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들 '연목구어'의
'연목'을 '연못'으로 착각하기도
'대기만성'도 '끈질기게 대기하면
늦더라도 성공한다'로 봐야하나
말글도 시대 뒤처지면 사라지는 법


박종권_칼럼니스트.jpg
박종권 칼럼니스트·(사)다산연구소 기획위원단
한 친구가 탄식했다. "요즘 한글세대 너무해. 한자를 너무 몰라. 자기 이름도 못쓰는 정도야." 과장이 심하다고 대꾸해 주었다. 설마 그 정도이겠느냐고 말이다. 한데 들려준 이야기에 웃을 수 없었다. 그는 아이 결혼식을 마치고 방명록을 펼쳤다. 부부가 하객 명단을 정리하면서 조카가 담당한 축의금 내역서를 훑었다. 그런데 성명란에 '祝結婚'이 적혀 있었다. "이것은 뭐지. 혹시 봉투에 이름을 깜박 잊고 쓰지 않은 하객인가."

일련번호로 봉투를 찾았다. 봉투에는 직장명과 이름 일곱자가 한자로 제대로 적혀 있었다. 한자로 쓰여진 직장명과 이름이 거의 붙어 쓰여있다 보니 '축결혼'을 하객 이름으로 착각했다는 거다. 나중에 당사자에게 넌지시 물어보니 그 한자를 읽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이제 축의금 봉투에 이름을 한자로 쓰면 자칫 혼주가 낭패할 수도 있겠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런 한자 문해력을 한탄할 일인지는 모르겠다. 한글 전용세대에게 한자는 어려운 중국어일 수 있지 않나. 모바일시대 디지털 언어로서 한글이 세계적으로 각광받고 있는 상황에서 더욱 그렇겠다.

그러다 보니 MZ세대의 '한자 비틀기'가 심심치 않다. 연목구어(緣木求魚)가 대표적이다.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구한다는 말로 도저히 불가능한 일을 굳이 하려고 할 때 비유하는 사자성어이다. 어떤 이가 "과거를 재단하는 법 기술자들로 미래를 설계하겠다는 것이나 칼잡이를 앞세워 덕치(德治)를 하겠다는 것은 비유하면 연목구어가 아닌가"하고 짚었다. 이에 한 MZ세대가 대꾸했다. "그러게요. 큰 물고기는 강이나 바다에 살고 연못에는 개구리나 송사리밖에 없잖아요." 젊은이는 '연목'을 '연못'으로 알아들었던 것이다.

한데 오히려 그럴듯한 비유가 아닌가. 사실 '연목구어'는 맹자(孟子)의 '양혜왕장구상편'에 나오는 말로 "물고기를 잡으려면 바다로 가야 하듯이 왕천하(王天下)의 대도(大道)를 가라"는 뜻이 담겨 있다. 그렇다면 아예 불가능하다는 뜻의 연목구어보다 정확하게 현 상황을 진단한 '연못구어'가 더 적절하지 않겠나. 나아가 법가(法家)들의 대선배 격인 진나라 이사(李斯)가 항변한 '강과 바다는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는다'는 인재론을 덧붙이면 그럴듯하겠다. 인사가 만사라고 하는데 마치 연못과 도랑에서만 찾는 모양새 아닌가. 도랑 치고 가재 잡겠다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MZ세대가 야당끼리 연대하고 손잡는 것을 야합(野合)이라 부르는 것도 그럴듯하다. 국어사전은 '좋지 못한 목적으로 서로 어울림'이라고 했지만, 사마천의 사기(史記)는 다르다. 공자의 출생과 관련해 '70세인 숙량흘(紇)이 16세인 안(安)씨 셋째 딸과 야합(野合)하여 낳았다'고 했다. 공자를 열전(列傳)이 아닌 제후급의 세가(世家)에 넣고, 열전도 백이숙제(伯夷叔齊)에 대한 공자의 언급으로 시작한 사마천이다. 공자의 춘추필법을 흠모한 그가 불량한 의미로 야합이란 표현을 썼을까.

후대의 유학자들도 이런 표현이 불편했을까. 그래서 문질빈빈(文質彬彬), 즉 군자는 꾸밈과 본바탕이 서로 어울려야 한다는 공자어록을 끌어들인다. 그리하여 '본바탕이 꾸밈을 누르면 야(野)라 한다'는 해석을 붙인다. 안씨녀는 숙량흘의 세 번째 부인이다. 그래서 초례청을 차리는 '꾸밈'을 생략하고 초야의 '본바탕'으로 결합했다는 뜻으로 읽었다.

그러면 야당만이라도 합치(合治)라는 '야합'에는 말만 번지르르한 상투적인 구호보다 실질적인 민생대책을 요구하는 열망이 담겨있지 않을까. 치장과 꾸밈 대신 국민주권주의 구현과 민의를 대변한다는 본연을 강조하는 뜻으로 말이다. 철새 대이동 같은 이합집산이 아니라 '민주정치의 본바탕이 온갖 그럴듯한 꾸밈을 누르는 연대' 말이다.

그렇다고 '중과부적'을 '세금중과는 부적절하다'거나 '대기만성'을 '(끈질기게)대기하면 (늦더라도)성공한다'는 것까지 고개를 끄덕여야 할지. 글쎄다. 말글도 생겼다가 시대에 뒤떨어지면 병들고 사라지는 법이니까.

/박종권 칼럼니스트·(사)다산연구소 기획위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