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전망대] 혁신과 규제 사이에서 길을 헤매다!

입력 2024-07-31 19:54
지면 아이콘 지면 2024-08-01 18면
움직이는 건 모두 로봇인 세상
승패, 파이 혁신아래 분배하느냐
규제 아래 분배하느냐에 달려
AI 돌풍, 시장 확대 순풍일지
혁신 맞서다 밀려 역풍될지 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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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희 협성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변호사가 1년 걸릴 일을 1분이면 해결한다." 올 1월 프랑스 기업인 이삼 레기(Issam Reghi)가 개발한 이아보카(IAVOCAT) 앱이 애플과 구글 앱스토어에 출시됐을 당시의 홍보 문구다. 법률 조언 비용은 더 파격적이다. "변호사 비용이 1천유로라면, 나는 69유로밖에 필요치 않다." 비(非)변호사 조직인 리걸테크 기업의 등장은 체온 36.5도 인간에 의한 법률 업무의 종언을 고하는 듯하다.

"직장폭력을 당하고 있다. 상사는 지능적으로 나를 괴롭힌다. 고소하고 싶지만 돈도 없고, 직장엔 나를 지원해줄 사람이나 시스템도 없다. 고소장 샘플 하나 만들어줘." 이런 요청에 오픈AI의 챗GPT(GPT-4o)는 '직장 내 괴롭힘 및 폭력 행위에 대한 고소'라는 제목의 고소장 샘플을 뚝딱 만들어준다. 고소 이유를 비롯해 요구사항까지 적혀있다. '피고소인의 직장 내 괴롭힘 행위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법적 처벌을 요구합니다. (중략) 이상과 같은 이유로 피고소인 ×××를 고소하오니, 귀 기관의 철저한 조사와 법적 조치를 부탁드립니다'. 이제 AI는 나홀로 소송 절차를 지원해주는 재판 도우미가 됐다.



보수적인 법률 분야에서도 AI의 영향은 짙다. 방대한 양의 법조문과 판례·사건기록·서류 등을 읽고 기억하고 추론하는 건 AI가 가장 잘하는 일. 조만간 변호사·판사 같은 법률 전문가가 맡아오던 업무 중 상당 부분을 AI가 대신하면서 일하는 방식이 송두리째 바뀔 것으로 보인다. 야구로 치면 AI 기술은 이제 1회 초다. PwC에 따르면, AI 노출이 높은 부문에서 노동생산성은 약 4.8배 높아졌다. 골드만삭스는 전체 일자리의 최대 4분의1이 AI 기반의 자동화로 대체된단다. 특히 법률 업무의 44%가 AI로 대체될 수 있다며, AI 발전이 법조계에 일대 혁신을 불러올 것으로 봤다. 비즈니스리서치 인사이트는 전 세계 리걸테크 시장(법률+AI 서비스) 규모를 2027년 465억 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누구든 쉽게 법률에 접근한다면 법률 시장은 더욱 확대될 수 있다.

와중에 변협은 AI 기반 챗봇 서비스를 선보인 한 법무법인 변호사의 징계 조사에 착수했다. AI가 변호사 업무로 수익을 얻는 건 변호사법 위반이고, AI가 의뢰인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활용했다면 공공성 침해 문제도 있다고 봤다. 이에 법무법인 측은 AI 학습에 가상 사례를 활용했고, 기초 법률정보는 무료로 제공한다며 반론한다. 디지털 전환(DX)을 넘어 인공지능 전환(AX) 시대의 길목에서 접하는 불편한 광경이다.

1865년 영국에서 만든 세계 최초의 도로교통법 '붉은 깃발법(Red Flag Act)'. 증기자동차 등장으로 마차 사업자는 밥줄이 끊어지게 생겼다. 이에 정부는 마차 사업자의 의견을 수렴해 자동차의 최고속도를 6.4㎞/h·시내에선 3.2㎞/h로 제한, 기수는 자동차의 55m 앞에서 낮엔 붉은 깃발·밤엔 붉은 등을 들고 뛰게 하는 법을 제정했다. 칼이 위험하니 사용치 말자고. 결과는 참담했다. 세계 최초로 차를 만들고도 산업 주도권을 타국(독·미·프)에 내주는 계기가 됐다. 시대착오 규제의 대표로 회자된다. 리걸테크 시장 분쟁에 대해 정부의 가이드라인 필요성이 제기된다. 하나 AI 기술이 비선형(non-linear)적으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정부 개입은 자칫 붉은 깃발법의 재현이 될 수 있다. 이용자 편익이란 '보이지 않는 손'을 통해 자연스레 정리돼야 옳다. AI가 학습할 수사·재판 자료(판결문)의 전면 공개라는 과제도 있으나, 글로벌 시장의 전칭은 AI 활용 쪽으로 기울었다. 불확실한 미래와 맞서는 비결은 AI 사다리를 먼저 오르는 것!

움직이는 건 모두 로봇(AI)인 세상의 승패는, 파이(pie)를 혁신 아래 분배하느냐, 규제 아래 분배하느냐에 달렸다. 혁신 아래 취한 가장 작은 파이 조각이 규제를 통해 나눈 파이의 가장 큰 조각보다 훨씬 더 크다는 사실. AI 돌풍을 혁신 동력으로 삼는 시장 확대의 순풍일지, 혁신에 맞서다 경쟁에 밀려나는 역풍일지 기로에 섰다.

/김광희 협성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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