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뉴턴·간디·이창호…
'고른손'·'착한손' 부르면 어떨까
옳고 바름 못잖게 형평·멋짐 중요
뜻 모이면 인식·통념도 변경 가능
소설 '마담 보봐리'의 작자인 프랑스의 문인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일물일어(一物一語)를 주장했다. 하나의 사물과 상황에 맞는 단어는 딱 하나뿐이라는 거다. 김춘수 시인의 '꽃'은 어떨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 와서 꽃이 되었다'. 이름은 어쩌면 개별적이고 독립적이면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 고유한 정의(定義)가 아닐까.
삼라만상은 대체로 나무나 돌 같은 가치 중립적인 이름을 가진다. 차별이나 선악의 구별이 없다. 여자와 남자, 흑인과 백인, 유년과 노년은 형상적 사회적 구별이지 명칭 자체로 차별은 아니다. 다만 이를 이유로 불편이나 불이익을 준다면 비인간적 차별인 거다. 한국에서 차별금지법은 2007년 제17대 국회에서 발의됐으나 지금까지 법안이 통과되지 않았다. 논의된 차별의 대상은 성별 인종 나이 장애 외모 국적 학력 성정체성 종교 등을 포함한다. 그런데 보이는 듯 아닌 듯 만연한 '왼손'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을 이대로 모른 척해도 되나.
무엇보다 이름부터 문제다. 오른손 바른손은 옳거나 바름을 나타낸다. 왼손의 '외다'는 표준국어대사전에 '마음이 꼬여 있다. 물건이 좌우가 뒤바뀌어 놓여서 쓰기에 불편하다'는 뜻으로 설명돼 있다. 영어의 라이트(right)도 올바른 정확한 등의 뜻이 있다. 레프트(left)는 그만둔 남겨진 등의 뜻이다. 프랑스어도 그렇다. 오른쪽 드르와(droit)는 옳은 공정한, 왼쪽 고쉬(gauche)는 비뚤어진 뒤틀린 서투른 등의 의미이다. 무슬림도 오른손 우선이다. 아랍어의 오른쪽이란 단어의 어근은 행복 성공 번영을 의미한다. 그래서 신발을 신거나 모스크에 들어갈 때 오른발이 먼저이다. 용변을 볼 때는 왼손, 화장실에 들어갈 때는 왼발이다.
이름이 관념을 지배한 결과이든 관념에 의한 명명이든 왼손 왼발에 대한 집단 괴롭힘이 아닌가. 왼손이 무슨 죄인가. 노자는 말했다. 백조는 희고 까마귀는 검은데, 흰색을 찬양하면 본디 검게 태어난 까마귀는 어쩌라는 것이냐고. 청적황흑백(靑赤黃黑白) 색깔에 상하와 귀천이 있느냐고.
공자도 정명(正名)을 강조했다. 임금은 임금 답고 신하는 신하 답고 아버지는 아버지 답고 자식은 자식 다워야 한다고. 정의를 정의라, 불의는 불의라 해야 한다고. 불의를 정의라 하면 정명이 아니라고. 이름은 실제에 걸맞아야 한다고. 그러면 과연 왼손의 명칭은 정명인가.
요즘은 왼손으로 글씨도 쓰고 젓가락질 하는 이가 부쩍 늘었다. 역사적으로도 왼손잡이 위인은 많다. 알렉산더와 카이사르,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 뉴턴과 아인슈타인, 베토벤 피카소 안데르센 간디도 있다. 폴 매카트니와 빌 게이츠도, 바둑 천재 이창호와 홈런왕 이승엽도 왼손이다. 차제에 왼손을 고르다는 '고른손' 어질다는 '어진손' 또는 '착한손'으로 부르면 어떨까. 옳고 바름 못지 않게 형평과 멋짐도 중요하다. 영어로 이븐(even)이나 와이즈(wise) 나이스(nice) 핸드이다. 뜻이 모이면 인식도 통념도 바꿀 수 있다.
/박종권 칼럼니스트·(사)다산연구소 기획위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