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백남준아트센터 특별전 '빅브라더 블록체인'

입력 2024-07-15 19:05 수정 2024-07-15 19:08
지면 아이콘 지면 2024-07-16 15면

기술은 차가운 예술… 여기, 마주하는 현대


'굿모닝 미스터 오웰' 40주년… 동시대 작가 9명 참여
정보 독점·분산 상반성, 기술 이점·대안 등 생각케해
모호해진 거짓과 진실 등 상상력도… 내달 18일까지


40년전, 백남준은 위성 프로젝트인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선보였다. 미국 공영방송 WNET과 각 도시의 방송국, 당대 손꼽히는 예술인과 대중음악 가수들이 협력한 작품은 전 세계 2천500만명의 시청자들에게 송출됐다.

작품명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이 위성 프로젝트의 시작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이다. 미디어 감시와 전쟁이 끊이지 않는 미래 사회를 그린 조지 오웰의 작품에 대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생각한 백남준이 그만의 방식으로 대답한 것이 바로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다.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 '빅브라더 블록체인'은 '굿모닝 미스터 오웰' 40주년을 맞아 아홉 명의 동시대 작가가 블록체인이라는 신기술이 상징하는 미래를 저마다 풀어낸 전시다.

소설 '1984'에 등장하는 '빅브라더'는 모든 정보를 독점해 사회를 감시하고 억업하는 가상의 독재자인 반면 '블록체인'은 정보를 분산하고 투명하게 공유하는 기술이다. 전시는 두 단어가 가지는 상반성과 함께 오늘날 기술은 무엇을 주고, 또 어떤 대안을 가질 것인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장서영 '터뷸런스'
장서영 작가 '터뷸런스'.

장서영 작가의 신작 '터뷸런스'는 '굿모닝 미스터 오웰'에서 로리 앤더슨의 '미래의 언어'와 비행기 추락 에피소드에서 영감받은 작품이다. 영상에는 비행기에서 보내는 시간이 흘러나온다.

그곳은 사람들과 상당히 밀착돼 있고 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만, 결국 각자에게만 집중하며 서로에게 닿지 않는 현대사회의 모습과 맥락을 함께한다. 기술은 개인화되고, 사회를 조각내 파편화시킨다. 비행기 좌석에 앉아 영상을 감상하는 동안 위태로운 비행과 미디어의 개인화에 대한 연결성을 떠올릴 수 있다.

삼손 영 '제단 음악(우유부단한 신자를 위한 예배)'
삼손 영 작가 '제단 음악(우유부단한 신자를 위한 예배)'.

삼손 영 작가의 '제단 음악(우유부단한 신자를 위한 예배)'은 종교적 의례가 진행되는 제단의 모습을 하고 있다. 홍콩 언론 매체인 '홍콩 프리 프레스'의 뉴스 헤드라인을 프롬프트 삼아 거짓뉴스를 지속해서 생산하고, 이 텍스트들은 음향의 기초가 돼 사운드로 흘러나온다. 마치 믿음을 전파하는 듯한 모호한 사운드는 거짓과 진실을 판단하기 어렵게 한다.

제단 위에는 인간을 대신해 기도하는 기도 바퀴가, 또 인간을 대신해 경전을 읽는 복사기도 볼 수 있다. 훗날 기계에 의해 수동화된 인간의 우유부단한 삶에 대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조승호 '은신처'1
조승호 작가 '은신처'.

전시장 중앙에는 거대한 크기의 '은신처'가 마치 모든 곳을 내려다보듯 우뚝 서있다. 위태로워 보이고 어딘가 허물어진 듯한 모습을 한 작품은 촘촘하게 연결된 오늘날 디지털 공간에서 어디론가 숨고 싶은 예민하고 연약한 심리를 보여주는 듯하다.

누군가를 보호하고 숨겨주는 납으로 만든 '안가(安家)'가 가장 잘보이는 높은 곳에 있다는 점이 감시와 안전 그 어딘가에 있는 것 같다.

이 밖에도 전시에서는 빅브라더를 상징하는 유튜버 BB를 등장시켜 디지털 세계에서 은밀하게 벌어지는 감시와 착취를 드러낸 홍민키 작가의 '라이브 방송 중 해킹 당한 BB?!??', 화석연료가 고갈되고 물에 잠긴 세계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세계를 재건하는 가상의 미래를 그린 HWI 작가의 '너의 전생', 분해된 빛이 전시실 풍경을 실시간으로 재구성하고 변형하는 권희수 작가의 '나선필름'을 만날 수 있다.

HWI '너의 전생'
HWI 작가 '너의 전생'

또 모션캡처 스튜디오에 고용된 이들의 육체적인 노동이 가상세계로 전환되는 이야기를 그린 히토 슈타이얼 작가의 '태양의 공장', 누구나 어디서나 퍼포머이자 관객이 되는 오늘날 디지털 미디어 환경 속 공연예술의 미래를 제시한 이양희 작가의 '트립 더 라이트 판타스틱', 한국 청년들의 특수한 주거공간이자 사적인 삶이 기록된 원룸을 몽환적인 공간으로 표면화한 상희 작가의 '원룸바벨' 등 급변하는 디지털 환경에 대응하고 고민하는 현대 예술을 다양한 시각과 형태로 마주할 수 있다. 전시는 8월 18일까지.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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