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밀알 밀밭 품고 있는것처럼
모든 시작은 강력한 결말 내포
극단 치닫는 소셜미디어 영향 경고
21대 국회 '용두사미'로 끝났다
22대, 변화하는 시대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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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권 칼럼니스트·(사)다산연구소 기획위원단
시작은 무에서 유를 창출한다. 그래서 강력하다. 바로 0과 1의 차이다. 새하얀 백지를 채워가는 글이 그렇다.

성경이 대표적이다. 시작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다. 성경 전체에서 단 한 줄만 남겨야 한다면 바로 이 첫 줄이 아닐까 싶다. 반면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은 만연체로 시작한다. '나는 박물학자로서 군함 비글호를 타고 항해하는 동안 남아메리카 생물 분포와 과거에 서식했던 생물과 현존하는 생물의 지질학적 관계에서 볼 수 있던 모든 사실에 감명을 받았다'고 장황하게 설명한다. 창조론에 맞서 진화론을 주장하는 그로서 '경솔하게 결론을 내린 것이 아님을 알아주기 바라' 고심 끝에 서두를 설계했을 것이다.

소설가 김훈도 '칼의 노래' 첫 줄을 고심했다고 한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는 대목이다. 처음에는 '꽃은 피었다'고 했단다. 며칠 후 담배 한 갑 피우며 고친 게 '꽃이 피었다'이다. '꽃이 피었다'는 물리적 사실에 대한 객관적인 진술이지만, '꽃은 피었다'는 꽃이 피었다는 객관적 사실에 이를 보는 사람의 주관적 정서가 섞인다는 거다. 어렵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도 첫 줄이 유명하다.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서두는 '오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다. 세월이 지나 '오늘 엄마가 죽었다'로 다시 옮겨졌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와 '엄마가 죽었다'는 표현의 차이는 주인공이 처한 부조리한 현실을 이해하는데 본질적 영향을 미친다. 최근 번역 적절성 논란이 일면서 '오늘, 엄마가 죽었다'고 원본처럼 쉼표가 찍힌 번역이 완성본으로 나왔다.

강력한 도입부로 유명한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도 설왕설래가 있다. 바로 '행복한 가정은 모두가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는 문장이다. 인생을 함축한 경구로도 받아들여지지만 톨스토이의 원래 의도는 역설에 가깝다고 보기도 한다. 실제 읽어 보면 불행한 가정들이 질투 불신 등 비슷한 이유로 불행을 겪는 것으로 묘사돼 있다는 거다. 따라서 독자가 스스로 주제를 파악하도록 하는 함정 같은 장치라는 거다. 페이팔 공동창업자 피터 틸의 '안나 카레니나' 인용이 그럴듯하다. 그는 저서 '제로 투 원(0 to 1)'에서 '성공한 기업은 다들 서로 다른데, 실패한 기업은 다들 똑같다'고 했다. 성공한 기업은 각자 독특한 문제를 해결해 독점적인 체제를 구축했지만, 실패한 기업은 경쟁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거다. 톨스토이의 '행복한 가정'을 '성공한 기업'으로 치환하면서 그 이유를 반대로 패러디한 셈이다.

파올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1장 첫머리는 평범한 가운데 곱씹을만한 대목이 엿보인다. 바로 '소년의 이름은 산티아고였다'는 대목이다. 주인공 이름으로 산티아고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네의 철수나 영희처럼 스페인어권에서는 평범한 인물을 상징할까. 아니면 안달루시아의 소년 양치기가 자아를 발견하기 위해 떠나는 여정이라는 점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올렸을까. 혹시 어니스트 헤밍웨이에 대한 오마주일까. 소설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 이름이 바로 산티아고 아닌가.

이처럼 모든 시작은 강력한 결말을 내포하고 있다. 작은 밀알이 밀밭을 품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도 사회도 그렇다. 모든 시작은 그래서 중대한 사건이다.

목하 미국 대학의 졸업시즌이다. 영어로 졸업이 '시작'이다. 올해 하버드대 초청 연사는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마리아 레사이다. 그는 지난 23일 "우리는 디스토피아 공상과학 세계에 살고 있다"라고 운을 뗐다. "사실과 진실과 신뢰가 없으면 법치주의도 민주주의도 없다"며 소셜미디어의 영향을 경고했다. 마치 한국의 현실을 지적하는 듯하다. 진실 부정과 신뢰 상실, 출구가 없는 디스토피아 말이다. 극단으로 치닫는 소셜미디어, '입꾹닫'이 강요되는 무법 비민주 상황 말이다.

21대 국회는 용두사미로 끝났다. 22대 국회는 어떨까. 시작하지 않으면 변화도 결말도 없다. 시작해야 끝난다. 시대를 이끄는 시작의 힘을 믿어 본다.

/박종권 칼럼니스트·(사)다산연구소 기획위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