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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광장] '제헌절'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입력 2024-07-16 20:07
지면 아이콘 지면 2024-07-17 18면
'헌법적 가치' 정체성과 연결돼야
번성 국가 후손에게 물려주려는건
무엇보다 강한 '민족 정체성' 아닐지
자유민주주의 부정 적대세력 대응
새로운 민주화 정신으로 무장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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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
오늘 제헌절에 떠오르는 두 가지 장면이 있다. 첫번째는 영화 '변호인'(2013년 개봉)이다. 노무현을 연기한 송강호가 재판 과정에서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인용하며 외친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제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라는 대사다. 이 기본 정신을 지키기 위해 우리에게 많은 희생이 있었음을 상기시키는 대사이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의 민주주의 정체성은 해방 이후 이승만 정부, 유신 독재와 군부 독재에 국민이 저항하여 획득한 희생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두번째로 생각나는 것은 외젠 들라크루아(1798~1863)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라는 그림이다. 이 그림은 1830년 프랑스 7월 혁명의 모습을 담고 있다. 프랑스 혁명 이후 공화정의 과정이 순탄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자유'를 상징하는 '마리안느'(미국 '자유의 여신상' 모티브)는 수난의 역정 속에서 피어나는 것이다.



이 두 가지의 연결점은 결국 '민주와 자유'이다. '민주와 자유'는 마치 한 몸이다. 그러나 인간의 자유를 찾는 여정은 역사적으로 순탄하지 않다. 기원전 5세기경, 바빌론에서 돌아온 유대인의 모습이 성서(聖書)에 서술되고 있다.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고 귀환자 중 한 명인 학자 '에스라'가 예루살렘 성벽 앞에서 이스라엘 모든 백성 앞에서 '율법(헌법)'을 낭독하는 장면은 마치 우리가 해방되어 제헌절을 선포하는 느낌이다. 성서에는 이때 온 백성이 모두 귀를 기울였으며, 이 율법(헌법)이 낭독되자 모든 백성이 감동하여 울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히브리 민족이 이집트로부터 자유를 찾아 이집트를 떠나고 다시 나라를 잃어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다시 돌아오니 그 감동이 오죽하였겠는가.

그러나 그들의 자유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이후 이스라엘 민족은 나라 없이 디아스포라(diaspora, 난민)로 2천년 이상 유럽 등지에서 떠돌며 박해와 차별을 받으며 힘들게 살았고, 2차 대전 중에는 나치의 히틀러에 의해 전대미문의 유대인 600만명이 학살당하는 거의 멸문지화(滅門之禍)의 고통 속에서도 버티며 1948년 겨우 독립하였다.

독립된 이후 그들은 자신의 역사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 주변국 침략을 막는 전쟁과 국민의 희생이 반복되고 있지만, 그들의 나라 지킴에는 흔들림이 없는 듯하다. 오늘 갑자기 제헌절 날 이스라엘을 생각하는 것은 그들의 최첨단 무기 방어시스템 아이언 돔보다는 그들의 강한 '민족정신'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우리의 현실은 이스라엘이 처한 외부의 적보다 더 강한 핵을 가진 강력한 적들이 우리에게 놓여있다. 이들 국가의 특징은 자유민주주의적 가치를 무시한 1인 장기 독재, 언론 통제, 국민의 자유를 제한하며 군사적 확장을 추구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는 그들의 최전선에 마주한 국가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러시아 푸틴이 평양을 방문하여 소위 '북·러 군사 동맹'을 체결함으로써 동북아의 긴장감이 더해지는 느낌이다. 중국의 대만 침공 시나리오는 이제 기정사실화된 듯, 툭하면 대만을 포위하는 훈련을 하고 있으며, 서울 상공에는 북한이 보내는 오염 풍선이 마구 날리는 것을 생각하면 그냥 막연히 괜찮겠지, 할 것이 아니다.

오늘 제헌절에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지키려는 헌법적 가치는 우리의 강렬한 정체성과 연결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우리가 번성한 나라를 지속해서 우리의 후손에게 보존시키려는 것은 무엇보다 강한 '민족 정체성'이 아닐지 생각한다. 마치 이스라엘 국민이 지키려는 그 땅이 그들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과 일치되듯 우리 역시 같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외부의 자유민주주의적 가치를 부정하는 적대세력에 대해 제2의 새로운 민주화 정신 운동으로 무장해야 하는 시점이 아닐까, 제헌절 나의 단상(短想)이다.

/김영호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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