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청년 정치 길 보다 넓게 열어”
여전히 이벤트성으로 청년 소모 “개선할 것”
“비전 안 보는 팬덤 정치 위험” 비전에 자신감
1994년생 박상현은 올해 만 30세다. 또래 청년들이 취업을 준비할 무렵, 원래는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싶었던 그는 군포시의원에 당선되면서 직업 정치인이 됐다. 2년 만인 올해는 국민의힘 청년 최고위원 선거에 도전했다. 가진 것은 젊음, 그리고 비전 뿐이었지만 치열한 경쟁을 뚫고 본선에 진출했다. 갓 서른의 청년은 호남에서도, 영남에서도, 충청에서도 압도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묵묵히 반복했다.
지난 대선 당시 윤석열과 함께 하는 국민 대변인으로 정치에 입문했으니 경력이 결코 길다고 할 순 없지만 정책 해커톤과 공약대전에서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입상한 이력이 큰 바탕이 됐다. 지난 17일 국민의힘이 제4차 전당대회 서울·인천·경기·강원 합동연설회를 진행한 고양소노아레나 현장에서 만난 박 후보는 “명확한 비전 제시가 제 최대 강점”이라며 지나치게 과열돼 비전이 실종된 전당대회 분위기에 우려를 표했다.
■“이준석, 당의 과도기와 전환기 만든 인물… 청년 정치인으로서 역할의 한계 느껴”
헌정사상 최초로 30대 당수가 된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국민의힘 청년 정치의 상징과 같았다. 그러나 오랜 내홍을 겪었고, 끝은 결별이었다. 박 후보는 이준석 전 대표 체제에서 추진된 ‘윤석열과 함께 하는 국민대변인단’을 통해 정치에 입문했다. 박 후보는 “제가 정치에 입문할 수 있도록 한 국민대변인도 당시 이 전 대표 체제에서 청년들이 참여할 수 있는 장을 만들자는 취지로 이뤄진 것이다. 이 전 대표는 청년 정치의 길을 보다 넓게 열었고, 그런 점을 토대로 국민의힘의 과도기와 전환기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청년 정치인들도 이 전 대표 체제에서 이전보다 많이 탄생했다. 지금도 김재섭 의원이나 김용태 의원과 같은, 당내 청년 정치 발전의 가능성을 계속 열어주는 분들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아직 청년들은 당에서 일회성으로, 이벤트성으로 소모되는 경향이 있다. 청년 최고위원 선거도 이번 전당대회에서 상대적으로 관심도가 떨어지지 않나. 저 역시 당내 공모전 등에서 좋은 성과를 내 여러 직책을 받았는데 막상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고, 역할도 없었다. 제가 연설 때마다 청년들이 직책은 받았지만 그에 상응하는 역할은 부여받지 못했음을 강조한 것도 그런 문제의식에서 기인했다. 반드시 그건 고치고 싶다. 생각보다 이런 메시지에 공감해주는 분들이 많았다”며 “당이 어떤 이벤트를 통해서 ‘우리가 청년들 이야기를 들어줄게’가 아니라 ‘청년들이 와서 이야기해봐라’라는 구조가 돼야 한다. 결국 청년들이 당에서 성장해야 국민의힘의 미래도 담보할 수 있다. 그러려면 국민의힘이 지금보다도 더 많은 청년 스피커들을 만들어내야 한다. 청년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장을 구축하는 게 중요한 이유”라고 주장했다.
■“비전 보지 않고 인물만 보는 ‘팬덤 정치’ 경계…명확한 비전이 제 강점”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갈수록 과열되고 있다. 상대를 겨냥한 폭로전이 거듭되는가 하면 지지자들간 물리적 충돌마저 빚어졌다. 전당대회 이후 후유증을 염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일선 선거 현장에서 직접 뛰고 있는 박 후보는 “안타까운 부분이 많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에 후보로서 뛰면서 팬덤 정치가 위험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특정 당권 주자와의 러닝메이트로 시작하지 않고 혈혈단신 본선에 진출한 그는 ‘어떻게 본선에 올라왔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처음엔 비전이 좋으면 이를 알아봐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고 했다.
박 후보는 “저는 혼자 맨 땅에 헤딩하면서 올라와서 제 비전 하나만 갖고 있다. 그런데 팬덤 정치가 무서운 게, 제 비전이나 공약을 보는 게 아니라 오로지 ‘누구랑 한 팀인가’만 보더라”라며 “청년들이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담론을 만들어가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당내 청년 정치도 성장할 수 있는데, 팬덤 정치는 ‘지지하는 누군가와 함께 하는’ 사람에게만 관심을 둔다. 결국 청년들이 자기 목소리를 다양하게 내는 걸 막게 된다. 전당대회 분위기가 그렇게 가면 안 된다. 서로 비전과 정책을 제시할 수 있는 장이 돼야 하는데 이런 상황이라면 저처럼 비전만 갖고 나온 사람은 진이 빠진다”고 했다.
동시에 네 명의 청년 최고위원 후보 중 자신의 최대 강점을 ‘명확한 비전’으로 꼽기도 했다. 박 후보는 “다른 후보들은 단지 야당과 싸우겠다고 한다. 실현 가능성이 낮은 정책을 포퓰리즘식으로 던지기도 한다. 정작 좌절하는 청년들을 위해 구체적이고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다”며 “저는 청년 정치인으로서 아픔을 겪었고 제 목소리를 내고 싶어서 여기까지 왔다.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당내 청년들이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잘 알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야 빠르게 치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가장 젊으니까 더 젊은 청년들과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 그간 여러 경쟁을 통해 당내 직책을 얻어온 경험이 있다는 점 등도 저만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합동연설회가 마무리되고 대부분의 선거 후보들과 당원들이 떠난 이후에도 박 후보는 한동안 고양소노아레나에 머무르며 한 장 한 장 명함을 돌렸다. 그는 처음 선거에 출마했을 때 ‘정치는 젊은 사람이 해야지’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했다. “그 때부터 젊음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왜 젊음을 좋아하고, 청년에게 기대하는지. 나쁜 관습을 끊어내고 보다 진취적으로 행동하는 ‘젊음의 가치’에 공감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런 젊음의 가치를 당에서도 실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서른 살 청년 최고위원 후보의 각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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