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분단의 기억

침략 도구에서 평화 상징으로… 철마는 분단 딛고 통일 향한다

입력 2024-07-01 20:57 수정 2024-07-01 21:22
지면 아이콘 지면 2024-07-02 11면

[전쟁과 분단의 기억 시즌2·(7)] 광복 - 경원선 연천역


1912년 일제 대륙 침략 목적 이용 개통
수송 크게 기여… 6·25 후 일부만 운행
남북정상회담 당시 복원 논의·현재 중단
이제는 관광지… 주민들 철도연장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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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 백마고지역 철도중단점의 정지 표지판. 2024.6.28 /이영선기자 zero@kyeongin.com

■ 수탈을 위해 탄생한 철도, 그리고 경원선


경원선 연천역이 문을 연 건 1912년 7월 25일 일이다. 용산과 의정부를 거쳐 연천으로 이어진 경원선은 철원을 넘어 북한 원산까지 연결됐다.



경원선은 서해안과 동해안을 서북으로 횡단해 두만강에서 일본의 서북지방~한반도~만주 동북부 지역을 잇는 간선철도였다. 전구간 222.7㎞로 일본이 대한민국을 강제병합한 직후 착공된 경원선의 목적은 다름 아닌 대륙 침략의 발판을 만드는 것이었다.

경원선의 착공과 동시에 일본은 호남선의 착공도 추진했다. 이전에 개통된 경부선(용산~부산), 경의선(용산~신의주)까지 포함해 일본의 'X자' 철도망이 완성됐다. 19세기 말부터 이어오던 일본의 대륙침략 구상의 시작이었다.

조선총독부통계연보에 따르면 철도를 통한 화물 수송량은 1910년 90만3천t에서 1940년 2천562만5천t으로 증가했다. 경원선은 경부선과 경의선의 뒤를 이어 3번째로 많은 화물량인 199만8천여t을 수송했다. 경원선을 이용해 다량의 화물이 서울에서 원산을 통해 일본과 대륙 방면으로 원거리 수송이 이어졌다.

일제시기 철도가 운반했던 화물은 식민지 경제의 단면을 반영한다. 1910~1930년대까지 철도에 의한 물자 수송은 농산품이 압도적이었고 공산품도 2배 이상 증가했다.

대전을 중심으로 연결된 경부선과 호남선은 전라도의 농산물을 일본으로 반출하는 주요 교통로였다. 또한 경부선과 경원선 등을 활용해 일본과 만주를 빠르게 연결해 병참노선화했다.

수탈의 창구로 사용된 경부선과 호남선은 현재 주요 교통로가 됐고, 경의선과 경원선 일부는 전철로 시민의 발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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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원선 (구)연천역. 2024.6.28 /이영선기자 zero@kyeongin.com

■ 분단의 아픔이 평화의 상징으로


경원선 연천역은 위도 상 38도 위에 있어 6·25 전쟁 이전에 소련군정과 북한에 속해 있었다. 연천역이 있는 연천읍 차탄리는 일제강점기와 북한 점령기에 연천군 전 지역을 잇는 교통의 요지였지만 전쟁 후 연천군 대부분이 수복되고 연천군의 중심이 전곡읍으로 넘어가 기능을 상실해갔다.

남북분단으로 인해 전체의 40%만 운행되는 경원선은 북한을 목전에 두고 끊겨 있다. 도내 경원선 구간 중 마지막 역인 신탄리역도 지난 2019년부터 동두천~연천간 전철화 사업으로 운행이 중단돼있다. 용산~신탄리 88.8㎞, 신탄리~원산 131.7㎞. 현재 경원선이 국내에 연결된 철도보다 원산까지의 철도가 훨씬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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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 고대산 폐터널 인근의 폐철교. 2024.6.28 /이영선기자 zero@kyeongin.com

신탄리역을 넘어 4㎞를 가다보면 고대산 폐터널이 있다. 주민들에겐 폐터널보다 '역고드름'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다. 그저 관광지 같은 이름과 달리 이곳도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다.

폐터널은 일제강점기에 경원선의 추가 노선을 계획하며 공사하던 곳으로 일본의 패망과 함께 중단됐다. 6·25 전쟁 당시 미국의 폭격으로 터널 상판에 균열이 생기면서 역고드름이 생성된다. 본래의 목적과는 달리 관광지로 변모했지만 철도 연장의 건설 취지답게 터널 인근엔 폐교각과 철교가 풀숲 사이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폐철교를 보면 증기기관차가 기적소리를 울리며 북쪽을 향해 전진하는 모습이 연상된다. 큰 비석처럼 보이는 폐교각도 우두커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경원선이 지났던 길, 또는 경원선이 지나가려고 했던 길들의 흔적이 연천 곳곳에 남아있다.

지난 2002년부터 철원 주민들의 요구로 2012년 11월 신탄리역에서 철원 백마고지역까지 5.6㎞ 구간이 연장 개통됐다. 더 나아가 2018년 철원에서 남방한계선 인근인 월정리역까지 연결하려 했으나 실행되지 않았다. 또한 백마고지역까지 연장됐던 구간은 2019년 다시 멈췄다. 현재는 기약없이 연장만 기다릴 뿐이다.

지난 2018년 남북 정상은 판문점 선언을 통해 경의선과 동해선 복원을 약속했다. 경원선은 북측 군사분계선에서 평강역까지 14.8㎞와 철원에서 월정리역, 군사분계선까지 11.7㎞를 더해 총 26.5㎞만 복원하면 즉각 남북 철도의 연결이 가능해지기에 남북 평화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희망과는 달리 남북 관계는 퇴색되면서 복원 논의는 멈춰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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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 신탄리역에 위치한 (구)철도중단점. 2024.6.28 /이영선기자 zero@kyeongin.com

■ 경원선의 미래는


지금 옛 경원선 연천역 역사는 관광안내소로 활용되고 있다.

연천군은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재인폭포, 전곡선사박물관 등 연천 명소 코스를 순환하는 시티투어버스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주 1회씩 'DMZ안보관광코스', '역사문화체험코스' 등 연천 특화 관광상품도 운영중이다. 기자가 방문한 지난달 28일에도 관광안내소는 이용객들로 북적거렸다.

지난해 12월 소요산까지만 운행됐던 수도권 1호선 전철이 연천역까지 연장됐다. 경원선 전철화 사업의 일환이다. 하지만 아직 신탄리~철원(백마고지) 구간이 남아있다. 주민들은 지속해서 경원선 1호선의 연장 운행을 요청하고 있다.

휑한 신탄리 역사 내에 전시된 이돈희 시인의 시 '신탄리'는 '낙엽 구르고 억새 서걱이는 / 레일 없는 철길 / 아물지 못하는 전쟁의 탄흔들이 / 아픈 역사를 노래한다'는 구절이 있다.

이어서 이런 구절도 있다. '북으로 더 못가고 / 그렁거리던 통일호 열차가 / 잡목숲 산을 돌아 남으로 간다 / 이산의 아픔으로 / 실향의 그리움으로 / 시인의 가슴으로 / 다음역 이정표 없는 철도 중단역에서 / 머뭇거린다'.

일제 수탈의 역사가 평화의 상징이 됐다. 연천역을 넘어 탄천리역, 백마고지역, 월정리역 그 다음으로 원산까지 철마의 목적지는 있지만 가로막혀있다. '철마는 아직 달리고 싶은' 경원선의 앞날을 주목할 때다.

/이영선기자 zero@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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