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근, 자기관리 상징 같은 기록인데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의욕 꺾는 말
물질만능주의·경쟁 민낯 같아 씁쓸
아이들에 정신 풍요로움 가르쳐야
저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12년 동안 개근을 했습니다. 단 하루의 결석이나 조퇴도 없이 학교를 다녔다는 뜻이지요. 23년 가량 검사 생활을 하면서도 휴가기간을 빼고 조퇴나 결근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대학원 최고위 과정을 다닐 때에도 개근상을 받았지요. 저에게는 수료증보다 더 값진 것이었습니다. SNS에 그 사실을 알렸더니 많은 분들이 신기해 하시면서도 축하의 말씀을 해주셨지요.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개근상은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초등학교의 경우 6년을, 중고등학교의 경우 3년을 그 학교에서 한 교시도 빠짐없이 모두 출석하였을 때 받을 수 있는 상이다. 병결 등이 없고, 늦잠 등의 지각이 하나도 없어야 하므로 학교에서 성적이나 대회 등으로 받는 상들을 제외하면 가장 받기 어려운 상 중 하나이다'. 어떤가요. 아주 자랑스러운 상이 아닌가요. 학교만이 아닙니다. 스포츠 분야에 있어서도 개근상은 받기 매우 어려운 상입니다. 그래서 경기에 빠짐없이 출전하는 '연속 경기 출장'과 같은 기록에는 찬사가 잇따릅니다. 실력도 좋아야 하지만 몸 관리도 잘해야 달성할 수 있는 기록이기 때문이지요. 한 마디로 자기 관리의 상징과도 같은 기록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개근이라는 단어가 부끄러움을 상징하는 말과 비슷해졌습니다. 최근에는 외신에도 소개가 되었다고 하니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이한 단어임이 분명해 보입니다. 외신은 '한국 사회에서 해외여행은 자신의 부를 과시하고 강한 경쟁력을 보이는 방법으로 여겨진다. 개근거지 문화는 한국의 물질주의와 치열한 경쟁으로 주도되는 사회적 압박과 연관되어 있다'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저와 제 아내는 아이들에게 입이 닳도록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능력이 모자라거나 운이 좋지 않아서 결과가 안 좋을 수는 있다. 하지만 맡은 일은 항상 성실히 해야 한다. 그것이 인생을 사는 기본적인 태도이기도 하고, 성공의 비결이기도 하다." 너무 꼰대스러운 고루한 말일까요.
물론 시대가 변하면서 사람들의 생각도 변합니다. 과거에는 먹고 사는 것 자체가 힘들어 해외여행은커녕 가족끼리 국내여행을 가기도 어려웠지요. 때문에 누구나 해외근무를 선망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세계 10대 경제대국이 되었으니 해외여행 정도는 거리낌없이 가는 가족이 많아진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의욕을 꺾거나 비하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데 많은 분들이 동의할 것으로 믿습니다. 여행은 일상의 고단함과 단조로움을 떠나 새로운 공기를 마시며 지친 몸과 마음을 충전하는 것입니다. 여행지에서의 추억으로 일상이 풍요로워지기도 하지요. 외신의 분석처럼 '개근거지'라는 말에는 우리의 물질만능주의와 치열한 경쟁의 민낯이 드러나 있는 것 같아 씁쓸하기 그지없습니다.
'개근거지'라는 신조어는 단순히 웃어넘길 일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물질적으로 풍요롭다는 것이, 물질이 모든 것이라는 말을 뜻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풍요로운 물질을 토대로 정신적으로도 성숙되어 삶을 보람있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뜻이 아닐는지요. '개근거지'라는 단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을 기록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이 떠오르는 건 저만의 기우일까요. 아이들에게 물질의 성장과 더불어 정신의 풍요로움을 가르쳐야 할 책무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양중진 법무법인 솔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