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올린 잔혹사
국내 최초 공립동물원 '창경원'
일제, 공중 관람 위락시설 설립
'이윤 목적' 기업논리까지 결합
뿌리 박힌 문화… 변화 걸림돌
풀 한 포기 없는 콘크리트 바닥 가운데 나무 조형물 하나가 덩그러니 있다. 장난감처럼 보이는 타이어가 조형물에 걸려 있지만, 침팬지는 무심히 땅바닥을 바라볼 뿐이다.
과천 서울대공원의 전신이자 국내에 처음 문을 연 공립동물원인 '창경원'에 전시됐던 침팬지(1970년대) 모습이다. 이곳의 동물들은 1980년대 들어 창경궁 복원 추진 정책에 따라 현재 서울대공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창경원의 역사를 이어받은 서울대공원 동물들의 현재 생활은 달라졌을까.
지난 3일 찾은 서울대공원 '동양관' 내 원숭이과 동물의 우리는 마치 40여년 전 사진 속 배경을 빼다 박은 듯 변한 게 없어 보였다. 원숭이들은 콘크리트 바닥과 나무 몇 그루 듬성듬성 자라난 공간 안에 전시돼 있었고 쇠창살에 갇힌 우리에서 무기력한 표정을 지었다.
국내 동물원이 전시 일변도를 걷는 것은 창경원 역사와 연관 깊다. 1909년 일제는 전시·관람을 위한 위락시설 용도로 서울 창경궁 자리에 창경원을 세웠다. 당시 일제의 경성안내서는 "왕가의 오락을 겸하고 공중의 관람에 이바지할 목적으로 동·식물원을 계획했다"고 설명했다. 창경궁의 이름을 '울타리를 쳐서 짐승과 나무를 키운다'는 뜻인 '원(苑)'자를 붙인 '창경원'으로 격하시킨 배경에서도 동물을 전시하려는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왕실의 전유물이던 동물 전시 문화는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퍼지면서 그 형태가 굳어졌다. 주로 권력자의 권력 과시를 위해 소모됐던 동물원은 근대 유럽에서부터 일반에 공개되면서 관심과 규모를 폭발적으로 키웠다. 근대 동물원의 기원으로 꼽히는 오스트리아 '쇤브룬 동물원'이 그랬고, 서울대공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국내 주요 공영동물원이 공원·놀이동산과 맞닿아 있는 것은 물론 민영 테마파크형, 체험형 동물원이 도심에서 때때로 생겨나는 것도 이 같은 흐름의 연장선이다. 다만 국내 동물원 역사에 이러한 전시 문화가 뿌리깊게 남아 있는 점은 동물원이 종 보전·동물 연구 등 다른 역할을 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김규태 경북대 야생동물학과 교수는 "동물을 연구하거나 보전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전시·오락·판매 등 용도로 탄생한 게 지금 동물원의 변화를 어렵게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이라며 "동물원이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공간으로 인식되는 탓에 놀이기구나 공원 등과 붙어있는 경우가 많고 동물복지와 연구 등 투자를 이끌어 내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서울대공원을 비롯해 국내 공영 동물원은 지자체가 운영하는 한계 때문에 정책을 한가운데 묶어 추진하는 '컨트롤타워'가 없는 현실에 놓여 있다"며 "대규모 동물원을 국영으로 전환시켜서 진료, 사육, 관리 등 동물원 운영 전반의 기준을 세워야 할 때"라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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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팀
※기획취재팀=조수현·김지원·목은수 기자(이상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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