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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아고라] 역사를 잊은 민족, 민족을 잊은 역사

입력 2024-07-15 20:06
지면 아이콘 지면 2024-07-16 18면
우리가 그냥 독립을 얻은게
절대 아님을 반드시 가르쳐야
영웅들 활약상 모르는 세대들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이
무얼 의미하는지 알길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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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선 가톨릭대학교 교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겪은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할 때 자주 쓰는 표현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점에 우리 민족의 역사 중에서 무엇을 잊고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는 그렇게 용이하지 않다. 다만 최근에 일어난 하나의 사건을 중심으로 우리가 무엇을 잊고 있으며 또한 잊으려 하는지 반성해 보고자 한다.

2023년 8월25일, 육사에 설치한 독립군 및 광복군 영웅(박승환·홍범도·지청천·이회영·김좌진·이범석) 흉상을 철거하여 독립기념관으로 이전하는 절차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사회적 논란이 일어났다. 결론적으로 육사 내에 재배치하는 걸로 논쟁은 마무리되었지만, 민족의 독립투쟁에 대해서 잘못된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 또는 무지하거나 무관심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점을 입증한 사건이었다.



역사교육의 중요성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2017학년도부터 한국사 과목이 수능에서 필수과목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 과목을 응시하지 않으면 수능 전체 성적이 무효가 되니 대학을 진학하려면 반드시 한국사를 공부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역사교육은 다른 문제가 없는가? 아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에서 보듯이 무엇을 교육과정에 넣고, 어떻게 교과서를 만들고 어떤 내용을 학교에서 가르칠 것인가에 대해서 매우 심각한 의견 차이가 존재하고 있다. 하나의 단일 교과서를 통해서 역사를 가르치려고 한다면 정치적 이해관계가 영향을 미칠 수 있고, 현재 권력을 갖고 있는 집단에게 유리한 내용만 선정, 조직될 위험이 있다.

또 하나 생각할 지점은, 교과서가 완벽하게 잘 꾸려졌다고 하더라도 학교에서 실제로 가르치는 과정에서 왜곡과 생략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근현대사의 경우에는 시험에 나올 가능성이 적다는 이유, 교과의 범위가 넓어서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 등으로 고대와 중세사에 비추어 볼 때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지고 있다. 어쩌면 지금 우리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근현대 부분이 더 중요할 수 있다. 학교 수업시간에 배우더라도 매우 피상적으로 배우게 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아예 장과 절이 통째로 생략되어버려 근현대사가 갖는 의미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조차 갖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지난 연말에 읽었던 소설 '범도'(방현석 작)는 교과서에 실리지 않은 수많은 독립영웅들의 활약상을 담고 있다. 홍범도 장군의 활약상만 있는 소설이 아니다. 여기에는 이회영, 이상설, 안중근, 김좌진, 이범진, 이위종, 최재형, 한상호, 최운산, 김알렉산드라, 황병길, 박서양 등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역사교과서에서는 언급도 되지 않고 있지만 연해주와 만주에서 활동했던 우리의 영웅들이 어떻게 싸우고 어떻게 살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죽어갔는지를 우리에게 생생히 전해주고 있다.

홍범도의 발자취를 따라서 출발했던 답사여행의 여정은 하얼빈과 대련, 여순으로 이어졌다. 하얼빈 역 1번 플랫폼 바닥에는 이토가 섰던 자리, 그리고 안중근 참모중장이 섰던 자리가 기록되어 있다. 안중근 기념관도 잘 관리되고 있다. 안중근 기념관은 여기만 있는 게 아니었다. 여순법원, 여순감옥에는 안중근을 기리는 공간을 특별히 마련하고 있다. 그리고 731부대의 만행을 낱낱이 기록한 기념관도 보았다. 수많은 청소년들이 장사진을 이룬 그 장면, 유치원생들이 줄을 서서 관람하던 그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일제의 만행을 반드시 기록하고 이를 교육시키는 모습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1945년 우리는 독립을 쟁취하였다. 우리가 가만히 앉아서 독립을 얻은 게 절대 아님을 반드시 가르쳐야만 한다.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영웅들의 활약상을 알지 못하는 세대들은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길이 없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알고 난 후에는 이전보다 더 사랑한다고 했던가? '홍범도를 통해 한 시대의 가치가 어떻게 출현하고 그 가치가 어떻게 낡은 가치를 돌파하면서 자신의 길을 가는지를 알고 싶었다'라는 작가의 말을 다시금 되새겨 본다.

/성기선 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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