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북부 허리가 끊겼다
혈관 뜯긴 한북정맥, 회복은 산 넘어 산… "공존 대상으로…" 북부의 메아리
[경기북부 허리가 끊겼다] 핵심가치 보전, 지방정부 노력은
포천시, 공약사업 숲길 정비 진행중
단절 구간 '에코브리지' 조성 등 검토
우회 등산로 마련 '종주 인증제' 준비
양주시 '치유 공간' 등 가능 사업 실천
"SNS·산악연맹 활용해 보전 캠페인"
사유림 동의 등 보전사업 난제 산적
"道·정부가 정책의 큰 방향 잡아줘야"
道북부권시장군수협 '공동과제' 추진
"우리 고유의 금수강산을 상처투성이인 채로 미래세대에게 남길 수 없습니다."
경기북부 주요 시군에 걸쳐 있는 한북정맥이 난개발로 인해 끊기고 형체를 잃어가는 것에 맞서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보전방안 마련에 발벗고 나서기로 했다.
경기북부 지자체장들은 "한북정맥을 살리기 위해 지자체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찾아 실행에 옮기겠다"면서 "경기북부 지자체의 목소리를 모아서 정부와 경기도에도 책임 있는 역할을 요구할 것"이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한북정맥 지맥도. |
■ 한북정맥의 핵심 구간 포천, "연결성의 가치 지켜나갈 것"
포천시는 강원도에서 이어지는 한북정맥의 경기도 시작 구간이자 한북정맥 전체 능선(약 160㎞) 중 3분의 1(66㎞) 이상이 자리 잡은 곳이다. 경기북부 시군 가운데 한북정맥 산줄기의 가장 많은 비율을 점하는 지역인 만큼 향후 정맥 보호의 '척도'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백영현 포천시장은 지난 16일 시청에서 만나 "공약사업인 만큼, 한북정맥 보전의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정부와 경기도가 나설 수 있도록 경기북부 협의체의 목소리를 모아 전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2024.5.16 /기획취재팀 |
백영현 포천시장은 지난 16일 경인일보와 시청 집무실에서 만나 "한북정맥 훼손 실태를 (경인일보 기획) 보도로 구체적으로 알게 된 이후,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지자체장으로서 스스로 반성하고 어떻게 우리의 산줄기를 지켜나갈지 고민부터 했다"며 "현재 남아있는 정맥을 지킬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과 함께 정맥의 가치를 시민들이 느낄 수 있도록 자연과 사람이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나가겠다"고 말했다.
백 시장은 포천시가 진행 중인 숲길 정비사업에서 나아가, 도로 등으로 단절된 정맥의 능선부를 연결하는 가시적인 정맥 복원사업 추진도 고려하고 있다.
백 시장은 '한북정맥 숲길 살리기'를 이미 공약사항에 담은 만큼, 임기 중에 구체적인 성과를 내겠다는 각오를 드러냈다. 포천시는 지난해 '한북정맥 등산로 실태조사' 관련 용역을 마치고, 지역 등산 명소이자 한북정맥이 지나는 운악산 정상부 잔도길(암벽을 따라 조성된 통행로) 조성 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
백 시장은 "한북정맥 가치와 더불어 정맥 구간 가운데 보전·복원이 시급한 구간이 어디인지 파악하기 위한 용역을 진행한 상태"라며 "앞으로 시민들의 수요를 반영한 보전사업을 순차적으로 펼칠 것이며, 정맥의 '연결성'이 중요한 만큼 단절된 구간은 생태터널과 '에코브리지' 등으로 복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시는 도로·골프장·군사시설 등으로 끊긴 한북정맥 등산코스에는 우회 등산로를 순차적으로 마련하고 '종주 인증제'를 도입할 계획이다. '한북정맥 정상 종주'에 대한 갈증이 남은 등산객들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다.
■ "치유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한북정맥이 지나는 대표 지자체 중 하나인 양주시도 개발로 인한 상처가 짙은 곳이다. 주요 신도시인 옥정·회천·고읍지구 모두 한북정맥 능선을 가르고 그 위에 올라섰다.
강수현 양주시장이 지난 16일 경인일보와 시청 집무실에서 만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기획보도를 통해 한북정맥 보전 가치가 공론화된 것에 큰 의미가 있다"며 "시 차원에서 한북정맥을 보존하고 지킬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2024.5.16 /기획취재팀 |
강수현 양주시장은 "경기북부의 근간을 이루는 한북정맥이 훼손된 것에 안타까운 마음이 있다"면서 "백두대간의 일부라는 상징적 가치뿐 아니라 탄소 저감 등 환경적인 가치를 정맥이 지니고 있는 만큼, '치유의 공간'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시 차원에서 역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강 시장은 한북정맥이 지닌 가치에 비해 시에서 그동안 두드러진 보전사업이 없었던 점을 언급하며 시민들의 공감대 형성과 함께 '실행 가능한' 사업 추진 논의에 나서겠다고 했다.
그는 "등산로 정비사업 외에 구체적인 보전사업은 내부 논의에 그친 측면이 있다"면서 "산줄기가 끊긴 부분을 어떻게 살릴지부터 전문가와 시민의 의견 수렴을 출발점 삼아 사업에 나서겠다"고 했다.
시가 그동안 칠봉산, 천보산, 불곡산 등 한북정맥 등산로의 보수·유지 사업을 펼쳐왔지만, 이마저도 일부 구간 사업에 불과하고 한북정맥 보전의 궁극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는 시대적 판단에서다.
지자체 한북정맥 보호사업의 발목을 잡는 것 중 하나는 사유림(지) 문제다. 백두대간과 달리 한북정맥이 도심지와 다수 접해 있다보니 보전사업에 나서려면 산주 등의 동의가 사실상 필수적이다.
강 시장은 시민들에게 한북정맥의 가치와 보전사업 취지를 알려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고 정책추진의 동력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강 시장은 "정맥 보전을 위한 사업들이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언론, SNS 등의 홍보채널과 산줄기에 익숙한 지역산악연맹과 같은 산악인들을 통한 홍보캠페인을 함께 활용할 계획"이라며 "시민들이 한북정맥을 '공존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보전 필요성을 체감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 경기북부 지자체 연대…"정부, 경기도 정책 이끌 것"
한북정맥 살리기에 강한 의지를 밝힌 지자체들은 자체 사업 추진과 함께 정부와 경기도에 책임 있는 보전 움직임을 촉구할 방침이다. 단절된 정맥 구간에 생태통로를 하나 짓는 데만 수십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등 자체 재원 마련의 어려움이 있고, 정맥을 보호할 법적 근거가 없어 보전사업의 지속성을 확보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강 시장은 "신도시와 도로로 단절된 생태축을 복원하려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은 역시 예산"이라며 "산림청과 환경부 등 정부 차원에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정맥 보호의 장기적인 목표에 따른 예산을 편성해줬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백 시장은 "아무리 노력해도 지자체 한 곳의 사업으로 한북정맥이 보전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산줄기 연속성'의 관점으로 정맥보전이 될 수 있도록 경기도와 정부가 정책의 큰 방향을 잡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 시장은 경기도 북부권시장군수협의회에서 '한북정맥 보전'을 공동과제로 세운 뒤, 이를 정부와 경기도에 건의할 방침이다. 지난해 1월 구성된 협의회에는 포천, 양주, 가평, 파주 등 한북정맥이 있는 경기북부 주요 10곳의 지자체장들이 참여하고 있다.
백 시장은 "정맥을 살리려는 지자체의 의지가 강하고, 중앙정부와 경기도의 지원이 절실하다는 점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했고, 강 시장은 "경기북부의 주요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인 만큼, 북부 시군의 협력방안을 모색하고 정부의 참여까지 이끌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획취재팀
※ 기획취재팀=최재훈 본부장(지역사회부), 조수현·김산 기자(이상 사회부), 임열수 부장(사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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