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인수 칼럼

[윤인수 칼럼] 오늘만 사는 세대에 갇힌 미래세대

입력 2024-08-12 20:13 수정 2024-08-12 20:15
지면 아이콘 지면 2024-08-13 19면
하나의 광복절 두개의 기념식으로 쪼개졌다
진영 편식자들 정권 놓고 겨루는 정치 파국
신통방통 세대가 구질구질한 구체제에 갇혀
활·총·칼 세대, 쿨하게 무혈혁명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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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수 주필
지난 1일 인천 청라동의 한 아파트 주차장이 화염에 휩싸였다. 벤츠 전기차에서 시작된 화재로 차량 87대가 불타고 783대가 그을렸다. 천지신명이 보우하사 200여명의 입주민은 무사히 대피했다. 입주민 수백명이 졸지에 화재 난민으로 전락했다. 피해자들의 피해는 몇 날 못가 거대한 공포에 묻혔다. 전국 아파트에서 전기차량 지하 주차 여부로 입주민들이 멱살잡이를 했다. 화성의 배터리 제조공장에서 난 불로 23명이 사망했을 때도 잠잠했던 여론이다. 나의 현실로 다가온 공포 앞에 대중은 이성의 끈을 놓는다.

발화된 전기차의 제조사는 벤츠다. 세금으로 보조금을 지급하며 전기차 보급을 늘리고 지하주차장 충전기를 설치한 건 정부다. 벤츠 특판 전단으로 비난 여론이 들끓자 벤츠는 현금 45억원을 내놓았다. 정작 중국산 저가 배터리를 장착한 자사 제품 리콜엔 침묵 중이다. 급한대로 대책을 주워섬기던 정부는 12일에야 긴급대책회의를 열었다. 종합대책의 내용이 무엇이든 전기차 보급과 동시에 실행됐어야 할 대책들일 테다. 정부는 '친환경'과 '탄소제로'에만 꽂혀 배터리를 놓쳤다. 국회는 그 흔한 특별조사위원회조차 언급이 없다. 인천 전기차 화재는 예고된 참사였다. 과학과 기술에 문맹인 정부와 정치 때문에 국민은 지하주차장에서 배터리 전쟁 중이고, 전기차는 곳곳에서 불타오르고 있다.

국민연금은 미래의 국가적 재난이다. 연금 기금을 지금처럼 운용하다가는 2041년에 적자가 시작되고, 2055년에 고갈된다. 제도붕괴는 경고가 아니라 수학으로 확정된 미래다. 오늘만 사는 정치가 확정된 재앙을 외면해왔다. 숨가쁘게 찾아오는 지방선거, 국회의원선거, 대통령선거에서 표가 안되는 연금개혁을 외면하고 정권을 이어 폭탄을 돌렸다. 지난 국회에서 소득대체율 1% 차이 때문에 여야 합의가 물건너갔다. 국민연금 개혁 때까지 매일 1천억원의 기금 손실이 발생한다.



국민의힘은 연금개혁특위 구성을, 더불어민주당은 신속한 논의를 제안했다. 21대 국회에서 이견을 좁혀 놓은 개혁안 대신 '처음부터 다시'를 선언할 테다. 적대적인 정쟁 정치도 걸림돌이다. 행정권력과 입법권력의 무한 정쟁으로 국정도 입법도 마비 상태다. 야당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탄핵을 경고하고, 여당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 예정자의 법정 몰락을 기원한다. 이성의 끈을 잡고 국민연금 개혁에 몰두할 분위기가 아니다. 21대 국회처럼 개혁의 본질에 접근하기 보다 개혁 불발의 책임을 돌리려 변죽만 울릴 가능성이 농후한 정국이다. 오늘만 사는 정치의 안중엔 MZ들의 미래 따위는 없다.

모레가 제79회 광복절이다. 아홉수가 무섭다. 기념식 참사가 예고됐다. 대통령이 임명한 신임 독립기념관장의 임명 철회를 요구하는 광복회와 독립운동가 선양단체는 물론 민주당도 정부의 공식 경축행사에 불참을 통보했다. 대신 별도의 기념식을 갖기로 했다. 이들은 신임 관장이 독립운동 역사를 부인하는 뉴라이트 인사라 한다. 본인은 부인하지만 광복회의 분노는 심상치 않다. 기어코 논란의 주인공을 임명한 대통령의 정무적 판단으로 독립기념관은 개관 이래 처음으로 광복절 기념식을 취소했다. 하나의 광복절이 두 개의 기념식으로 쪼개졌다. 진영의 역사를 편식해 온 자들이 정권을 놓고 겨루는 정치가 파국에 봉착했다. 광복(光復)마저 매몰하는 암정(暗政)의 어두운 기운이 대물림될 조짐을 보인다. 청년의 절반이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과 연애도 결혼도 할 수 없다고 한다. 미래세대가 오늘만 사는 세대의 맹목에 감염됐다.

열여섯살 반효진은 "이 세계 짱은 나"라고 자부한다. 스물한살 임시현에게 바늘구멍은 통과하면 그만인 관문일 뿐이다. 서른한살 김예지는 "빵점 쐈다고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다"며 쿨하다. 이처럼 신통방통한 세대가 구질구질한 구체제에 갇혔다. 이성과 지성으로 쿨하게 찌르고 쏘고 베어버려야 할 구체제다. 활·총·칼 세대의 무혈 혁명을 상상해본다.

/윤인수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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