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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에게도 최저임금을

입력 2024-06-13 19:41
지면 아이콘 지면 2024-06-14 14면
'제도밖' 수많은 비정규직 고용형태
해외선 '대기시간도 노동시간' 포함
권리보장후 뉴욕의 배달라이더는
"5분 일찍 배달, 목숨 안 걸수 있어"
헌법 32조 '모든 국민' 수혜자 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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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만일 공장에서 일하게 된다면 제가 가장 먼저 할 일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이 꺼내든 답은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것"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그러니까 대공황 시기에 집권했던 루스벨트 정부가 세계 최초로 최저임금제도를 도입했다.

최저임금이라는 튼튼한 기초공사 위에 고소득자 최대 88% 누진세율, 장시간 노동 규제라는 지붕도 씌웠다. 대공황에 세계대전까지 겹친 위기에 노동자들이 적어도 굶어 죽지 않고 최저 기준 이상의 삶을 버티게 해주었다. 인터넷도 휴대전화도 없었고, 유선전화나 자가용도 흔치 않았고, 인공지능이나 알고리즘 같은 말은 세상에 나오지도 않았던 시절에 탄생한 인류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가 바로 최저임금제도인 것이다.



하지만 100년 전통의 최저임금제도는 위기를 맞이했다. 플랫폼, 특수고용, 프리랜서를 비롯한 수많은 비정규직 고용 형태가 만들어지면서 이들이 최저임금제도 밖으로 밀려나 버렸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시간당 최저임금'으로만 정해지는 경직성으로 인해 노동시간 계산이 어려운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는 점을 플랫폼 기업과 빅테크 기업이 파고든 것이다.

하지만 대리운전기사·배달 라이더·방문점검원·학습지 교사 등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어 노동의 대가를 정당하게 지급받기 위한 최저기준을 만들어왔다. 법·제도가 작동되지 않는다면 내 삶의 든든한 뒷배인 노동조합으로 뭉쳐서 안전운임제·안전배달료·적정수수료 등 이들 헌장에 맞춤형 안전판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던 중 해외에서는 플랫폼노동에도 적용 가능한 최저임금제도가 도입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영국에서, 호주에서, 세계 최대 도시인 뉴욕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대기 시간도 노동시간에 포함하면 노동 시간 측정이 용이하고, 업무에 필요한 차량·휴대전화 관련 경비들을 모두 고려해 적정 수준의 임금을 계산할 수 있다는 점도 새로이 알게 되었다.

최저임금 권리 보장이 이뤄진 뒤 뉴욕시 배달 라이더들에게 무엇이 달라졌느냐 물으면 "임금이 늘어나서 좋다"는 답이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해 5분 일찍 배달하려고 내 목숨을 걸지 않아도 돼 좋다"고 말한다. 콜을 잡기 위해 분초를 다투느라 놓치고 있었던 시민의 안전, 최저임금제도가 뉴욕시에 준 선물이다.

더 놀라운 사실은, 한국의 최저임금법에도 이미 이런 방식을 도입할 수 있는 조항이 있었지만 지난 36년동안 단 한 번도 사용된 적이 없다는 점이다. 최저임금법 제5조 3항에 따르면, 시간당 최저임금만이 아니라 건당 최저임금, 그것도 기름값·차량유지비 및 필요경비를 모두 고려한 최저임금을 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래서 올해 새롭게 구성된 최저임금위원회에는 노동계에서 라이더유니온 박정훈 전 위원장 등 플랫폼 노동자가 직접 최저임금위원으로 참여해 플랫폼·특수고용 부문에도 작동 가능한 최저임금제도를 설계하라고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대리기사와 배달 라이더, 방문점검원과 학습지 교사들이 현장에서 만들어온 제도를 법·제도적으로 확장하기 위한 노력이 시작됐다. 그동안 최저임금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해온 택배기사, 간병인, 웹툰 작가들도 속속 모이고 있다.

최저임금·적정임금의 권리를 규정한 헌법 제32조는 이 권리의 수혜자를 '모든 국민'으로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최저임금제도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된 이들'에게만 적용하고 있다. 위헌적 법률 집행이 명백하다.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에게 최저임금제도를 보장하는 것은 모든 국민에게 최저임금·적정임금 권리를 되돌려주기 위한 첫걸음이 돼줄 것이다.

이런 목소리에 응답하기 시작한 것일까. 최근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에서 고용노동부가 드디어 최저임금법 5조 3항에 따른 심의가 필요하다고 인정했다. 36년만에 처음으로 물꼬가 트이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까지 플랫폼·특수고용 노동자들에게 뒷배가 되어준 것은 노동조합이었다. 이제 거기에 최저임금제도를 추가할 때다.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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