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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사람이 어떻게 다 잘해?

입력 2024-06-13 19:38 수정 2024-07-01 18:04
지면 아이콘 지면 2024-06-14 14면
"엄마가 미안, 요즘 왜 이리 까먹지"
초등3 딸 휴대전화 찾아 갖다주자…
자잘한 위로 들으러 학교에 왔나보다
"엄마, 수업 잘해! 지각하지 말고!"
내가 살살 말하면 다정하게 대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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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 소설가
초등학교 3학년 딸아이가 휴대전화를 놓고 등교했다. 학교 끝나고 학원에 가면서 휴대전화로 늘 보고를 하는데, 그걸 두고 갔으니 하교 후에 집으로 돌아올 것이 빤했다. 나는 일찍부터 작업실에 나갈 작정이었다. 학교 강의가 있는 날이라 작업실에 일찍 나가 다른 일들을 처리해야 했던 거다. 하지만 아이가 빈집에 혼자 들어와 주섬주섬 휴대전화가 든 가방을 챙길 일을 생각하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안 그래도 혼자 엄마, 아빠를 기다리는 일이 많은 아이인데. 이렇게 일하는 엄마와 아빠는 걸핏하면 혼자 죄책감 타령에 빠지곤 한다. 별수 없다.

결국 작업실 나갈 시간을 미루고 하교 시간에 맞춰 학교로 갔다. 삽시간에 꼬마들이 학교 건물에서 와르르 쏟아져 나왔고 나는 행여 아이를 놓칠까봐 눈을 부릅떴다. 친구와 종알종알 떠들며 실내화를 갈아신던 아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엄마, 학교 안 갔어?" "응, 너 휴대전화 주고 바로 갈 거야." "지각 아니야? 안 늦어?" "괜찮아." 그러는 사이 딸아이 곁으로 친구들이 병아리 같이 모여들었다. 정말 병아리 같다. 키도 제법 크고 덩치도 작년보다 자랐지만 여태 3학년은 아기들이다. 안녕하세요, 아줌마! 방글방글 웃으며, 조금은 쑥스러운 얼굴로 다 인사를 한다. 딸아이가 한 명 한 명 소개했다. 엄마, 얘는 지율이고 얘는 서빈이, 유담이랑 민채는 알지? 엄마, 얘가 태윤이야! 그러고는 큰 소리로 덧붙였다. "다 내 절친들이야!" 절친이라니. 초등 3학년에게도 절친이 있구나. 마냥 귀여워서 하나하나 이름 불러주며 나도 인사를 건넸다. 친구 엄마 나타난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이리 몰려왔을까. 바람 한 점 불어도, 꽃잎 하나 날려도 그저 즐거운 게 그 나이라지만.



아이들은 학원 시간이 조금 남았다며 놀이터에서 놀아야겠단다. 나는 놀이터까지 함께 걸었다. 날이 몹시도 더웠다. "아줌마, 아줌마는 정말 작가예요?" 묻는 아이부터 "아줌마, 우리 엄마는 7월에 제 동생을 낳아요. 딸이래요!" 하는 아이, 놀이터로 우르르 몰려가는 친구들이 부러워 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 나도 놀이터에서 조금만 놀다 가면 안 돼?" 하는 아이까지 모두 더운 오후, 놀이터로 걸었다. 그러니까 내가 아이들을 끌고 놀이터 옆 편의점으로 간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딸의 절친들이라는데 그 정도는 대접해야지. 편의점에서 음료수 한 병씩, 초콜릿 한 개씩 쥐여주었다.

놀이터 앞에서 헤어지며 나는 휴대전화가 든 손가방을 딸아이 목에 걸어주었다. 그러면서 한 마디 속살거렸다. "엄마가 미안. 아침에 잘 챙겨줄걸. 깜빡했지 뭐야." 아이가 냉큼 대답했다. "내가 챙겼어야 하는 건데, 뭐." 다 큰 아이 흉내내며 대답하는 게 우스워서 한 마디 보탰다. "서랍장 위에 올려두고선 까먹었어. 엄만 요즘 왜 이렇게 잘 까먹지?" 뜻밖의 대답이 나왔다. "엄만 일하잖아. 사람이 어떻게 다 잘해?" 생각해 보니, 내가 이 말을 듣고 싶어서 굳이 기다렸다가 학교까지 왔나 보았다. 꼬맹이가 해주는 자잘한 위로의 말을 듣고 싶어서. 이렇게 말해줄 줄 알고. "왜 이렇게 하나씩 빠뜨리고 다니는 거야! 엄마 귀찮게!" 이렇게 소리 지르지 않은 것도, 내가 살살 말하면 이리 다정하게 대답해줄 걸 미리 알고서.

"엄마, 수업 잘해! 지각하지 말고!" 놀이터에 아이들을 흩뿌려놓고 돌아서는데 딸아이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기분이 좋아져서 나도 손을 흔들어주었다. 공부 안 하는 거 빼곤 예쁘네. 초여름 햇빛에 까만 콩처럼 탄 아이가 친구들에게 달려갔다. 저녁마다 소파에 앉아 자기는 친구들에게 인기가 짱 많다고, 그래서 절친이 진짜로 많다고 매일 자랑을 늘어놓았는데 오늘 나에게 친구를 많이 보여줘서 어깨가 으쓱해진 아이의 발걸음이 통통 튀어올랐다. 마음이 놓였다. 햇빛만 먹어도 절로 자라는 아이들, 참말로 참새 같은 얼굴들. 버스를 타러 몸을 돌리고서야 또 한 시절이 나를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마음속에 다정한 스냅사진 한 장 남겼다.

/김서령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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