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미국 정가에서 대통령의 행보에 대한 해석이 화두가 되었을 무렵, 한 칼럼니스트가 "대통령은 체스를 두는 것이 아니다"라는 기사를 올려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대통령은 특정 이슈 하나에서 논쟁을 이끌거나 상대방을 이기려고 노력하는 대신, 궁극의 틱택토를 하듯이 수많은 전장을 수시로 옮겨 다니며 본인이 잘하는 이슈를 선점하고 경기판 전체를 유리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에 대한 지지 여부를 떠나 재밌는 분석이었다.
바이오특화단지를 유치한 데 대해 축하와 격려를 많이 받았다. 영광이고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압도적 인프라와 앵커기업을 가진 인천이 여러 다른 지역과 나란히 선정된 것은, 지역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열과 성을 다한 것에 비해 아쉬움이 남는 결과이다. 정부가 첨단전략산업에 5년간 2.2조원을 투자한다고는 하지만 첨단의료복합단지 등 기존 특구에 대한 투자를 포함한 금액이라 특화단지를 위한 투자는 이보다 작을 것이다. 비관적으로만 보자면 이번 판은 이기긴 했지만 썩 만족스러운 승리는 아닐 것이다.
이번 특화단지 지정은, 중앙정부의 지원 규모보다는 오히려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에 기반을 만들었다는 데서 의미가 있다. 특화단지는, 첨단산업에 공공자원 투입이 필요할 경우 최우선 고려하겠다는 일종의 보증수표일 뿐 아니라 긴가민가하는 민간기업에게도 여기는 투자해도 괜찮은 곳이라고 안내하는 가이드 같은 것이다. 수표에 적힌 금액이 얼마고 그중 우리 지분이 얼마냐가 아니라, 이후 국가 성장동력을 못 찾을 때 정부가 다급하게 돈을 쏟아부을 분야가 어딘지를 생각해야 한다. 10년 후 대한민국을 먹여살릴 산업과, 그 산업의 기반이 되어 살아남을 특화단지가 몇 개나 될지, 그게 어디일지를 상상해야 한다. 산업투자와 기업유치에 매력적인 환경 속에 있어야만 10년 후에도 의미있는 클러스터로 살아남을 수 있다. 기업이 먹을거리와 채용할 인력과 정주여건이 있어야 한다. 규모에 맞는 지원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번 특화단지에 선정된 것은, 게임 전체 중에서 제일 중요해보이는 가운데 판을 이겼다고 봐도 된다.
그럼 앞으로는 무엇을 할 것인가? 이제 다음의 여러 전장으로 돌아다니며 부지런히 하나씩 동그라미를 쳐야 한다. AI 기반 신약 개발 연구 인프라, 창업허브 및 인큐베이팅, 전문인력 양성, 의료기기 분야 수출 지원, 원부자재 기술 지원 등 전장은 넓고 해야 할 일은 많다. 갈 길은 멀고 승부는 아직 멀다.
다행히 우리는 특화단지와 더불어 그동안 다른 판에서도 꾸준히 한 집씩을 만들어왔고, 계속 만들어가는 중이다. 바이오인력양성센터가 올해 준공해서 내년에 본격적인 인력 양성에 들어간다. 정부 모든 부처가 주목하는 바이오랩허브는 내년부터 시범사업에 돌입한다. 취약분야인 신약 개발 인프라 구축의 방향을 고민하고 있고, 역시 취약분야인 의료기기 쪽 FDA 승인과 시장개척 지원도 계획 중이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면서도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어서 마음이 급하다. 전력, 용수, 신규투자, 직원 생활여건 등 인천 바이오의 위상을 만들어 준 고마운 앵커기업들의 고질적 민원사항에 대해서도 해결책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지금까지처럼 종종, 아니 꽤 자주, 지연되는 절차와 재정적 한계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균형발전이 더 중요한 중앙정부와의 싸움은 지금처럼 계속 힘들 것이다. 그러나 귀 싸움에 지더라도 판세를 유리하게 가져가야 한다. 부지런히 동그라미 치면서 헤쳐나가야 한다.
/윤재호 인천시 반도체바이오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