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칼럼

[경인칼럼] 사라진 '내마음의 협궤열차'

입력 2024-07-02 20:15
지면 아이콘 지면 2024-07-03 19면
협궤 수인선 원형 간직했던 '송도역사'
연수구, 원형보존 방침 번복하고 철거
여러 문학작품 배경·추억이 서린 장소
시민 생활사, 기록으로나마 복원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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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수 인하대 초빙교수·객원논설위원
'내마음의 협궤열차'는 작고한 이가림 시인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연작시 '내 마음의 협궤열차1'은 '측백나무 울타리가 있는/ 정거장에서/ 장난감 같은/ 내 철없는 협궤열차는/ 떠난다'라는 구절로 시작한다. 다음 연에서 시적 주인공은 협궤열차를 타고 끊어진 철교를 넘어 아스라한 은하수를 향해 기적을 울리며 떠나간다. 이 상상의 철도 여행이 시작되는 출발점인 '측백나무 울타리가 있는 정거장'은 바로 옛 송도역이다.

협궤열차와 소래포구는 소설의 공간이기도 하다. 윤후명의 장편 소설 '협궤열차'(1992)는 협궤열차를 배경으로 한 남녀의 사랑과 이별이 주제이다. 수인선 연변의 한 소도시에 사는 주인공이 헤어졌던 옛 연인과 함께 협궤열차를 타고 여행하면서 사랑과 생활, 이별과 만남의 의미를 반추하는 것이 소설의 내용이다. 이산가족의 아픔을 다룬 소설 이원규의 단편 '포구의 황혼'에도 수인선은 인상적으로 그려져 있다. 포구의 적막과 어둠을 헤치고 철교 위를 달려가는 협궤열차의 모습은 분단 현실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런데 여러 문학 작품들의 배경, 상상 여행의 장소였던 옛 송도역사가 사라졌다. 협궤열차 수인선 마지막 역이었던 옛 송도역사 건물이 지난 5월에 철거된 것이다. 연수구청은 송도역사 철거가 정밀안전진단 결과에 따른 것이라 한다. 안전진단 결과 사용을 금지하고 보강·개축해야 하는 E등급을 받았다는 것인데 이 같은 결과는 송도역사가 수인선 폐선 이후 20여년간 사실상 방치해 왔기 때문에 예견된 것이다. 구조물 보강이나 부분 개축을 통해 얼마든지 복원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음에도 대안을 찾을 노력은 하지 않고 철거해버린 것이다.

옛 송도역사 복원사업이 주목받은 이유는 역사건물의 현대사에서 차지하는 역사적 가치 때문이었다. 수인선은 일제가 경기도 내륙의 미곡을 인천으로 수송하고 인천으로부터는 생활물자를 보낼 목적으로, 인천에서 수원을 거쳐 여주에 이르는 52㎞ 구간에 부설한 철도였다. 옛 송도역사는 1937년 개통한 협궤 수인선 역사 가운데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유일한 역사였으며, 1973년 남인천역 폐쇄 이후 20여 년간 수인선의 종착역으로 남아 있었다. 수인선은 해방 후 포구의 어민들이 소금과 수산물을 내다 파는 생업의 길이었으며 통학생들의 꿈을 실어 나른 길이었다. 송도역은 협궤열차를 타고 수원과 인천을 오갔던 사람들의 숱한 사연과 추억이 서린 장소였다.

송도역사의 가치에 대해서 관련 전문가뿐만 아니라 연수구청에서도 여러 수인선 역 가운데 유일하게 철거되지 않은 역사라고 주장해왔다. 연수구청장은 지난해 5월 '승기천·송도역 현장방문' 시에도 송도역사의 복원을 강조했으며, 12월에 열린 '송도역사 복원공사 착수보고회'에서도 송도역사의 가치를 살려 문화공원으로 복원할 것을 주문한 바 있다. 지역문화계에서는 이 같은 원형복원 방침을 번복한 것이어서 이번 조치를 납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옛 송도역사는 그 자리에 남아 있어야 했다. 그 때문에 2018년 인천시 도시계획위원회에서는 옛송도역사 건물부지가 도로에 포함되어 있어 건물이 철거될 위기에 처했을 때, 도로폭을 축소하는 도시계획 변경안을 제출하여 옛 송도역사 건물 전체를 문화공원 안에 보존될 수 있도록 조치한 바 있다. 연수구청도 2019년부터 전문가와 문화계 인사들로 구성된 송도역사복원추진위원회까지 구성하여 자문을 받아왔으며, 2021년에는 수인선 송도역사 전시회를 개최하기도 했으나 이번 일로 그간의 노력을 허사로 만들었다.

'측백나무 울타리가 있는 정거장'을 없앰으로써 수인선의 역사도 사라지고 '협궤열차를 타고 세계의 끝, 영원 속으로 내달리던' 낭만적 상상도 이제는 불가능해졌다. 엎질러진 물이 되고 만 것이다. 남은 것은 사후약방문같은 주문, 수인선과 협궤열차에 기대 살았던 시민 생활사를 기록으로나마 충실히 복원하고, 옛송도역이 빼어난 철도문학을 낳은 장소였음을 기억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이라도 고민해보자는 것이다.

/김창수 인하대 초빙교수·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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