꿉꿉한데 빗물 차올라… 잠들기 두려운 이주노동자

입력 2024-07-03 20:40 수정 2024-07-03 21:11
지면 아이콘 지면 2024-07-04 7면

열악한 주거환경, 장마 무방비

비닐하우스 숙소안 습기 안 빠져
선풍기 역부족 "빨래 건조 3~4일"
도로보다 낮아… 침수 위험 노출
배수 안된 비에 여기저기 웅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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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찾은 포천시 가산면의 한 이주노동자 숙소는 인근 도로보다 1m가량 낮은 지대에 설치돼 침수 위험이 높아 보였다. 2024.7.2 /목은수기자 wood@kyeongin.com

전국에 비가 내린 지난 2일 오후 5시께 찾은 포천시 가산면의 한 농장. 검은 차광막으로 덮인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가자 샌드위치 패널로 만든 임시 가건물 형태의 숙소가 나타났다. 여기서 태국인 여성 이주노동자 푸이(20·가명)씨는 환기를 위해 문을 다 열어놓고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요리 중에 나온 연기와 음식 냄새는 차광막에 갇혀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했다.

푸이씨가 27살 언니와 함께 지낸다며 안내한 방문을 열자 꿉꿉한 냄새와 함께 무거운 공기가 훅 끼쳤다. 방 안에는 두 명의 이부자리 위로 선풍기 한 대가 연신 돌아가고 있었다. 다른 이주노동자 2명과 함께 사용하는 공용 공간엔 에어컨이 설치돼 있었지만, 더위를 막고 습도를 낮추기엔 역부족이라고 푸이씨는 설명했다. 정작 잠을 잘 때는 안전이 우려돼 방문을 걸어 잠그기 때문이다.



본격 장마철을 앞두고 비닐하우스 등 열악한 환경에서 거주하는 이주노동자들이 폭우와 폭염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이들 대부분이 거주하는 샌드위치 패널 형태의 가건물은 별다른 기반 공사없이 지면과 맞닿은 채 지어져 방습이 이뤄지지 않는 데다 환기도 원활하지 않다.

인근에 거주하는 네팔인 이주노동자 키마(32·가명)씨는 장마철에 빨래가 마르지 않는 게 가장 고역이라고 했다. 비가 올 때 밖에서 농사일을 하면 옷이 다 젖어 바로 세탁해야 하지만, 햇볕이 들지 않고 바람이 통하지 않는 차광막 안에 빨래를 널다 보니 마르는 데 시간도 오래 걸린다.

키마씨는 "박스를 옮기러 (비닐하우스)밖을 왔다갔다 해 옷 안까지 비로 다 젖는다"며 "(빨래를) 널어두면 마르는 데 3~4일은 걸린다"고 했다.

무엇보다 장마철 침수 위험에 노출돼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이날 포천 곳곳의 이주노동자 숙소들은 인근 도로에 비해 1m가량 지대가 낮은 곳에 위치해 있어 침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오전부터 쏟아진 비는 오후께 잠잠해졌지만, 이미 숙소 인근엔 물 웅덩이가 군데군데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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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내부는 유일한 창이 검은 천으로 가려진 탓에 통풍이 되지 않아, 방문을 열자 습기를 머금은 꿉꿉한 냄새가 퍼졌다. 2024.7.2 /목은수기자 wood@kyeongin.com

지난 2022년 8월 이천시 율면에 내린 집중호우로 인근 저수지 둑이 무너지면서 100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한 바 있다. 당시 이재민 대피소를 찾은 10명 중 8명이 이주노동자였고, 모두 인근 농장에서 일하며 비닐하우스 형태의 가건물 숙소에서 지내던 이들이었다.

고용노동부는 폭염과 장마에 대비해 이주노동자 거주 시설에 대한 현장 점검을 전국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노동부 관계자는 "외국인 근로자 주거정책이 미흡한 건 사실이지만, 근로자가 들어올 때 본인이 직접 주거 형태를 확인하게 하는 등 제도 변화를 만들고 있다"며 "8월에도 장마와 폭염 관련 감전·침수·붕괴 등 위험 요인을 살피는 점검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목은수기자 wood@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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