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성단] 사적 복수

입력 2024-06-06 19:31 수정 2024-06-06 19:32
지면 아이콘 지면 2024-06-07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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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밀양지역 남고생 44명이 울산에 사는 여중생을 1년 동안 집단 성폭행한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줬다. 쇠 파이프로 때리거나 돈을 뺏고 휴대전화로 동영상을 찍고 협박까지 했다. 직접 가해자만 44명, 망을 보거나 범행을 촬영하는 등 동조한 인물을 포함하면 연관자가 총 115명에 달하는 조직적이고 악랄한 범죄였다.

가해자 44명 중 10명은 기소됐고 20명은 보호처분만 받는 소년원으로 보내졌다. 결국 44명 중 단 한 명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았다. 피해자와 합의했거나 초범이고 청소년인 점 등을 이유로 전과 한 줄 남기지 못한 것이다. 이뿐 아니라 당시 수사과정에서 경찰은 피해자에게 "밀양 이미지 다 흐려놨다"고 폭언하고, 가해자 부모들은 피해자와 그 가족들을 집요하게 협박했다. 법의 심판과 사회의 시선은 피해자에게만 가혹했다. 학업을 중단하고 수차례 자살을 시도하는 등 14살 소녀의 삶은 완전히 부서졌다.

최근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들에 대한 신상 폭로로 후폭풍이 거세다. 논란은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지난 2022년 방문해 맛집으로 소개한 청도의 한 국밥집 영상에서 촉발됐다. 가해자 중 한 명이 근무했고 식당 사장의 조카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불법건축물인 식당은 논란이 불거진 지 일주일이 채 안 돼 철거됐고 사과문이 붙었다. 유튜버 '나락보관소'는 "개명까지 한 뒤 수입 자동차 딜러로 근무하고 있다"며 또다른 남성을 가해자로 연이어 지목했다. 업체 측은 폭로 다음날 "해당 사안을 매우 엄중하게 인지해 해당자를 해고 조치했다"고 밝혔다. 유튜버 '전투토끼'는 세 번째 가해자라며 사진과 함께 이름·나이·직장을 공개했다. 이 남성은 다니던 대기업에서 임시 발령 조치를 받았다.



20년의 세월이 흘러 만 35~38세가 된 가해자들이 버젓이 거리를 활보하고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모습은 대중의 공분을 사고 있다. 하지만 피해자의 동의 없는 신상 폭로는 오히려 피해자 존중과는 거리가 멀다. 가해자 신상 공개와 피해자의 일상 회복은 별개의 사안이다. 사실과 다르게 왜곡된 폭로는 오인사격·마녀사냥이라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기도 한다. 사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니 사적 복수가 횡행하고, 대중은 통쾌해 한다. 불륜 폭로, 일진 폭로, 사기 폭로…. 사법 사각지대에서 대한민국은 폭로공화국이 됐다.

/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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