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성단] 무너진 국가정보기관

입력 2024-07-28 19:39 수정 2024-07-28 19:41
지면 아이콘 지면 2024-07-29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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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통일 후 드러난 구 동독 정보기관 슈타지(Stasi)의 정보전 실체에 구 서독 사회는 경악했다. 2만~3만명에 달하는 동독 정보원들이 서독 정계·재계·학계·종교계·언론계와 학생운동권에서 암약했다. 첩자로 포섭된 서독 연방의원들로 원내교섭단체 구성이 가능했다. 빌리 브란트 수상의 비서 귄터 기욤을 비롯해 서독과 나토의 주요 요인 주변에 수천명의 정보원을 심었다.

정보전은 국가의 운명과 사활을 결정한다. 기원전 춘추전국시대의 손자병법에서 정보전의 기초가 확립된 이유다. 손자병법은 용간(用間)편에서 정보원을 적국의 일반인과 관리와 간첩을 포섭한 향간(鄕間)·내관(內間)·반간(反間)과, 적지에 정착했거나 적지를 오가는 사간(死間)·생간(生間)으로 구분했다. 향관·내관과 이중간첩인 반간은 적지에 심어 놓은 현지 정보원이라면, 사간과 생간은 적지에 거주하거나 오가며 정보를 수집하는 자국 비밀 정보원이다. 모두 신상이 극비인 현대판 '블랙요원'들이다.

1992년 KGB 요원 바실리 미트로킨이 KGB공작파일을 들고 영국으로 망명하면서 87세 영국 할머니 멜리타 노우드가 KGB 고정간첩으로 밝혀졌다. 핵무기 정보를 수집한 공로로 소련 정부의 훈장까지 받고 60세에 은퇴한 그녀는 자신의 정체를 당당하게 인정했다. 첩보전의 성패는 기밀 유지에 달렸다. 요원들의 신상 공개는 최악이다. 정보망이 무너지고, 복구에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 정보 공백은 국가 안위에 치명적이다.



국군 대북 정보기관인 정보사령부 소속 해외 요원들의 신상과 개인정보가 북한 등 외부로 유출된 사건이 발생했다. 외교관으로 위장한 화이트 요원은 물론 신분을 위장한 블랙요원의 신상이 다 털렸단다. 우리가 파견한 사간·생간은 물론, 오랜 세월 공들여 구축한 향간·내관·반간 등 휴민트 자원들이 일거에 노출됐다면 대북 정보전의 일선이 붕괴된 셈이다.

영화 '아저씨'의 주인공 원빈이 전당포를 운영할 정도로 정보사 요원의 신상은 퇴직 후에도 국가 기밀이다. 정보전에 목숨을 건 무명 용사들을 수호해야 할 국가의 의무가 무너졌다. 올해부터 대공수사가 박탈된 국정원은 수미 테리에게 명품백을 사준 요원들의 정체가 드러나 망신을 당했다. 북한의 대남 정보 역량이 동독에 버금갈 테다. 휴전 국가의 눈과 귀가 단단히 고장났으니 무섭고 두렵다.

/윤인수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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