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국, 프랑스, 미국에서 벌어진 선거 결과나 과정은 권력의 비정하고 예측 불가능한 속성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지난 4일 영국 총선에선 노동당이 과반의석을 훨씬 넘기는 압승으로 당 대표인 키어 스타머가 총리에 취임했다. 14년 만의 정권교체다. 노동당의 승리는 보수당 심판의 결과다. 누가 노동당을 이끌었어도 승리했을 선거라는 얘기다.
그런데 노동당 내 좌파와 청년들의 지지를 받던 제레미 코빈 전 당대표는 안 보인다. 새로 대표가 된 스타머가 2020년 반유대주의 옹호 혐의로 그를 출당시켰기 때문이다. 테레사 메이, 보리스 존슨, 리즈 트러스, 리시 수낙으로 이어진 보수당 정권에 대한 국민적 반발을 감안하면 코빈 전 당대표도 얼마든지 집권 기회가 있었다.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서민형 이미지로 인기도 좋았다. 하지만 그는 당내 내부 투쟁에서 밀렸고, 정권교체의 빅벤은 키어 스타머 앞에서 종을 울렸다.
프랑스에선 7일(현지 시간) 치러진 총선 2차 투표에서 극우 정당인 RN(국민연합)의 대약진이 예상된다. 마크롱 대통령이 야당 쪽에 총리를 내줄 판이다. RN의 지배주주(?)인 마린 르펜이 이번 총선을 발판으로 차기 대선에서 정권을 잡을지 유럽 정계가 신경을 곤두세운다. RN은 마린 르펜이 아버지 장 마리 르펜이 창당한 FN(국민전선)을 물려받아 개조한 정당이다. 개조 과정에서 반이민·반유대 극우 이미지를 탈색하려 아버지를 출당시켰다.
대선을 앞둔 미국에선 민주당이 대선 후보 교체론으로 자중지란에 빠졌다. 당 후보인 바이든 대통령이 TV토론에서 무기력한 노쇠증으로 트럼프에 패한 직후, 후보 교체론이 대세가 됐다. 대안으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미셸 오바마 전 영부인까지 등장했다. 바이든의 권력 의지는 굳건하지만 민주당 내 후보 교체 의지도 도도하다. 미국 대선이 민주당의 후보 교체 여부에 달린 초유의 상황이다. 오히려 트럼프가 불안해졌다.
나눌 수 있는 권력은 권력이 아니다. 또 의지만으로 가질 수도 유지할 수도 없는 것이 권력이다. 시대와 민심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별의 순간이 준비된 사람을 찾아낸다. 대통령 지지율이 바닥을 기고, 집권 여당의 전당대회는 영부인의 문자로 자중지란이며, 거대 야당은 1인 독주에 갇혔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놀랍지 않을 정치 혼란이다. 혼란의 마침표가 나라와 국민 편에 찍히길 바랄 뿐이다.
/윤인수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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