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등재된 '사도광산'
조선인 강제 노역 고의로 배제
군함도 등 일본 정부 행태 반복
뒤늦은 조치 미흡 진정성 의심
조병창 군수공장 흔적 남아있어
미쓰비시 줄사택 징용노동자 거주
과거 아픈 기억 조명 매개체 강조
'강점기 수탈 현장' 존치 힘 실려
일본 정부가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 역사를 고의로 배제하려 했던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결정되면서 한국에서는 징용, 물자 수탈의 어두운 역사를 간직한 인천 일본육군조병창과 미쓰비시 줄사택 등을 보존해야 할 필요성이 한층 더 커졌다. 일본 강제동원 유적을 연구한 학계 전문가들은 이 같은 갈등유산이 과거 아픈 역사를 조명하는 매개체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결정된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은 1940년대 조선인 1천500여 명이 조선총독부 주도로 징용돼 구리·철 등 전쟁물자를 캤던 곳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일본 니가타현 사도 광산 부유선광장의 28일 모습.근대유산인 부유선광장은 세계유산 구역에서 제외됐다. 부유선광장 주변에는 사도 광산 조선인 노동 관련 사실을 전시한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이 있다. 2024.7.28 /연합뉴스 |
일본 정부는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신청할 때 등재 범위를 16~19세기 중반으로 한정해 조선인 징용 역사를 의도적으로 누락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일본 정부가 유네스코 권고에 따라 등재 범위를 강제노동이 이뤄진 시기를 포함한 전체 기간으로 확대했지만, 전시 공간에는 징용을 의미하는 표현이 없어 또다시 비난을 사고 있다.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5년 세계유산에 등재된 나가사키현 군함도는 조선인 1천여 명이 징용된 곳이지만, 일본 정부는 탄광업 발전 등 산업적 측면만 부각하며 어두운 역사를 외면했다.
당시 유네스코가 군함도 전체 역사를 알리도록 권고했지만, 뒤늦게 이뤄진 조치 또한 미흡해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일본 정부가 조선인 강제노역을 '모집에 의한 자발적 노동행위'로 왜곡하는 행태가 반복되면서 한국에 남아있는 일제강점기 수탈의 역사를 더욱더 적극적으로 존치해야 한다는 데 힘이 실린다.
4년간 답보상태에 있던 인천 부평 미군기지 '캠프 마켓' 조병창 병원 건물을 일부 존치하기로 정해졌다. 사진은 지난 6월 12일 부평 미군기지내 조병창 건물. 2024.6.12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
인천 부평구 미군기지 '캠프 마켓'에는 1939년 한반도에서 가장 큰 군수공장이었던 조병창 시설물인 주물공장, 병원, 지하호가 그대로 남아있다. 조병창에서는 비녀부터 놋그릇, 엽전 등 한반도에서 수탈한 금속으로 전쟁에 쓸 총검, 탄환, 포탄 등 무기를 제조했다. 조병창에 강제동원된 조선인 1만2천여 명은 주물공장과 기계부품 생산·조립공장에 배치됐다.
캠프 마켓 인근에는 일본 육군이 관리하던 군수물자 공장 미쓰비시(三菱)제강 인천제작소 노동자들의 합숙소 '미쓰비시 줄사택' 일부가 남아있다. 줄사택은 징용된 노동자들의 실상을 보여주는 역사적 장소로 인정받아 최근 국가유산청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국가유산청은 지난 6월 13일 인천시 부평구 부평동에 남아있는 미쓰비시 줄사택(사진)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 예고했다고 밝혔다. 2024.6.13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대표 연구위원은 "사도광산은 징용됐던 조선인 숙소, 형무소 등이 흔적으로만 남아있어 구술 기록, 사료 등으로 과거 역사를 파악해야 한다"며 "부평에 있는 조병창은 사실상 완벽하게 현장을 간직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이들 시설을 통해 우리가 일본의 역사왜곡에 맞서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다"며 "과거 조선인의 아픔과 피해가 얼마나 컸는지 후세에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는 굉장히 크다"고 했다.
정 위원은 조병창과 같은 갈등유산의 보존 필요성에 대해 "징용과 수탈의 역사는 실체를 담은 현장이 사라지면 기억에서 잊힌다"며 "미쓰비시제강이 사라지고 부평공원이 자리 잡은 일대에는 미쓰비시를 뜻하는 '삼릉'의 상호를 단 약국, 떡집, 쌀집 등이 남아있지만, 대부분은 이 삼릉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다"고 말했다.
지역사회에서는 조병창 건물의 철거와 존치를 놓고 갈등을 겪기도 했다. 조병창 병원 건물은 2022년 철거가 결정되면서 시민사회와 기관 간 법적 공방으로 번졌지만, 최근 건물 일부를 존치하는 쪽으로 갈등이 봉합됐다.
/박현주기자 phj@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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