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감사원에서 전형철 공공기관감사국 과장이 '한국토지주택공사 전관 특혜 실태' 주요 감사 결과를 브리핑하고 있다. 2024.8.8 /연합뉴스 |
지난해 4월 인천 검단신도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지하주차장이 무너졌다. 지하주차장을 떠받치는 32개 기둥 가운데 19개 기둥에서 철근이 빠져있었다. '순살 아파트'라는 달갑지 않은 이름이 붙여졌다. 감사원이 지난 8일 공개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전관 특혜 실태 감사 보고서는 순살 아파트의 원인을 적시한다.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전국 102개 공공주택사업지구 가운데 23개 지구에서 보 대신 상판을 지탱하는 기둥의 철근이 기준 이하로 시공된 사실이 드러났다. LH 직원들은 알면서도 눈감아줬다. 대신 골프, 해외여행, 명품가방 등을 받아 챙겼다. 퇴직자들이 소속된 이른바 '전관 업체'의 설계 오류에 벌점을 부과하지 않았다. 일부러 검토를 소홀히 하는 방식으로 품질미흡 통지서를 발급하지 않는 수법도 썼다.
LH를 에워싼 외부 환경도 '복마전' 그 자체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는 2019년 10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공공발주 감리 입찰에서 나눠 갖기를 한 17개 법인과 19명의 개인을 입찰 담합으로 인한 공정거래법 위반 등으로 지난달 30일 기소했다. 업체 선정 과정에서 뇌물을 주고받은 심사위원 18명과 감리업체 대표 등 20명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적발된 담합 행위는 모두 94건, 낙찰금액을 합치면 5천740억원에 달한다. 기소 대상 중엔 재작년 시공 중 붕괴사고로 6명이 숨진 광주 화정아이파크 아파트와 지하주차장이 무너졌던 검단신도시 아파트 공사에 관여한 감리업체들도 포함됐다. 제 버릇 개 못 준다 했는데 틀린 말이 아니다.
LH에 대한 감사원 감사와 검찰의 공공발주 감리 담합 수사 결과가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척결과 자정 노력에도 불구하고 뇌물과 향응, 그리고 이해관계로 얽힌 그들만의 카르텔이 여전히 공공발주 시장과 공공건설 현장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LH는 지위와 정보를 악용한 사건들이 터질 때마다 뼈를 깎는 쇄신을 각오했지만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이었을 뿐이다. 지난 2021년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전 국민적 지탄의 대상이 됐을 때 관리 가능한 수준을 넘어선 조직 규모에 칼을 대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당시 정세균 총리도 해체 수준으로 환골탈태할 수 있는 혁신안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LH는 사활을 걸고 '비리의 카르텔'을 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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