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문화산책

한공주가 인천에 온 이유, 변두리와 중심 어딘가의 이곳 [인천문화산책]

입력 2024-06-08 16:24 수정 2024-07-06 21:23

집단 성폭력 사건 모티브 영화 ‘한공주’ 재조명

배경으로 동인천 일대 등장…특유 정취 느껴져

 

‘고양이를 부탁해’ ‘파이란’ 속 인천도 공통점

소외된 이들이 모이는 곳이나, 생동감 있는 곳

영화 ‘한공주’ 스틸컷.

영화 ‘한공주’ 스틸컷.

2014년 개봉한 이수진 감독의 영화 ‘한공주’가 다시 조명되고 있습니다.

2004년 고교생 수십 명이 여중생 1명을 1년에 걸쳐 성폭행한 ‘밀양 집단 성폭력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죠. 이 영화가 다시 화제를 모은 건 최근 ‘사이버 렉카’라 불리는 유튜버들의 ‘사적 제재’ 논란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한 2차 피해도 우려됩니다. 물론 사적 제재 논란의 이면에는 당시 가해자들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있었다는 지적도 나오기도 합니다.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에서 잊히지 않는 참혹한 사건이었음은 분명합니다.

영화 ‘한공주’는 사건 이후에 대한 상상입니다. 영화의 주요 배경은 인천, 정확히는 대표적 구도심인 동인천 일대입니다. 이 영화로 제35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천우희가 주인공 한공주 역할을 맡았습니다.

지방 소도시에 살던 공주는 그 끔찍한 사건을 겪은 후 교장이 서울의 한 학교로 전학을 보내려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다시 인천에 있는 여자고등학교로 옮깁니다. 공주가 새 학교를 다니며 머무는 동네가 동인천입니다.

영화는 담담하게 공주의 표정을 따라 흐르기 때문에 그 배경이 인천인지 확인하기 쉽진 않지만, 차창 밖으로 던져지는 공주의 시선에서 구도심인 동인천 특유의 정취가 느껴집니다. 낡았으나 온정이 남아있는, 그래서 공주가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게 되는 동네가 되죠. 그러나 세상은 공주의 상처를 보듬기엔 너무 냉정하고 각박하며 무관심합니다.

천우희는 지난 5일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해 ‘한공주’에 대해 “정말 제작비 없이 모든 분이 마음을 모아서 촬영한 작품”이라며 “조금 어려운 이야기에 대중들이 귀를 기울여줄 수 있을까라는 고민은 있었지만, 우리의 이야기가 분명 의미 있을 거라는 확신은 있었다”고 언급했습니다.

‘한공주’는 인천시영상위원회 제작지원작으로 선정돼 2012년 인천 일대에서 촬영됐습니다.

이수진 감독은 영화 개봉 즈음인 2014년 4월 영화 주간지 ‘씨네21’과 가진 인터뷰에서 인천을 주요 배경으로 결정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군복무를 한 도시인데 제대 이후 10년간 가지 않았다. 그런데 연애 시절 아내의 집이 인천이라 다시 오가게 됐다. 삼화고속을 자주 탔다. (중략) 신혼집도 인천에 얻게 되어 자연히 ‘한공주’의 시나리오를 쓰는 동안 인천에 살았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영화를 완성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한 촬영지라는 이유가 크다.” (2014년 4월 22일 ‘씨네21’ 온라인 기사 中)

인천시영상위원회 제작 지원에 힘입어 영화를 완성할 수 있게 된 까닭이 컸던 것 같습니다. 이수진 감독에게 인천은 낯설면서도 익숙한 공간이기도 했고요. 이 같은 이유에서 ‘한공주’의 배경이 인천이 됐다곤 하지만, 앞선 여러 영화들이 다룬 인천이란 공간의 성격을 본다면 공주가 인천까지 오게 된 것도 맥락이 없다고 할 순 없습니다.

영화 ‘한공주’ 포스터.

영화 ‘한공주’ 포스터.

■ 주변부, 소외된 이들이 모이는 도시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인천’은 대한민국의 심장부인 서울의 변두리, 서울로 상징되는 중심부에서 소외된 이들이 모이는 도시, 그럼에도 항만과 공항으로 열려 있으며 생동감이 있는 도시입니다.

대표적인 영화가 정재은 감독의 2001년작 ‘고양이를 부탁해’입니다. 개봉한 지 20년 넘게 지난 현재까지도 한국 영화의 여성 서사를 대표하는 작품이자 인천을 가장 잘 다룬 작품이기도 하죠. ‘고양이를 부탁해’의 주인공들은 인천여상을 졸업한 갓 스물의 여성 5명입니다. 인천항, 월미도, 동인천역과 지하상가, 만석동과 현재 철거된 만석고가교, 인천차이나타운, 동인천역 지하상가, 인천국제공항 등 다양한 공간에서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펼칩니다.

윤기형 영화감독은 최근 쓴 ‘영화 도시 인천과 극장의 역사’(2024·동연)에서 “이 영화를 진정한 인천 영화라고 하는 것은 인천을 공간적 배경뿐만 아니라 인천의 정체성을 주제로 발전시켰기 때문이다”고 했습니다. 이 영화를 아끼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아 2021년 디지털 리마스터링으로 재개봉하기도 했습니다.

‘고양이를 부탁해’와 같은 해인 2001년 개봉한 송해성 감독의 영화 ‘파이란’ 또한 전라도 시골에서 인천으로 올라온 삼류 건달(최민수 역)과 중국에서 고아가 돼 한국으로 온 여자(장백지 역)의 이야기입니다. 자유공원, 신포동, 인천차이나타운 등지가 배경으로 나오고요. 배우 최민식이 방파제에서 오열하는 장면은 그의 필모그래피 중에서도 명연기로 꼽힙니다.

영화 ‘한공주’ 속 인천의 정취와 비슷한 영화들을 소개했습니다. 이들 작품은 온라인과 OTT 등에서 어렵지 않게 관람할 수 있습니다.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포스터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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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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