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최고 부자' 아버지 손세기와
모든 재산으로 국가 유산 지켜내
국가에 304점 기증 '금관문화훈장'
며칠전 별세, 죽음도 못 알리게 해
국립중앙박물관에 '父子기념실'도
국립중앙박물관에 '손세기·손창근 기념실'이 있다. 그곳에 국보 세한도가 세상과 조용히 만나고 있다. 세한도는 제주에서 한양으로 그리고 북경으로, 다시 서울에서 도쿄로 시간이 흐르며 주인도 바뀌었다. 주인은 바뀌어도 세한도는 변함이 없다. 180년 전 제주에서 추사 김정희는 제자 우선 이상적에게 세한도를 선물한다. 1844년 제주로 유배된 후 4년쯤 사람도 소식도 모두 끊겼다. 절대고독의 시간이다. 아무도 찾지 않는 유배길에 제자는 한결같았다. 그 마음을 담아 한 폭 그림으로 그렸다. 팥죽과 같은 먹물로 빗자루 쓸 듯 붓 하나로 그림에 혼을 담았다. 59세에 그린 인생작이 세한도(歲寒圖)다.
'추운 겨울이 된 후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이제야 알았다'. 세한연후지 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 松柏之後凋) 그림 속 글을 써 고마움도 담았다. '오랫동안 서로 잊지 말자' 장무상망(長毋相忘) 인장도 함께 넣었다. 인간의 모든 면을 생각하게 한다. 역관 이상적은 배 타고 제주를 떠나 한양에 온다. 그 후 청나라 북경으로 세한도를 지인들에게 알린다. 스승이 감격해 보내고, 제자는 가슴 따뜻하게 16인 발문을 받았다. 그림은 간단하고, 간명하다. 담백한 집 한 채 변함없는 마음이 전해진다.
삶의 고통 없이 무엇을 이룰 수 있을까. 이시영·오세창·정인보도 세한도에 발문을 담았다. 많은 사람이 그림을 보고, 김정희 삶을 생각한다. 180여 년 전 바다 건너 제주에서 세한도를 그리던 김정희, 80년 전 도쿄에서 100일간 세한도를 되찾으려 한 손재형, 해방 후 모든 재산을 세한도와 국가 유산을 위해 바꾼 손세기·손창근 부자를 생각한다. 삼각산 비봉 따라 자문 밖 석파정 별당과 소전 손재형 옛 가옥까지 걷는다. 마음으로 느껴야 세한도 진심을 알 수 있다.
제주 유배길 걷듯, 한여름 능소화 핀 손재형 옛 가옥에서 바람 소리와 감 익는 소리 들으며 세한도를 마주한다. 그린 사람 진심과 소장한 사람 마음 그리고 기증한 사람 뜻이 통해야 보인다. 그림을 통해 그 시간의 허물과 그 공간의 적막함을 읽으면 시작이다. 외로울 때 추사는 책을 읽었다. 차 마시며 그림도 그렸다. 바다 건너 배 타고 온 동갑 초의선사가 유일한 벗이다. 또한 제자 소치 허련의 말동무와 그림 가르침도 유일한 낙이다.
칠십 평생 열 개 벼루가 구멍이 뚫리고, 천 개 붓이 뭉그러질 때까지 글 쓰고 그림을 그렸다. 세한도 탄생과 세한도를 지킨 이유다. 고독과 마주한 그의 작품을 보면 숙연해진다. 끝없는 열정 추사 김정희와 95세 노구에도 세한도를 사랑한 손창근 선생의 진심에 가슴이 뜨겁다. 한여름 순례길 걷듯 능소화 핀 길 위에서 길을 만난다.
/최철호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