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고] 처벌보다 기회 먼저 줘야

입력 2024-07-11 20:22
지면 아이콘 지면 2024-07-12 14면
2년 보호관찰 처분 받은 10대 소녀
불량친구들과 어울리며 일탈 이유
종료일 며칠 앞두고 1년 연장 요청
"대학 목표로… 미래 준비하고파"
선도로 가능하다면 기회 우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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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권 동두천문화원 부설 예절원 원장
이달 초 의정부에서 한 10대 청소년의 대견한 사연이 알려지며 많은 이의 심금을 울렸다. 개인적으로도 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동으로 뭉클했다. 사연의 주인공인 10대 소녀는 2022년 법원으로부터 2년간의 보호관찰 처분을 받고 그동안 이를 수행하고 있었다. 보호관찰 처분을 받게 된 건 술을 마시고 한 일탈행동 때문이었다.

보호관찰 기간에는 이전처럼 마음대로 행동할 수 없고 법무부가 정해준 교화 교육을 받아야 한다. 한창 혈기 왕성한 10대 청소년에겐 매일 갑갑한 생활의 연속일 수 있다. 이 소녀는 이렇게 엄한 보호관찰 기간 종료 일을 며칠 앞두고 법원에 한 통의 손편지를 보냈다. 편지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보호관찰 기간을 1년 더 연장해 달라는 요청이다. 며칠도 아닌 무려 1년을 더 보호처분을 받겠다고 자청한 것이다. 이런 놀라운 요청을 한 데는 그만한 사정이 숨어 있었다. 사실 이 소녀는 그동안 부모 없이 불안정한 가정에서 불량 친구들과 어울리며 일탈 행동을 일삼았다. 보살핌 없이 외톨이로 자란 것이다. 그런데 보호관찰이 시작되고 생활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주거환경이 달라지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보호관찰소에서 제공하는 심리상담과 멘토링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점차 안정을 되찾아 갔다.



이 소녀는 2년간 검정고시를 준비해 최근 합격했고 잊고 있던 가수의 꿈도 다시 꾸게 됐다. 이 소녀는 "대학까지 가는 것이 남은 청소년 기간 이루고 싶은 목표"라며 "더 나은 미래 준비를 해서 성인이 되는 모습을 보여드리겠다"는 다부진 포부까지 편지에 남겼다.

청소년 중범죄가 증가하면서 촉법소년의 나이 기준을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아마 청소년 범죄가 갈수록 성인과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흉악해지고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러나 몸과 마음이 자라는 성장기 청소년은 성인보다 더 많은 변화의 여지가 있다. 그래서 애초에 법은 나이에 따라 범법소년(만 10세 미만), 촉법소년(만 10~14세 미만), 범죄소년(만 14~19세 미만)으로 구분해 처벌하고 있다.

만일 청소년에게 성인과 똑같은 처벌기준을 적용했다면, 앞서 언급한 감동 사연은 당연히 없었을 것이다. 이 때문에 미성년 범법자에게는 처벌보다는 기회가 더 중요할 수 있다.

청소년 보호관찰 현장에서는 앞서 소개한 사연과 같이 진심으로 반성하고 달라지는 청소년이 생각보다 많다. 심리상담을 받는 청소년 중에서는 상담사의 노력 끝에 마음의 문을 열고 180도 달라진 생활을 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물론 보호관찰이 끝나고 다시 범죄를 저지르거나 더 악화하는 경우도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경찰 단계 선도프로그램을 받은 소년범이나 비행청소년 중 3분의 1 정도가 다시 범죄의 길로 빠지는 것으로 조사된다.

보호관찰 청소년 상담 경험이 있는 한 전문가의 말을 빌리면 이들을 선도하는 데는 많은 인내가 필요하다고 한다. 엇나간 아이일수록 그 인내의 시간이 길고 여러 방법을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전문가는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변화의 효과 때문이라고 했다. 변화의 시간은 더디지만 그 효과는 오래 간다고 했다. 가출과 절도를 밥 먹듯 하던 아이가 체계적이고 꾸준한 상담과 교화로 어엿한 대학생이 돼 다시 찾아왔을 때 그 보람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한다. 물론 강력한 형벌로도 같은 교화의 효과를 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대상이 청소년이라면 죄질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선도로도 가능하다면 기회가 우선해야 한다고 본다. 스스로 깨닫고 뉘우치고 변화할 기회를 줘야 한다. 가정환경이나 주변 친구들의 영향으로 잠시 나쁜 길로 빠진 것이라면 전문적인 선도프로그램으로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곧 여름방학이다. 방학기간 청소년 범죄 비율이 8% 정도 오른다는 경찰 통계도 있다. 사실 선도나 처벌보다 우선하는 것은 예방이다. 각급 학교나 가정에서는 이 점에 유의하길 바란다.

/이병권 동두천문화원 부설 예절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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