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화수류정 주변 '수원판 종교문화' 형성
불교계 진각국사비·도심형 대형사찰 수원사
기독교계 동신교회·천주교 북수원 성당…
다종교 도시, 다종교 국가 대한민국 축소판
박태원(1909~1986)의 장편소설 '천변풍경'은 1930년대 청계천변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인물들의 일상과 도시 생태를 다룬 작품이다. 평론가 임화는 이를 '세태소설'이라 명명한 바 있다. 산책과 관찰이란 고현학(考現學)의 방법을 동원하여 도시 서민들의 생활사를 잘 그려냈다. 독특한 공간구성과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실험기법으로 '천변풍경'은 1930년대 말 한국모더니즘 소설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경기도 수부(首府) 도시 수원도 이에 못지않은 천변풍경이 있다. 지금의 수원은 조성된 지 235년이 된 비교적 젊은(?) 도시다. 옛 수원은 융건릉과 수원대학교 일대였으나 정조 13년(1789) 사도세자의 능침인 현륭원(顯隆園)이 조성되면서 수원부가 현재의 수원으로 이전되고, 정조 20년(1796) 수원화성이 완공되면서 수원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 수원하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화성만 떠올리기 십상인데 수원의 중심부를 가르는 수원천변에는 일반 시민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근대 종교문화유산들이 포진되어 있다.
수원의 근대 문화유산으로 '부국원'과 금융회사였던 '옛 수원문화원'(조선중앙무진회사) 등을 꼽을 수 있다. 고대 도시의 상징으로 통하는 튀르키예 아나톨리아 고원 위의 '카탈 후유크'나 이탈리아의 폼페이 또는 삼국시대나 조선시대의 건축물들만 문화유산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지역사를 대표하거나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것, 나아가 한 시대의 전범이 된다면 그 역시 문화유산으로 등재시켜 지역의 문화유산으로 지정하고 보존할 필요가 있다.
수원에도 이런 조건을 갖춘 근대 문화유산들이 수원천 주변에 밀집해 있다. 수원화성의 백미로 꼽히는 방화수류정 주변과 화홍문에서 남수문에 이르는 구간에 독특한 수원판 천변풍경, 종교문화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문화의 불모지였던 수원에 기념비적인 기념비가 들어섰으니 고려시대 '창성사지 진각국사비'가 그것이다. 진각국사 혜심은 보조국사 지눌의 뒤를 이어 수선사 및 고려불교를 이끌던 고승으로 만년의 그가 임종처로 삼은 곳이 광교산 자락의 창성사였다. 지금 방화수류정 인근에 자리 잡은 비각은 후일 현재 이 자리로 옮겨온 것이다.
불교계 유산으로 진각국사비와 진각종 사찰인 유가심인당과 용주사 수원포교당으로 시작하여 도심형 대형 사찰로 발전한 수원사가 있다면, 기독교 계열의 근대문화유산으로 동신교회를 꼽을 수 있다. 동신교회는 일본인 선교사 노리마쓰 마사야스(1863~1921)에 의해 설립됐다. 화홍문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위치에서 좌측 경기도 무형유산 전수관 옆에 자리 잡고 있다. 노리마스는 1879년부터 수원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1909년 자료 사진을 보면 동신교회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초가집 형태였다. 동신교회를 세운 노리마스 마사야쓰는 일본의 제국주의 노선에 매우 비판적이었으며, 양심적이고 헌신적인 종교인이었다. 현재 교회 뒤편 언덕에 노리마스 추모비가 세워져있다. 동신교회를 시작으로 삼일장로교회가 있다. 동신교회 아래 있는 매향여고는 감리교 계열의 학교이고, 삼일중학교에는 1923년에 건립된 아담스 기념관이 있다. 그리고 건너편 수원천변 인근에는 천주교 순교 성지인 북수원 성당(옛날 소화초등학교)이, 그리고 북수원 성당 옆으로는 1907년 종로네거리로 이전, 설립된 감리교 소속 수원종로교회가 있다.
수원 천변은 근대 종교문화유산의 집결지로 종교인들에게는 순례 코스로, 일반 시민들에게는 테마 관광의 코스로 큰 의미가 있다. 이는 전국 어디에서도 그 유사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천변풍경이다. 이외에 팔달산 자락의 교동에는 원불교 수원교당을 비롯하여 성공회 성당·기독교장로교 소속 수원교회, 성결교회, 수원향교가 있으며 옛 수원시청 맞은편에 수원 중앙 침례교회 등 이웃종교들이 서로 공존하고 있다는 점도 특기할만하다. 이처럼 수원은 다양한 종교문화유산이 공존하고 있는 다종교 도시로 다종교 국가 대한민국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
불교계 진각국사비·도심형 대형사찰 수원사
기독교계 동신교회·천주교 북수원 성당…
다종교 도시, 다종교 국가 대한민국 축소판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 |
경기도 수부(首府) 도시 수원도 이에 못지않은 천변풍경이 있다. 지금의 수원은 조성된 지 235년이 된 비교적 젊은(?) 도시다. 옛 수원은 융건릉과 수원대학교 일대였으나 정조 13년(1789) 사도세자의 능침인 현륭원(顯隆園)이 조성되면서 수원부가 현재의 수원으로 이전되고, 정조 20년(1796) 수원화성이 완공되면서 수원의 시대가 활짝 열렸다. 수원하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화성만 떠올리기 십상인데 수원의 중심부를 가르는 수원천변에는 일반 시민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근대 종교문화유산들이 포진되어 있다.
수원의 근대 문화유산으로 '부국원'과 금융회사였던 '옛 수원문화원'(조선중앙무진회사) 등을 꼽을 수 있다. 고대 도시의 상징으로 통하는 튀르키예 아나톨리아 고원 위의 '카탈 후유크'나 이탈리아의 폼페이 또는 삼국시대나 조선시대의 건축물들만 문화유산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지역사를 대표하거나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것, 나아가 한 시대의 전범이 된다면 그 역시 문화유산으로 등재시켜 지역의 문화유산으로 지정하고 보존할 필요가 있다.
수원에도 이런 조건을 갖춘 근대 문화유산들이 수원천 주변에 밀집해 있다. 수원화성의 백미로 꼽히는 방화수류정 주변과 화홍문에서 남수문에 이르는 구간에 독특한 수원판 천변풍경, 종교문화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문화의 불모지였던 수원에 기념비적인 기념비가 들어섰으니 고려시대 '창성사지 진각국사비'가 그것이다. 진각국사 혜심은 보조국사 지눌의 뒤를 이어 수선사 및 고려불교를 이끌던 고승으로 만년의 그가 임종처로 삼은 곳이 광교산 자락의 창성사였다. 지금 방화수류정 인근에 자리 잡은 비각은 후일 현재 이 자리로 옮겨온 것이다.
불교계 유산으로 진각국사비와 진각종 사찰인 유가심인당과 용주사 수원포교당으로 시작하여 도심형 대형 사찰로 발전한 수원사가 있다면, 기독교 계열의 근대문화유산으로 동신교회를 꼽을 수 있다. 동신교회는 일본인 선교사 노리마쓰 마사야스(1863~1921)에 의해 설립됐다. 화홍문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위치에서 좌측 경기도 무형유산 전수관 옆에 자리 잡고 있다. 노리마스는 1879년부터 수원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1909년 자료 사진을 보면 동신교회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초가집 형태였다. 동신교회를 세운 노리마스 마사야쓰는 일본의 제국주의 노선에 매우 비판적이었으며, 양심적이고 헌신적인 종교인이었다. 현재 교회 뒤편 언덕에 노리마스 추모비가 세워져있다. 동신교회를 시작으로 삼일장로교회가 있다. 동신교회 아래 있는 매향여고는 감리교 계열의 학교이고, 삼일중학교에는 1923년에 건립된 아담스 기념관이 있다. 그리고 건너편 수원천변 인근에는 천주교 순교 성지인 북수원 성당(옛날 소화초등학교)이, 그리고 북수원 성당 옆으로는 1907년 종로네거리로 이전, 설립된 감리교 소속 수원종로교회가 있다.
수원 천변은 근대 종교문화유산의 집결지로 종교인들에게는 순례 코스로, 일반 시민들에게는 테마 관광의 코스로 큰 의미가 있다. 이는 전국 어디에서도 그 유사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천변풍경이다. 이외에 팔달산 자락의 교동에는 원불교 수원교당을 비롯하여 성공회 성당·기독교장로교 소속 수원교회, 성결교회, 수원향교가 있으며 옛 수원시청 맞은편에 수원 중앙 침례교회 등 이웃종교들이 서로 공존하고 있다는 점도 특기할만하다. 이처럼 수원은 다양한 종교문화유산이 공존하고 있는 다종교 도시로 다종교 국가 대한민국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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