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였다" 분노를 재우는 말… '참사 공화국'에 보내는 오답노트

입력 2024-07-11 19:11 수정 2024-07-12 14:30
지면 아이콘 지면 2024-07-12 11면

화성 리튬공장 참사는 한국의 현실

'사회적 약자' 피해자 되는 시스템

계급별 사각지대로 위험은 흘러간다


미국 참사 역사 사례별 분석

사고가 가능한 구조 위 현실 주목

우연한 사고는 없다는 역설로 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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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오전 화성시 서신면 리튬전지 공자 화재 현장에서 경찰과 소방, 국립과학사수연구원 등 유관기관 관계자들이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2024.6.25 /최은성기자 ces7198@kyeongin.com

■ 사고는 없다┃제시 싱어 지음. 김승진 옮김. 위즈덤하우스 펴냄. 456쪽. 2만3천원


'사고는 없다'
'나는 알 수 없었던 일, 누구도 알려주지 않던 탈출법, 그래서 당연하다고 여겼던 하루하루….' 수많은 참사 현장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생존자의 증언은 어쩌면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사망자의 유언일지도 모른다.

최근 화성시 전곡산업단지에서 벌어진 아리셀 배터리 공장 참사는 변하지 않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처참하게 드러냈다. 원청에서 하청으로, 하청에서 재하청으로, 내국인에서 이주민으로…. 산업 현장에 도사리는 위험은 그대로이나, 이 위험을 도맡게 되는 당사자는 사회적 약자를 향해 더욱더 아래로 뻗어 가는 중이다. '위험의 이주화'라는 새로운 조어까지 등장한 배경이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문제이길래 비극은 자꾸 반복되는 것일까. 신간 '사고는 없다'는 미국의 저널리스트 제시 싱어가 '참사 공화국' 대한민국에 보내는 오답 노트다. 책은 직접적으로 한국 사례를 다루지는 않지만, 한 세기 동안 미국에서 발생한 참사의 역사를 사례별로 하나하나 분석하며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준다.

"'사고'라는 말을 쓰지 말자고 주장할 때는 누가 해를 입었는지, 그리고 누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 … 너무나 많은 경우에 '그것은 사고였다'는 말은 권력자들이 만든 위험한 조건에 대해 그들의 책임을 면제해 준다. 그리고 그들은 사고가 계속해서 나고 또 나게 만든다(175쪽)."

저자는 '사고'라는 단어가 외면하고 마는 시스템의 위기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고자 오히려 해당 단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한다. 충분히 막을 수 있던 누군가의 죽음을 분석하며, '사고'라는 표현이 어떻게 피해자를 손가락질하고 사회적인 분노를 잠재우는지 짚는다. 더 나아가 '사고'가 왜 불평등하게 일어나는지, 그 이면에 담긴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한다.

지난 1911년 미국 뉴욕에서 벌어진 대형 참사, '트라이앵글 화재 사건'에 대해 저자는 "건물은 환기가 거의 되지 않았고 스프링클러 시스템도 없었다. 비상구는 너무 적었고 불이 잘 붙는 헝겊이 도처에 쌓여 있었다. 146명의 노동자가 사망했고 대부분 여성이었다. 일부는 잠긴 문 뒤에서 질식했고, 많은 이들이 건물에서 뛰어내리다 숨졌으며, 또 다른 이들은 화상으로 사망했다"고 전하며 참사에 숨은 구조적 문제를 환기한다.

특히 인종·민족·계층·성별 등에 따라 사고를 당할 확률 등이 달라지는 점은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의 일상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기피 업종은 현재 이주 노동자의 노동력으로 지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노동이 '3D'라는 멸칭을 얻게 된 것은 문자 그대로 '위험한 일'에 해당하는 탓이다. 이는 산업 현장에서 참사로 사망하는 시민 중 유독 이주 노동자가 두드러지는 이유이자 가장 의미심장한 단서다.

책은 이렇게 참사를 낱낱이 해부한 뒤, '사고'를 예방하는 일에 헌신하고 있는 사람들 이야기로 넘어간다. 안전한 사회로 나가게끔 변화를 촉구하는 등 고군분투하는 이들이다. 이를 통해 '사고'의 후폭풍을 사회가 도맡아 완화하는 구조를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책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던 단어, 우연한 '사고'는 마침내 결코 '사고는 없다'는 역설로 귀결된다.

/유혜연기자 pi@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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