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섭 80주기' 추모제·시민 길걷기

순례길학교, 수개월 도보 답사 15㎞ 완성
생가터인 용동큰우물 출발 3개 코스 구성
조용주 변호사 "고향에 자부심 갖길 바라"


우현의길
인천시립박물관 앞뜰에 세워진 고유섭 청동 좌상(오른쪽)과 추모비. 2024.6.12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인천이 낳은 큰 인물, 한국 최초의 미술사가 우현 고유섭(1905~1944) 선생 80주기를 맞아 오는 22일 우현의 생가가 있던 인천 중구 용동큰우물 광장에서 추모제가 개최된다.

이날 오전 9시 시민들이 고유섭 선생이 인천에서 남긴 발자취를 따라 함께 걷는 '우현의 길' 행사도 열린다. → 코스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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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학교가 만든 '우현의 길'은 고유섭의 생가터인 용동큰우물에서 시작해 인천 구도심부터 옛길을 따라 신도시, 개항기 전 시대의 인천 주요 지역을 아우르는 약 15㎞의 도보 답사길이다. 한국 미술사와 한국의 미학 체계를 정립한 고유섭의 흔적은 물론 인천의 오랜 역사를 탐구할 수 있는 코스로 구성됐다.

지난 12일 오후 순례길학교 교장인 조용주 변호사와 함께 '우현의 길'을 미리 걸었다. 조용주 변호사는 이 길을 구상하고 수개월 답사 끝에 완성했다. '우현의 길' 활성화를 위한 인천시 조례 제정 움직임도 있는데, 내달 18일 인천시의회에서 관련 토론회가 열릴 예정이다.

■ 1코스 '우현의 성장길'


생가터인 용동큰우물의 '우현 표지석'에서 싸리재 방향으로 걷다 보면 그가 보성고보 3학년 때 이사한 집터(현 능인사)가 나온다. 고유섭이 1925년 쓴 시 '성당'은 이 집 창문으로 보이는 답동성당의 정경이다. 지금은 새로 지은 건물에 가려 능인사에서 답동성당이 보이지 않지만, 살짝 옆으로 비켜서면 성당의 첨탑을 볼 수 있다.

답동성당에서 싸리재를 지나 배다리로 오면 어릴 적 고유섭이 수학했던 의성사숙과 인천창영초등학교(옛 인천공립보통학교)가 나온다. 인천 3·1 만세운동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소년 고유섭은 1919년 태극기를 여러 개 그려 동네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만세를 부르며 골목길을 달리다 사흘 동안 체포되기도 했다.

배다리에서 도원역 인근에 세워진 '한국철도 최초 기공지'(1897년 3월 경인철도 기공식) 기념비에 당도하면 1코스는 끝난다. 개항기와 일제강점기 형성된 인천 구도심 역사를 둘러볼 수 있는 코스다.

우현의 길
우현 고유섭 선생이 태어난 동네인 인천 중구 용동큰우물 광장. 순례길학교 조용주 변호사가 만든 '우현의 길' 출발지다. 2024.6.12 /김용국기자 yong@kyeongin.com

■ 2코스 '미술관 가는 길'


숭의로터리를 지나 수인분당선 숭의역부터 인하대역까지 약 1.5㎞ 구간으로 2021년 조성된 '수인선 바람길숲'을 걷는다. 옛 수인선 협궤열차의 철길을 살려 만든 숲길로, 길 이름처럼 시원한 바람이 불어 이날처럼 초여름 날씨에 걷기 좋았다.

숭의역 이전에 있던 옛 남부역은 입영열차를 타던 추억의 장소이기도 하다. '남부역삼거리'란 지명으로 남아있다. 인하대역 근처 용현동·학익동 염전 부지는 과거 용현동·학익동 일대가 바다였던 시절을 상상하게 한다.

학익동 인천시립미술관 건립 예정 부지는 아직 미술관이 들어서진 않았지만, '우현의 길'에서 빠질 수 없는 장소다. 시립미술관이 개관하게 되면 코스에 추가될 전망이다.

조용주 변호사는 "인천시립미술관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우현을 기념하는 공간으로 조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인천지방병무청과 한나루공원을 거쳐 문학산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3코스 '애상의 청춘길'


3코스는 '우현의 길' 전체를 아우르는 이야기가 담겼다. 고유섭은 개성부립박물관장으로서 활발한 연구·집필활동을 하던 1936년 9월 '조광'에 '애상의 청춘기' 수필을 기고했다. 8년 전 인천 중구 집에서 산책을 나서 문학산을 넘어 능허대로 가면서 미추홀 백제의 흔적을 더듬는 여정을 쓴 감성적 수필이다.

그때의 고유섭처럼 옛 인천도호부 인근 문학산을 올라 학산서원터를 들렀다가 삼호현(사모지고개)을 넘었다. 연수구가 조성한 백제 사신길 벽화거리를 따라 인천시립박물관 앞뜰에 도착하면, 새얼문화재단이 1992년 세운 고유섭의 청동 좌상을 볼 수 있다. 그 옆에는 우현의 제자들이 1974년 제물포구락부(옛 시립박물관)에 세웠다가 현재 자리로 옮긴 추모비도 있다.

'애상의 청춘기' 여정의 목적지였던 능허대, 현 능허대공원에서 '우현의 길'은 마무리된다. 고유섭이 찾았을 당시에도 바닷가였던 능허대는 매립으로 인해 육지로 변했으나, 공원에 전시된 사진에서 옛 능허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우현의길
순례길학교 조용주 변호사가 '우현의 길' 마지막 장소인 연수구 능허대공원에서 길의 의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24.6.12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

이날 답사를 마친 조용주 변호사는 "특히 인천 학생들이 길을 걸으며 내 고향의 역사를 배우고, 자부심을 가질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