산층 이상의 경제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복지를 지원하기 애매하다는 것이다. 보호자가 있으면 병원에서 의사에게 치매 진단을 받은 후 주간 보호센터라든지 요양원에 갈 수 있는데 그것이 어렵다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이 상태에서 도울 방법이 없을까하고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라는 기관이 있었다. 전화를 해보니 노인 맞춤 돌봄서비스가 있는데 노인의 욕구에 따른 맞춤형서비스를 제공하고 사회적 고립으로 인한 고독사 및 자살위험을 낮추기 위해 사례관리로 어르신의 안정적 노후를 지원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곳은 보호자가 신청해야 한다는 제한이 있었기 때문에 결정적으로 힘든 상황이었다. 그래서 정보 수집을 하다가 중앙치매센터라는 곳이 있고 이 기관의 사업 중에 '치매 공공후견인 제도'를 알게 됐다. 치매 진단을 받은 환자 중 권리를 대변해 줄 가족이 없는 경우 가정법원의 결정을 거쳐 법정 대리인을 선임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 주는 곳이었다.

며칠 있다가 할머니가 걱정돼 순찰 중 찾아가 보았다. 할머니께 식사는 하셨는지 물어보니 "며칠 강냉이만 먹었다"라고 했다. 그래서 두유를 한 박스 사다 드리고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찾아오겠다라고 말씀을 드리고 나왔다. 오히려 중산층으로 보호자가 없는 노인은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일 가능성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돌아오는 길에 혼자 살고 계시는 어머니가 스쳐 지나갔다. 점점 치매 증상이 심해져 주간 보호센터를 다니시는데 여간 걱정이 되는 것이 아니다. 처음에 어머니도 주간 보호센터에 내가 왜 가야 하냐며 완강히 거절했지만, 지금은 고맙게도 아침에 먼저 길을 나서시는 모습을 보면서 안심이 됐다. 지난 8일 어머니가 다니시는 주간보호 센터에 방문했다. 이날은 보호자들이 유치원이 아닌 노치원을 참관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카네이션을 어머니 가슴에 달아드리고 어버이노래를 부르는데 보호자들의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보았다. 나도 나이가 들면 이런 곳에서 지내게 되겠다고 하는 생각과 함께 벌써부터 눈물이 핑 돌았다. 이처럼 노인들의 복지문제는 누구나 맞이하는 오래된 미래라는 점에서 독거 노인들에게 관심과 보살핌이 절실하게 필요해 보인다.

/김윤식 시인·범죄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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