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배우자인 영부인은 숙명적으로 최고 권력자의 최측근의 지위에 오른다. 법적으로는 아무 권력이 없지만 배후 권력의 원천으로 주목받는다. 추앙과 추문의 기로에 서기에 딱 알맞은 자리다. 육영수는 단아한 민생행보로 박정희의 독재를 온기로 완화해 영부인의 전형으로 남았다. 이후 영부인들은 상당수가 권력형 스캔들에 휘말렸다. 그래도 육영수를 비롯한 역대 영부인들의 활동공간은 정국과 정무의 배후였다.
윤석열 대통령 영부인 김건희 여사는 등장부터 정국의 중심에 섰다.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과 야당 대선 후보로 정국의 중심에 설 때마다 정적의 표적이 된 탓이다.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 대권후보로 급부상하자 '쥴리 의혹', '박사 논문 표절 의혹'이 터졌다.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이 검찰총장 인사청문회에서 제기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도 본격화됐다. 윤석열 공격거리가 빈약하자 부인을 타깃으로 삼은 양상이다.
대선 이후에도 명품백 수수의혹, 서울양평고속도로 종점 변경 특혜 의혹이 이어졌다. 대선에서 석패한 민주당은 정권의 아킬레스 건으로 영부인을 지목했다. 거짓으로 밝혀진 의혹도 많지만 야당에게 '김건희 특검'의 빌미를 준 의혹들도 있다. 김 여사의 처신도 문제가 됐다. 쥴리의혹 때는 진보매체 기자에게 사적으로 해명했고, 명품백 수수의혹은 부친과의 친분을 앞세운 목사를 의심 없이 면담했다.
집권여당 대표 경선에서 김 여사가 문자 게이트로 또 다시 정국의 중심에 섰다. 지난 총선에서 명품백 수수의혹에 대한 대국민 사과 여부를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에게 결정해달라는 5건의 문자가 공개됐다. 내용이 적나라하다. 대통령과 한 전 위원장이 싸운 사실은 물론, 집권세력 내부의 세력 다툼이 생생하게 담겼다. 대표 경선은 읽씹논란을 거쳐 후보들의 공존 불능 지경으로 치닫는다.
문제의 문자는 대통령과 영부인의 용인 없이는 공개할 수 없는 권력 배후의 비화(秘話)다. 문자는 한 전 위원장을 겨냥했는데, 역풍은 청와대와 김여사로 향한다. 열받은 진중권씨가 57분 통화록을 공개하자 김 여사가 궁지에 몰렸다. 사적인 면담과 영상과 통화와 문자가 수시로 공개돼 정치 스캔들을 일으킨 영부인은 기억에 없다. 영부인의 권력이 아무리 커도 규방의 문지방을 넘지는 않았다. 영부인의 문자 게이트로 보수 정당이 자멸할 지경이라니, 살면서 별꼴을 다 본다 싶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