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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일하는 사람을 설득하는 법

입력 2024-06-20 20:09
지면 아이콘 지면 2024-06-21 14면
급하단 전화에 중단된 동료 밥시간
밥 넣은 배밑으로 자존심 흐르지만
숟가락 놓게 만드는건 존중의 태도
어디서 일하든 직원식당에 모이니
우대 아니어도 '같은 대접' 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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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석 시인
예전 직장에서 같이 일하던 동료들과 밥을 먹는데 상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다른 사무실 문을 급히 열어야 하는데 열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K뿐이라는 것이다. 당시 우리가 쓰던 사무실은 번호키였고 잘 안 쓰던 사무실이 하나 더 있었는데 갑자기 그 사무실을 열어야 하는 일이 생긴 모양이었다.

K는 식당에서 막 주문한 음식을 받아서 겨우 몇 술 뜨자마자 급하다는 전화에 그대로 상을 물리고 사무실로 돌아갔다. 우리가 보기엔 그게 그리 급한 일이 아니고 밥 다 먹고 가서 열어도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 일이었는데 상사의 판단은 달랐던 모양이다. 아니 달랐다기 보다는 우리의 식사에 큰 관심이 없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남은 우리는,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 둥의 속담을 주워섬기며 밥도 다 못 먹고 자리를 뜬 동료를 안타까워하고 상사를 욕했다.

당시 다니던 직장이 박봉이라지만 지붕이라도 가린 곳에서 일하느라 눈치를 좀 더 보게 되어서 그렇지, 지붕 없이 뙤약볕에 찬바람에 부평초처럼 휩쓸리며 오면 그만 가면 그만인 노가다판에서는 점심시간이 되었다 하면 바쁜 일에 뛰어나가기는커녕 하던 일도 다 멈추고 흙더미에 삽 던져 꽂아두고 밥 먹으러 가버리곤 했다. 육체노동을 하면 배도 쉽게 꺼지고 허기도 더 심하게 오기도 하거니와 몸 쓰는 사람들이 어디서 배우지 않아도 스스로 체득하게 되는 은은한 배짱과 자존심이 밥 넣은 배 밑으로 도도히 흐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몸 쓰는 사람들이 밥 챙기는 자존심만 있고 다른 일은 나 몰라라 하는 것은 아니다. 목숨을 건 파업과 엄중한 대치 속에서도 사측이 노조를 해산시키려고 점거농성 중인 공장의 물과 전기를 끊자, 차량용 페인트가 굳지 않게 발전기로 기계를 돌렸다는 쌍용자동차의 파업 이야기는 자존심만큼이나 강했던 일하는 사람의 책임감을 떠올리게 한다.



그럼 일하는 사람들이 먹던 밥숟가락 내려놓고 나서게 설득하는 방법은 뭘까. 인천공항에서 화물용 L-카트로 무거운 술 상자를 매장에 가져다주는 일을 하다 보면 매장 직원들이 이래라 저래라 해서 화가 난다는 동료들의 불평을 들을 때가 있다. 창고 직원들은 매장 앞으로 화물을 가져다주는 것까지가 일이고 매장 안에서 그걸 풀어서 전시하는 것은 매장 직원들의 일인데 술 상자가 무거워서 옮기기가 힘드니까 우리들더러 여기 놓아달라 저기 놓아달라 종 부리듯 부린다는 것이다. 그 얘기를 듣고 나니 그전에는 별 생각 없이 여기저기에 놓으란 대로 놓아주던 일에 내심 부아가 치밀었다. 수레를 가까이 대고 한쪽에 고스란히 내려놓으면 힘도 덜 들고 편한데 안그래도 무거운 술 상자를 들고 하나는 이쪽 구석에, 다른 하나는 저쪽 구석에 가져다 놓다가 보면 무거운 걸 들고 몇 걸음씩 더 걸어야 하니 좀 짜증도 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면 기왕에 수레에 무거운 상자를 싣고 와서 바닥에 부려놓는 김에, 매일 그 일을 해서 중량에 익숙한 우리가 몇 걸음 더 걸어서 내려놓으면 매장 직원 입장에서는 괜히 두 번씩 일 안 해서 좋을 것이다. 수레에서, 또는 바닥에서 중량을 들어 올리는 것이 힘들지, 기왕에 든 상태에서 몇 걸음 더 걷는 것은 전자에 비해 크게 힘든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동료의 노동을 서로 이해하고 입장을 존중해주는 태도는 사람의 마음을 무르게 한다. 감사하다는 말, 부탁한다는 말들이 가지고 있는 배려의 마음이 지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늘 몸보다 마음이 더 힘들기 마련이다.

일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좋은 대접이 아니라 같은 대접이다. 모두가 함께 공항에서 땀을 흘리며 일하고 다 같이 직원식당에서 줄을 서서 기다려 밥을 먹는다. 그러니 일의 방식이나 종류에 따라 대하는 태도가 구분되거나 차이 나지 않는 동등한 존중을 바라는 것이다.

먹던 숟가락을 꽂아놓고 나서느냐 푸던 삽을 꽂아 놓고 들어가느냐는 정말 마음 한장 차이다. 그리고 아무리 그래도 밥 먹다 말고 나가서 해야 할 만큼 중요한 일은 그리 많지 않고, 금강산도 식후경이며, 일하는 사람들이 밥을 먹을 때는 그 잠시의 평안을 지켜줘야 한다.

/이원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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