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착오 동물원 존폐를 묻다

사람이 관람하기 위한 구조… 공원 부속시설로만 인식 '한계' [시대착오 동물원, 존폐를 묻다·(1-2)]

입력 2024-07-21 20:19 수정 2024-07-25 18:36
지면 아이콘 지면 2024-07-22 3면

'감옥'에 갇힌 동물들


열악한 환경 동물학대 발생 빈번
악어쇼 조련사 때리는 학대 관찰
돌고래 폐사 사건 시민단체 고발
보전보다 상업적 오락 우선 비판

 

동물들이 열악한 공간에서 생활하고 학대에 노출돼 있다는 지적은 수도권에 있는 동물원으로만 향하는 것이 아니다. 경인일보 취재팀은 지난 5월부터 전국의 민영·공영 동물원 15곳을 찾아 실태를 확인했다.

■ 밀림을 지배하는 악어, 막대기에 지배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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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아쿠아리움에서 악어의 입 안에 조련사의 손과 머리를 넣는 ‘악어쇼’가 진행되고 있다. 2024.5.30 /목은수기자 wood@kyeongin.com

“다 같이 반갑다고 한 번 인사할까요.”


지난 5월30일 대전의 한 민영 아쿠아리움. 성인 입장요금 2만3천원과 별개로 6천원의 추가 입장료를 내고 공연장에 들어가자 크고 빠른 템포의 음악에 맞춰 ‘악어쇼’가 펼쳐지고 있었다. 악어 꼬리를 양손으로 들어 올린 조련사는 관객을 향해 꼬리를 좌우로 흔들며 호응을 유도했다.


잠시 후 조련사는 드럼스틱 크기의 나무 막대기로 악어 입과 얼굴을 두드렸다. 마이크를 든 진행자는 이 행위를 “입 주위에 몰린 신경을 무디게 만드는 것”이라고 안내했다. 이윽고 조련사는 악어의 입을 열어 그 안에 손과 머리를 연달아 넣었다. 움직이지 않으려고 버티는 악어의 꼬리를 잡아끌거나 몸을 들어 올리기도 하고, 움직임이 더딜 때는 막대기로 찔러 반응을 이끌었다. 밀림을 지배하는 악어가 작은 막대기 하나에 지배당하는 광경이었다.

과연 이게 동물을 위한 건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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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제의 한 아쿠아리움에서 한 돌고래가 조련사의 지시에 맞춰 몸체를 물 밖으로 들어올려 뒤로 걷는 듯한 행위를 하고 있다. 2024.6.1 /목은수기자 wood@kyeongin.com


이를 신기해하는 관람객 중 일부는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5살 아들과 함께 악어쇼를 관람한 박모(39)씨는 “악어가 말을 듣지 않을 때마다 꼬리를 잡아끌며 재촉하는 모습이 보기 좋지는 않았다”면서 “쇼를 하기 위해 사전에 훈련도 많이 했을텐데 과연 이게 동물을 위한 건가 싶다”고 했다.


사람들의 오락거리 이상 이하도 아닌 동물쇼는 전국 동물원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동물들의 야생성을 죽이고, 이전에 하지 않았을 동작을 훈련받는 과정에서 수반될 고통 때문에 동물권 단체 등에서 비판 목소리가 높지만 민영동물원의 대표 ‘돈벌이’ 수단으로 명맥을 잇고 있다.


지난달 1일 찾은 경남 거제시의 한 민영 아쿠아리움에서도 ‘생태설명회’라는 이름의 ‘돌고래쇼’가 펼쳐졌다. 큰 음악소리에 노출된 밸루가(흰고래) 두 마리는 사육사의 구령에 맞춰 물 밖으로 뛰어오르고 관객들을 향해 물을 튀겼다. 이곳은 지난 2월 질병에 걸려 치료받던 돌고래 2마리가 폐사해 동물보호단체에 고발된 곳이기도 하다.

■ 땡볕 피할 곳 없는 우리, 낡은 모습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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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달성공원 동물원의 코끼리 방사장은 코끼리 크기보다 비좁은 규모를 수십년째 유지하고 있다. 2024.5.27 /김지원기자 zone@kyeongin.com

 

대구 달성공원 동물원(공영)은 국내 최장수 코끼리 코순이(55)가 사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코순이의 생활은 명성과 거리가 있어 보였다. 5월27일 찾은 달성공원 코끼리 야외방사장 면적은 290㎡ 정도에 불과했다. 낡은 시설도 눈에 띄었다. 지어진 지 50년이 넘은 탓에 외벽 곳곳은 균열이 일었고, 콘크리트 도장은 칠이 다 벗겨져 있었다. 흙바닥에는 잡초만 듬성듬성 자라있었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전국에 있는 공영동물원 26곳 중 서울대공원·서울어린이대공원·인천대공원어린이동물원을 제외하고 23곳의 공영동물원이 모두 비수도권에 퍼져 있다.


공영동물원이 앞선 두 아쿠아리움이나 도심 속 체험동물원 등 민영에 비해 상업논리에서 자유로울 수는 있으나, 코순이 사례에서 보듯 사육환경이 우수하다고 보기 힘들다는 게 동물보호단체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1970년 문을 연 달성공원 동물원을 비롯해 이후 건립된 공영동물원 대부분이 당시 시설을 긴 시간이 지난 지금 그대로 사용하는 점은 동물들의 열악한 환경이 개선되지 못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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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우치공원 동물원에서 코끼리 2마리가 290㎡에 불과한 야외방사장에서 생활하고 있다. 어미인 봉이는 무의미하게 몸을 좌우로 흔드는 등 정형행동을 보이고 있다. 2024.5.31 /목은수기자 wood@kyeongin.com


코끼리 방사장 규모는 공영동물원의 실태를 짚어 비교해볼 수 있는 척도다. 더위에 취약하고 먹이활동을 위해 오래 걷는 특성을 가진 코끼리는 충분한 물과 너른 사육장을 필요로 한다.


그럼에도 취재진이 방문해 확인한 5곳의 공영동물원 중 국제기준 격으로 활용되는 미국동물원수족관협회(AZA)의 ‘코끼리 외부 방사장 면적 기준’(최소 500㎡)에 부합하는 코끼리 방사장은 2곳뿐이다.


해당 기준에 미달하는 광주 우치공원에는 모녀지간 코끼리 2마리(봉이·우리)가 함께 지내고 있다. 5월31일 찾은 우치공원 코끼리들은 뜨거운 햇볕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방사장에는 열을 식히기 위한 수영장이나 연못은커녕 물통조차 보이지 않았고, 물이 있는 실내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은 닫혀 있었다. 특히 어미인 봉이는 정형행동을 보이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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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 뱉어봐!”...사람 위주 ‘종합 위락시설’ 전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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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주시 진양호동물원을 방문한 관람객이 라마에게 고성을 지르는 등의 행동을 하고 있다. 2024.5.26 /김지원 기자 zone@kyeongin.com

 

한 중년 남성이 라마에게 침을 뱉어보라고 소리를 질렀다. 취재진이 5월26일 진주 진양호동물원을 찾은 날이었다. 이 남성뿐 아니라 다른 관람객들도 이따금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의 거리에서 ‘침을 뱉는 특성’을 가진 라마를 향해 침을 뱉어보라며 장난을 쳤다. 공작새가 있는 철창 안으로 풍선과 나뭇가지를 넣으면서 “날개를 펼쳐 보라”고 외치는 시민도 있었다. 동물들이 인간의 ‘편의 도구’로 전락해 고통받는 이런 상황에도 주변에 이를 제지하는 직원은 없었다.


동물원의 사육환경이 열악한 건 공원의 일부로 구성돼 지역 거점 ‘종합 위락시설’로 기능하는 것이 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애초 동물 특성이 거의 반영되지 않고, 사람이 동물을 관람하고 즐기기 편한 동선과 구조로 지어진 데다 동물원이 공원 등의 부속시설로 인식되는 까닭에 ‘종 보전’이나 동물 연구·교육·복지 향상을 우선적 가치로 추구하기엔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진양호동물원 역시 인공호수인 진양호를 따라 선착장·호텔·식당·물홍보전시관 등 각종 위락시설이 모여 있는 형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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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달성공원 물개 방사장 수질 상태가 좋지 않아 악취가 나고 있다.2024.5.27./김지원기자 zone@kyeongin.com


놀이기구가 중심인 놀이동산에 인접한 동물원도 여럿 있다. 우치공원은 호남 최대의 종합위락공원으로 불리는 광주패밀리랜드와 맞닿아 있다. 이곳엔 바이킹·청룡열차 등 22개의 놀이기구를 포함해 수영장·스케이트장 등 체육시설이 들어서 있다. 전북 전주에 있는 전주동물원 역시 전주드림랜드와 함께 있다.

 

이런 이유로 지역의 공영동물원은 동물을 보존하고 전시하는 수준의 통상적인 형태가 아니라, 지역민들이 찾는 유원지로 인식되는 게 보편이다. 그저 놀이동산 방문에 부수적으로 따라붙는 코스이거나 동물이란 ‘도구’를 통해 즐거움을 얻는 장소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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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주시 진양호동물원을 방문한 관람객이 원숭이가 있는 방사장 유리창을 막대로 치는 행동을 하고 있다.2024.5.26. /김지원기자 zone@kyeongin.com


5월31일 찾은 전주동물원에서는 인접한 놀이기구 소음이 고스란히 귀를 때렸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동물들은 이런 소음을 매일같이 겪어야 한다. 전북 익산의 한 중학교 학생들과 동물원을 찾은 교사 김지현(43)씨는 “전북지역에서 그래도 올만한 유일한 동물원이라 매년 학생들과 찾고 있다”면서도 “옆에 놀이동산에서 날아오는 시끄러운 소리에 동물들이 그대로 노출돼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고, 학생들의 체험학습에도 방해가 된다”고 했다.



대구·대전·전주·진주·거제/기획취재팀

※기획취재팀=조수현·김지원·목은수 기자(이상 사회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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