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

[경인칼럼] 바보들의 행진

입력 2024-06-18 19:42
지면 아이콘 지면 2024-06-19 19면
느닷없는 '해외 직구 규제'에 뿔난 국민
발표 내용 뒤집은 정부, 스타일만 구겨
압권은 AMAT 부지에 '신규택지' 지정
어설픈 국정… '늘공'마저 그밥 그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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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구 수원대 명예교수·객원논설위원
근래 들어 정부의 설익은 정책들이 자주 확인된다. 알리, 테무, 쉬인 등 중국 온라인 유통 플랫폼들의 한국시장 공략이 가시화되던 지난달 16일 정부가 해외직구에 제동을 걸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해외직구 급증에 따른 소비자 안전 강화 및 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하면서 KS인증이 없는 어린이용품과 전기·생활용품, 생활화학제품 80종에 대한 국내 반입 차단조치를 6월 중에 시행한다고 공표했다. 국민들이 구매하려는 제품이 해외직구 금지 품목인지 쉽게 알 수 있도록 공정거래위원회가 운영하는 '소비자24' 사이트(www.consumer.go.kr)에 띄우기로 했다.

그런데 지난달 19일 오후에 정부서울청사에서 이정원 국무조정실 국무2차장이 예정에 없던 브리핑을 열어 "저희가 말씀드린 '80개 위해(危害) 품목의 해외직구를 사전적으로 전면 금지·차단한다' 이건 사실이 아니다"라고 언급하며 3일 전의 한 총리 발표 내용을 뒤집었다. 이 국무2차장은 "80개 품목에 대해 관세청,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 등과 함께 집중적으로 위해성 조사를 하고, 위해성이 없으면 직구를 금지할 이유가 없다. 지금대로 직구해서 쓰셔도 된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느닷없는 규제에 뿔난 국민들의 동시다발적인 맹비난 때문이었다. 고물가에 시달리는 서민들이 한 푼이라도 아낄 요량으로 해외직구에 나선 것을 정부가 국내 유통구조는 바꾸지 않고 규제만 하려 든다며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전 비상대책위원장과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도 비판에 가세했다. 국무조정실과 관세청,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 식품안전처, 공정거래위원회 등 14개 부처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끝에 만들었다며 호기를 떨었는데 정부의 스타일만 구겼다.

해외직구 금지소동 다음날인 20일 국토교통부와 경찰청이 공동으로 내놓은 '2024년 교통사고 사망자 감소대책'에 '고령 운전자 운전자격 관리, 운전능력 평가를 통한 조건부 면허제'가 포함됐다. 고령자의 운전자격을 제한적으로 관리할 방침인데 조건부 면허제는 야간운전 및 고속도로 운전 금지, 속도제한 등을 조건으로 면허를 허용하는 방식이다.

이번에도 쓴소리가 쏟아졌다. "버스도, 택시도 안 들어오는 시골 어르신들은 무엇을 타고 다녀야 하냐"며 교통약자인 노인들의 이동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며 반발했다. 택시·트럭·덤프 등 생계형 고령 운전자들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이란 비난도 주목됐다. 논란이 커지자 이날 경찰청은 "조건부 운전면허는 이동권을 보장하고 교통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로 특정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제도는 아니다"라며 서둘러 진화했다.

어설픈 국정 수행의 최대 압권은 미국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AMAT)의 경기도 오산시 연구·개발(R&D)센터 건립부지 관련 혼선이다. 정부가 2022년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를 계기로 한 건 올렸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한 투자 건이다. 네덜란드의 ASML에 이어 세계 2위의 반도체 장비기업인 AMAT은 수천억 원을 들여 오는 2025년까지 R&D센터를 짓기로 하고 작년 8월에 오산시 가장동에 부지매입을 완료했다. 그런데 3개월 후인 지난해 11월에 국토교통부가 이 지역 일대를 8만 가구 신규택지 후보지(오산세교3지구)로 지정했다. 공공택지에 포함되면 개발행위가 금지돼 R&D센터 건립이 불가능하다. 경기도와 오산시는 정부의 뻘짓에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가 글로벌기업을 상대로 사기 같은 행위를 한 셈이니 말이다.

국토교통부와 경기도는 AMAT에 오산시의 옛 서울대병원 부지를 대체지로 고려했지만 금싸라기 땅을 외투기업에 내줘야 한다는 부담이 따른다.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가장동의 AMAT부지를 공공택지 후보지에서 제외하는 것이나 공공택지 후보지에 포함된 다른 기업 및 주민들이 특혜시비 거론하며 반발할 수도 있어 편치 못하다. AMAT의 몸값만 치솟게 생겼다.

어쩌다 공직을 맡은 '어공'들은 차치하더라도 국정 운영의 최고 전문가들인 '늘공'들까지 그 나물에 그 밥이니. 윤석열정부의 실수(?) 연발이 바보들의 행진 같아 편치 못하다.

/이한구 수원대 명예교수·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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